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특전 일병의 희망 만들기
최성환 (군인 / 예비 물리치료사)
여기는 어느 특전사 내무반. 혹한기 훈련을 끝내고 어제 조촐한 소대 회식이 있었습니다. 이제 어느 가족 보다도 가까운 식구가 된 소대원들과 함께하는 자리는 즐거움이 넘쳐납니다. 어려운 훈련을 같이 이겨낸 뒤 전우애는 훈훈하게 배어납니다. 별다른 반찬 없이도 여유 있게 먹거리를 나눈다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낍니다.
그 즐거움도 잠시, 다음 날 새벽 난리가 났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소대회식 후 멀쩡히 잘있던 숟가락통이 싹 없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는 사소한 일이지만 군대에서는 매우 심각한 사고입니다. 신기한 것은 이와 같은 작은 사고가 하루에 꼭 한번씩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가족 보다 더 가까왔던 후임이 이런 저런 이유로 ‘신기한(?)’ 행동을 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다 어쩔 수 없는 까닭이 있었겠지 하고 이해하려 하지만 정신 없이 돌아가는 군대생활에서 이를 받아들이기 쉽지만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혹한기 훈련 후 운좋게 얻은 포상외출로 이렇게 글도 적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군대 화장실, 월간샘터에서 만난 희망의 징검다리
추워지기 시작하는 작년 11월, 부대 생활은 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아 기껏해야 하루에 10분, 혹은 화장실에서 잠깐의 여유를 갖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짧은 여유를 만끽하고자 화장실 가는 길에 월간 <샘터> 한 권을 손에 들고 무심코 펼쳐서 읽게 된 글이 <미치지 않고 무엇을 하겠는가?>라는 제목의 짧은 글이었습니다.
시설은 낙후되었지만 인간적으로 환자를 대우해 주었다는 스코틀랜드의 병원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교통사고로 목숨이 위태로운 혼수상태의 환자에게 주사를 놓으면서 효능까지 일일이 설명해 주는 간호사 이야기와 그 중환자의 보호자에게 하루 한 시간씩 직접 그림까지 그려주며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고 꼭 환자를 살리겠다고 위로해 주는 주치의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내려갈 때 제 가슴 속으로부터 떨림이 전해져 왔습니다.
내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그동안 틈틈이 스스로에게 물어오던 질문들이 떠오르며 마음속 한 편에서 키워오던 제 꿈이 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도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이 기쁨으로 다가 왔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인간적인 환자 중심의 재활전문병원을 만들고 싶다는 그 필자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푸르메재단이란 곳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마치 제 꿈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 같은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
언제나 믿음과 희망을 노래하는 물리치료사
지금은 물리치료학 학업을 휴학하고 군대 생활을 하고 있지만, 입대 전에는 많은 지식이 저를 더욱 훌륭한 치료사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환자도, 의사도, 치료사도, 장애우도 모두 다 “사람”이란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슴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제 최종적 목표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믿음과 희망을 노래하는 치료사가 되는 것입니다. 영화 <패치 아담스>가 주제로 한 실존 인물인 패치 아담스 같은 치료사가 되어 절망으로 고통받는 이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죽음이라는 공포 앞에서 외로움에 떠는 이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 전우들과 함께 (맨왼쪽이 최성환 일병)
▲ 전우들과 실전 훈련중의 모습
갓 태어난 아기에게도, 곧 하늘에 오르게 될 사람에게도, 갑자기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될 사람에게도, 너무나도 큰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을 가진 이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웃음과 함께 믿음을 주고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그 길을 가며 접하게 될 많은 만남이 저 자신을 찾게 해 주리라 믿습니다.
저는 욕심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병원에서 평범하게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침투 작전 중 그렇게 험한 야산에서 선두에 서며 길을 만들어가는 특공병처럼, 나뭇가지에 손이 찔리고 온통 상처 투성이가 되더라도 강해지는 제 모습을 보며 그렇게 살아가는 저만의 길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하든지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주님의 평화가 항상 함께 하시기를...
2005년 2월 6일
언제나 믿음과 희망을 노래하는 예비 치료사
최성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