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부부의 쌍둥이 육아 2화] 일상을 꽉 차게 누릴 권리


영국 사회의 의료 복지 제도, 특히 사회 분위기는 우리 부부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이를테면 이런 일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만난 의사들은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특별하다거나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객관적인 판단으로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 최선의 치료 방법을 고민하고 제시하는 것이 처음에는 불편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가벼운 말투로 치료 과정과 예후를 전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아이가 아픈 것도 큰 일이 아니라는 묘한 안도감 같은 게 느껴졌다. 가끔은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가족을 소개시켜 주기도 하셨는데, 그럴 때마다 “…는 느리지만 너무 잘하고 있어요. 얼마나 예쁜지 외래 진료에서 볼 때마다 기뻐요.” 라는 이야기를 항상 덧붙이셨다.



영국의 신생아 중환자실은 개방되어 있다. 가끔 예전에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한 가족들이 방문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은 한 아이가 휠체어를 타고 엄마와 함께 왔다. “안녕하세요. 인사하러 왔어요! 우리 아이가 벌써 이만큼 컸네요. 정말 잘하고 있어요.” 아이 엄마의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했고, 의사는 아이를 기억하며 반갑게 인사했다. “이야 멋지게 컸네!! Cheers!”


신생아 중환자실과 어린이 병원 직속 자선단체(Charity)에서는 아이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무료로 머무를 수 있는 보호자 숙소를 지원했다. 병원 옆에 있는 작은 아파트 같은 건물이었는데, 입구의 안내판에는 이곳을 거쳐간 많은 부모님들의 ‘Thank you’ 메시지가 가득했다. “힘내요, 우리 아이들은 강해요!"...


이런 일들을 마주하며 느낀 것은 지금까지 알아왔던 것과는 달리 삶을 송두리째 폭풍 속으로 몰아넣어버릴 만큼 장애가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나온 후, 달이에게는 NHS (National Health Service – 영국 공공 의료 서비스) 소속의 작업치료사와 물리치료사가 배정되었다. 작업치료사와의 첫 만남에서 들은 말이 깊이 와 닿았다. “앞으로의 달이의 삶이 쉽지만은 않을 거에요.. 하지만 모든 아이들은 행복하고 따뜻한 어린 시절을 보낼 권리가 있죠! 우리 함께해요.”



작업치료사의 도움은 정말 컸다. 달이의 생활에 필요한 보조기구들, 예를 들어 식탁 의자나 목욕 의자 같은 것들을 아이의 성장에 맞춰 제공해 준 것은 물론이고, 물리치료사, 재활 및 정형외과 담당의사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의료적인 면에서도 적절한 치료와 개입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시청의 아동 교육 및 복지 담당과에서는 어린이집을 다녀야 할 시기인 만 2세부터 달이에게 필요한 맞춤형 교육 계획을 차근차근 세우고 지원했다.


내가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직장 상사는 일하는 시간을 어떻게 조정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고 했다. “우리 아이도 자폐 증세가 심해서 도움을 참 많이 받았어요. 나나 씨 아이도 잘 할 것이고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라는 응원도 덧붙였다.


어디든 달이를 데리고 가도 우리를 불편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무례한 질문을 하는 사람도 없다.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어디선가 나타나 휠체어를 번쩍 들어주고 사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아... 나 혼자가 아니구나. 나와 신랑 둘뿐이 아니구나.


달이에게는 장애가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있고, 평생의 친구인 쌍둥이 동생 해가 있고, 좋아하는 것들이 있고, 싫어하는 것들도 있다. 평일에 일어나면 아침을 먹고, 엄마와 놀고, 어린이집에 가고, 산책을 하고, 저녁을 먹고, 목욕을 하고 잠을 잔다. 가끔 병원도 가고, 그보다 더 자주 재활치료를 받으러 간다. 주말에는 다 함께 수영장도 가고, 동물원도 가고, 도서관도 가고, 종종 맛있는 핫초콜릿도 한 잔씩 마신다. 제법 손에 힘이 생긴 쌍둥이 동생 해는 신나게 달이의 휠체어를 밀며 마트를 활보하기도 한다. 그렇게 달이는 만 4세 아이가 누릴 수 있는 일상을 꽉 차게 누리고 있다. 덕분에 영국에서의 삶은 더 달콤해졌다. 우리 가족의 시간은 느리게 가고 있지만, 그만큼 마음은 더 풍족해졌다.


우리의 이런 일상과 생각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부족한 글과 그림이지만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영국의 선진적인 의료 복지 교육 제도 안에서 우리 가족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소소한 기록이다.


*글, 그림= 나나 작가 (@honey_nana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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