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아들 되기
고범준(작가 고정욱씨 아들)
어른들은 남들보다 뭐든 잘하고, 학원도 빼먹지 않고 다니면서, 용돈기입장도 꼬박꼬박 잘 쓰고, 시키는 대로 말 잘 듣는 아이들을 효자라고 부릅니다. 또 있습니다. 반에서 1, 2등 하게 공부 잘하고, 태권도다 수영이다, 운동도 뛰어나고, 말썽 안 부리고, PC방에도 가지 않고, 게임 아이템도 사 모으지 않고, 만화책도 보지 않는 아이들이 효자랍니다. 그러면 나머지 애들은 다 불효자가 되는 걸까요?
효자 소리 듣기 정말 어려워
초등학교 6학년인 저는 남들보다 뭐 별로 잘 하는 게 없고 학원도 가끔은 빼먹습니다. 용돈기입장은 한번도 써본 적이 없고, 노력은 하지만 어른들 말을 잘 듣지도 않습니다. 나름대로 뭔가 해보려고 하는데 엄마는 그런 제가 무슨 일을 해놓으면 꼭 다시 손이 가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적은 우리 반에서 중간 정도인 것 같고요, 태권도는 힘들어서 한 달 다니다 말았고, 수영장은 소독약 냄새 때문에 안 갔습니다. 한번은 친구들과 싸워서 어머니가 학교에 불려 가기도 하셨습니다. PC방에서 한 두 시간씩 게임하고 집에 가서 거짓말 하다가 옷에 밴 담배냄새 때문에 들통이 나서 야단도 맞지요. 컴퓨터 게임에 열광하고 아이템도 많이 모았고 만화책은 동네 대여점에서 빌려다 침대 밑에 숨겨 놓고 밤마다 본답니다. 그러니 내가 효자 소리를 들을 수 있겠어요?
그래도 우리 반에서 제일 키 크고 덩치 좋아서 키 작은 아이들 엄마는 우리 엄마를 부러워합니다. 키 크고 건강한 것도 효도로 친다면 그것만은 자신 있으니 제가 효자인 셈인데 우리 아빠 엄마는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런 불효자인 내가 내년에 중학교에 간다고 하니 부모님들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너 그렇게 공부 안 해서 어떻게 중학교 따라갈래?"
"중학교 가면 등수가 막 나와. 반에서 몇등, 이렇게."
아버지와 어머니는 제가 놀고 있는 절 보면 이렇게 번갈아 겁주곤 하십니다. 그러니 제가 언제 효자 소리 한번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지 마세요. 제가 효자가 된 일이 드디어 생겼답니다. 그것도 많은 사람들에게서 효자 소리를 들었으니……. 물론 갑자기 성적이 올라서 효자 노릇을 한 건 아닙니다. 공부란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는 거 잘 압니다. 그럼 운동이나 다른 걸로 효도 했냐고요? 에이, 그런 것도 아닙니다. 하루아침에 잘 할 수 있는 운동은 없으니까요.
상해 임시정부 수학여행
지난 달에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 아빠가 나를 데리고 세계에서 제일 큰 도시라는 중국의 상하이에 가셨습니다. 저는 큰 도시라는 게 넓이를 말하는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인구를 말하는 거더라구요.
아무튼 이름이 제법 알려진 작가이고, 장애인이 등장하는 동화를 많이 쓴 우리 아빠는 휠체어를 타야만 하는 1급 지체장애인입니다. 그래서 장애인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아빠는 상하이에서 열리는 국제 장애인 회의 세미나에 나를 보호자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아들이 아빠의 보호자라니까 이상하지만 자원봉사자나 마찬가지예요.장애인이라서 돈도 잘 못 벌고, 다른 아빠들처럼 회사에 나가지도 않고 만날 지하철역이나 관공서 앞에 가서 장애인 차별하지 말라면서 시위나 하고 싸우는 게 우리 아빤데 한국 장애인 대표라니까 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싶다면서 장애인들이 쇠사슬을 목에 걸고 경찰한테 잡혀가는 장면을 누구나 텔레비전에서 한두 번씩은 보았을 겁니다. 그 가운데 우리 아빠도 있는데 그럴 때면 저 분이 우리 아빠라고 자랑해야 하는 건지, 부끄러워서 숨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외국 가서 견문을 넓히고 오는 게 학교 일주일 다니는 것보다 더 나은 거라면서 날 데려 가셨습니다. 나는 무척 신이 났습니다. 모처럼 외국 구경하는 거니까요. 그런데다가 학교 수업도 일주일이나 왕창 빠지는데 체험학습 보고서만 한 장 내면 결석이 아니니까 더더욱 좋았습니다.
"야, 고범준. 너 좋겠다."
"부럽다 부러워!"
"선물 꼭 사와라!"
여행 가기 전날 친구들이 한마디씩 했습니다. 화려한 상하이의 밤거리도 구경하고, 맛있는 중국 음식도 실컷 먹으면서 며칠간 지냈습니다.
하지만 낮에는 좀 심심했지요. 아빠가 호텔에 있는 회의장에서 다른 나라 장애인들과 모임을 가질 동안 나는 할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중국 텔레비전 켜놓고 이리저리 채널만 돌렸습니다. 가끔은 한국 연속극이 나오는데 내가 잘 아는 탤런트들이 중국어로 쏼라쏼라
하니까 얼마나 웃기던지……. 저녁때가 되어야만 아빠와 나는 택시를 타고 시내에 가서 구경을 하다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사흘째 되는 날 갑자기 아빠가 회의장에서 몰래 빠져나와 방에 오더니 물었습니다.
"범준아, 심심하지?"
"네, 조금요."
"우리 땡땡이 치자."
"네?"
"회의가 너무 딱딱하고 재미없다. 오늘은 내가
빠져도 되니까 임시정부 구경이나 가자."
"임시정부요?"
"그래. 일제시대때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여기 와서 정부를 만들고 투쟁을
했었거든. 거기 구경가자."
"야호!"
신이 난 나는 아빠와 함께 택시를 타고 상하이 중심가에 있는 임시정부로 갔습니다..
가보니까 말끔히 단장해 놓은 일반 중국 가정집이
임시정부 건물이었습니다. 거창한 곳이 아니어서 약간은 실망했지만 1층에서 교육용 비디오를 구경할 때까지는 좋았습니다. 교과서에나 나오는 김구 주석이 이곳에서 살았다니까 빨리 구경하고 싶었습니다.
문제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을 때 생겼습니다. 세상에, 계단 위를 올라가야 하는 거였던 겁니다. 2층에 전시실이 있어서인데 옛날 중국인들이 장애인 시설을 해놓았을 리도 없고…….
"야, 이거 어쩌냐?"
아빠가 곤란해 하길래 할 수 없이 나는 아빠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아빠, 저에게 업히세요."
집에서는 몇 번 장난 삼아 아빠를 업어보긴 했지만 이렇게 밖에서 업긴 처음이었습니다. 다행히 우리 아빠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몸이 작아 그리 무겁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국집 계단은 왜 그리 가파른지……. 아마 경사가 80도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간신히 2층으로 올라가니까 단체 관광 온 할머니들이 말하는 겁니다.
"어이구, 효자 났네."
"글쎄 말여. 효자여."
"아들! 미안하다. 아빠가 장애인이라서"
효자고 뭐고 나는 어떻게 해서든 오늘의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고 생각해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건 바로 아빠를 무사히 구경시켜 드리는 거지요. 그러니 정신 있겠어요? 안내원이 뭐라고 설명을 하지만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오고, 사진을 보여줘도 눈에 안 들어왔습니다. 오로지 어떻게 해서든 아빠를 무사히 1층에 놔둔 휠체어까지 안전하게 모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안내원은 한 층 더 올라가는 거였습니다. 정말 아찔했습니다. 비틀거리면서 3층에 올라가니까 임시정부 사람들이 잠자던 침대까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냥 거기에 아빠랑 함께 털썩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참았습니다. 앉지 말라고 써 있었거든요.
아무튼 땀은 비오듯 흐르고 다리는 후들후들, 입에선 단내가 나는데 견학은 아직도 끝나질 않았습니다. 처음엔 가볍던 아빠가 점점 더 무거워 돌덩이 같이만
느껴지고……. 나도 모르게 입에서 기도가 나오려고 했습니다..'하느님. 제발 우리 아빠 업고 제가 여기서 쓰러지지 않게 해주세요.'
기도가 통했는지 나는 무사히 견학을 마치고 출구 앞에서 기다리는 휠체어에 아빠를 다시 앉힐 수 있었습니다.
"휴우!" 나는 한숨을 몰아 쉬었습니다. 하늘이 다 노랬습니다. 다리가 후들후들, 숨이 턱에 차고 땀이 비오듯 흘렀습니다. 그때 아빠가
눈물 글썽이며 나한테 목이 매어 물으셨습니다.
"아들. 아빠 때문에 힘들었지? 미안하다. 아빠가 장애인이어서."
아빠도 이제 겨우 6학년인 나에게 업힌 게 마음 편치 않았던 겁니다. 목소리가 울먹이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힘들다고 할 수 있나요? 그냥 씩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아빠가 뭐가 미안해요? 임시정부가 가난해서 이런 집에 세든 게 잘못이죠."
그때 단체관광 왔던 할머니들이 다시 지나가면서 말했습니다
. "아이고, 효자야."
"암. 효자고 말고."
아빠를 이렇게 업고 이렇게 계단을 뛴 나는 어쩌면 진짜 효자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