왜 발달장애인을 위한 책은 없나요?

'도서출판 날자' 조윤영 대표 인터뷰


 


“인지는 늦지만 몸과 마음은 또래만큼 성장 중이에요. 감성은 그보다 더 섬세하지요.”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독서를 권했던 조윤영 대표는 아들 예준이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책을 읽으란 말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즈음 예준이에게 발달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꾸준히 책을 추천했던 엄마였습니다.


“더는 추천할 책이 없었어요. 동화책 표지에 적힌 ‘초등 저학년용’이라는 단어는 예준이에게 상처가 됐고, 그 나이대 아이들에게 맞춘 그림과 내용에는 흥미가 떨어지는 눈치였어요.”


‘예준이가 읽을 책을 직접 써볼까요?’ 지인에게 농담처럼 했던 말이 현실이 됐습니다.


조윤영 대표는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그 날, 가족들과 머리를 맞대고 하루 만에 초고를 완성했습니다. 예준이에게 걱정과 불안은 일상인 터라 에피소드가 차고 넘쳤거든요.


“마침 출판사를 하는 지인이 규모가 있는 출판사 몇 곳에 투고해보라고 독려해줬어요. 글에 진정성이 있다면서요. 덕분에 용기를 얻었죠.”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연락은 없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조 대표는 직접 출판에 나섰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예준이가 졸업하기 전에 학교 등 주변 친구들과 이 책을 공유할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걱정이 많아 사회성이 지연된 예준이에 대해 친구들이 이해하기를 바랐고, 이 책이 발달장애 아이들에게 좋은 책일지 의견을 듣기에도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했지요.”


100부만 인쇄해 예준이 학교와 주변 친구들에게만 주면 되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도서출판 날자’를 등록했습니다. 금액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예정에 없던 900부를 더 출간해버렸지만요.


“가장 큰 고비는 예준이의 허락이었어요.”


발달장애 청소년을 타깃으로 한 책이었기에 기존의 공식을 깨야 했습니다. “그림이 있되 동화책 같지는 않고, 글씨는 적되 청소년책 같은 느낌을 내고 싶었어요.”


<걱정이랑 친구할래> 내지


<걱정이와 친구할래?>는 마치 도록을 연상케 합니다. 그림과 텍스트 영역이 분리돼있는 것이나 각 그림 하단에 제목과 연도, 재료가 표기된 것이 그렇습니다. 그림은 미술을 전공하는 예준이 누나의 작품입니다. 에피소드는 보통 열 줄을 넘지 않고 페이지 중앙에 배치해 충분한 여백을 주었습니다. 에피소드별로 주요한 1~2문장은 페이지 하나에 소제목처럼 배치해 가독성을 높였습니다.


가장 큰 고비는 이 책의 주인공인 예준이에게 허락을 받는 과정이었습니다. 원고를 처음 봤을 때 온통 빼라는 얘기뿐이었답니다. “할머니나 고양이 얘기 등 자신에게 소중한 것과 관련된 얘기는 빼라고 하더라고요. 이름을 공개하는 것도 거부했죠. 그런데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하나둘 허용범위가 넓어지더니 샘플북이 나왔을 때는 이름을 넣는 것까지 전부 허락했어요. 그리고 책이 언제 나오는지 계속 물어보며 기다렸어요.”


초고부터 샘플북까지 수차례의 원고를 숙제하듯 읽던 아이는 ‘예준’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완성본을 한 장씩 넘기더니 크게 세 번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사춘기 이후 그렇게 환한 웃음은 처음이었어요. 용기를 내기 참 잘했다 싶었지요.”


”예준이를 위해 시작했지만 가족 모두가 치유 받은 시간이었어요”


첫째 딸 인서에게 예준이는 챙기고 돌봐야만 하는 동생, 그뿐이었습니다. 주변 친구들도 인서에게 장애를 가진 동생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죠? 그래서 처음에는 인서도 예준이처럼 이름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었답니다.



“지인들에게 예준이의 장애를 오픈하지 않은 것은 저 또한 마찬가지였어요. ‘장애아이를 키우는 불쌍한 엄마’가 아니라 그냥 저라는 사람 자체로 평가받고 싶었어요. 제 삶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역할을 외면해왔던 거예요.”


책을 만들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딸과 함께 예준이에 대한 고민을 나눴습니다. 장애자녀의 엄마이기에, 장애동생을 둔 누나이기에, 가족만이 이해할 수 있는 깊은 공감을 주고받는 기회가 됐지요.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딸은 고맙게도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기로 결정했어요. 저 역시 주변 지인들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내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얘기하고 나니 내게 중요한 사람들에게 진 빚을 갚은 것 같아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더라고요.”


조윤영 대표는 딸은 물론 자신도 껍질을 하나 벗을 수 있었던 치유의 시간이 됐다고 말합니다.


“비장애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발달장애 아이들에게도 중요해요.”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읽지도 쓰지도 못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습니다. 교육 프로그램도 음악이나 미술 등 예능 분야에 치우쳐 있고 독서활동은 거의 없습니다. 그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들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듭니다. 지난해 푸르메재단에서 발달장애 청년들의 독서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모금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이제껏 진행한 캠페인 중 가장 저조한 참여율을 보이기도 했지요.



조윤영 대표는 독서교육이 비장애 아이들에게 중요한 만큼 발달장애 아이들에게도 당연히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적절한 환경에서 인내심을 가진 조력자와 함께 꾸준히 반복하면 뭐든 할 수 있습니다. 독서 및 독서 활동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책에 실린 예준이 특수학급 친구들의 서평만 봐도 짐작할 수 있죠. 다만 일상 생활 지도로 이미 지쳐 있는 양육자에게 독서교육까지 맡기는 것은 무리가 있고 그래서 독서교육이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교육에서 독서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의사소통은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기본인 만큼 독서는 발달장애 아이들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이들을 위한 책의 분야와 주제가 더 다양해져야 합니다. ‘도서출판 날자’의 역할은 그만큼 막중합니다. “‘장애’라는 꼬리표 뒤에 감춰져 있던 발달장애 아이들의 목소리, 진짜 생각들을 담고 싶어요. 이길 수 없지만 멈출 수 없는 전쟁에 나가는 장수와 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장애자녀 부모들의 치열한 삶도 기록하고 싶고요. 그 전에 우선 이 책을 열심히 알리려고 합니다.”



『걱정이랑 친구할래?』
조윤영 글|이인서 그림|2022년 8월 15일 출간|도서출판 날자



‘날마다 자라서 이제 곧 날아오를 너를 위해, 엄마가 쓰고 누나가 그리다’


발달장애가 있는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엄마가 아들과 같은 장애를 가진 청소년들이 읽을만한 책을 찾기 어려워 직접 출판사를 차리고 책을 출간했습니다. 일상적으로 과도한 걱정과 불안을 가지고 있는 아들의 에피소드를 엄마인 조윤영 대표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발달장애인의 인지 수준과 독해 능력이 고려되면서도 청소년이나 성인 시기의 일상과 감정, 주변과 사회적 감수성에 맞게 구성한 책입니다.



*글= 지화정 대리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지화정 대리 (커뮤니케이션팀), 『걱정이랑 친구할래?』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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