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나그네였다

이정식 (CBS 사장)



서울지역의 기온이 영하 17도까지 떨어졌던 2004년 1월 22일.

설날이었던 이날 저녁 무렵, 집 건너편 양천구민회관 앞을 지나다 얼굴이 까무잡잡한 일단의 외국인들과 마주쳤다.산책 중이었던 나는 이들 외국인들 틈을 한참 비집고 지나가야 했다. 동남아 어느 나라 사람들 같았다. 남녀 수백명 쯤 되었다. 나는 불쑥 호기심이 일어 이들 중 한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어느 나라 분들입니까?”

“네팔이요”



네팔이면 히말라야 산맥 아래 작고 가난한 나라이다. 네팔에서 온 노동자들이었던 것이다.



“오늘 무슨 행사가 있었습니까?”

“설날이라서 모였죠”

“네팔에서도 설을 쇱니까?”

“그렇지는 않은데요, 한국이 설날이니까 모여서 놀았죠”

“노래자랑도 했어요?”

“노래자랑도 하고 재미있는 놀이 많이 하고 놀았습니다.”

“한국에 와 있는 네팔분들은 몇 명이나 됩니까?”

“4천명쯤”

“오늘은 주로 어디 사시는 분들이 오신겁니까?”



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 안산, 가리봉동 등을 의식하고 물었다.


“부산에서도 오고, 전국에서 모였어요”


나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잠깐 동안의 대화를 마쳤다. 그들도 내게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밝은 얼굴로 인사했다.온 국민이 가족들과 설날을 보내고 있는 이날, 네팔인들은 양천구민회관에 모여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래는 모임을 가졌던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사회 문제도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불법체류자가 늘어나는 것이 정부로서는 매우 큰 골칫거리이다. 그래서 2003년 가을에는 불법 체류 외국인들에 대한 일제 단속을 벌이기도 했다. 체류기간이 지난 외국인들이 여기 저기로 숨어드는 등 사회적으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일도 기억하고 있다.


우리 나라가 살기 좋아졌기에 생긴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성장이 계속되는 한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대하느냐는 바로 그 나라의 성숙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한국인들도 해외에 수백만명이 나가 살고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처지를 바꿔 생각해야 한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실망하고 마음 상하지 않도록 지혜롭게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출애굽 후 모세는 이스라엘인들에게 몇 차례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나그네를 학대하거나 억압해서는 안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몸붙여 살던 나그네였다.”
......................... (출애굽기 22:21, 23:9)



외국인 노동자 문제와 관련해 모두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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