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끝에서 사랑을 봅니다

하나금융나눔재단 가족심리·상담치료비 지원



중국에서 건너온 엄마 영화 씨의 세상은 오직 딸 ‘김수’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딸이 등교하면 우울하고 무기력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다가 하교시간에 맞춰 학교로 갑니다. 수를 위해 신청한 복지관 미술 프로그램에 동행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딸에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딸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겠다는 마음으로 한국에 온 엄마는 지금 낭떠러지 위에 위태롭게 선 기분입니다.


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영화 씨는 화가였던 남편의 유학차 함께 한국에 왔다가 딸을 얻었습니다. 공부하는 남편 대신 가장의 역할과 육아를 홀로 책임져야 했던 그녀는 버티다 못해 중국으로 돌아갔고, 부모의 도움으로 한식당을 운영하며 수를 키웠습니다. 남편과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학교에 입학한 수는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걱정이 된 엄마는 교육을 위해 먼 지역에 사는 교사의 가족에게 딸을 보냈는데, 어느 날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식당 문을 닫고 찾아간 엄마는 1년 만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딸을 마주했습니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침만 흘리면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딸. 영화 씨는 지금도 그때 일을 후회합니다. “수를 거기 보내지 말았어야 하는데…, 식당 운영보다 수에게 관심을 줬어야 하는데…, 아니 중국에 돌아오지 말고 한국에서 수를 키웠어야 하는데….”



엄마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결국 영화 씨는 다시 한국행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국적을 가진 수와 중국인인 엄마가 한국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를 들어갈 때는 한국과 중국 이름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중학교 때는 말을 하지 못하는데 장애 진단을 받지 않아 돌보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했습니다. 수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던 엄마는 변호사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며 학교와 싸워 끝내 입학 허가를 받아냈고, 중학교 1년간 등·하교를 함께 하며 딸을 돌봤습니다.


딸에 대한 죄책감과 무한한 사랑은 영화 씨를 독하게 만들었습니다. 길이 없으면 만들었고, 장애물이 있으면 치웠고, 벽이 있으면 뚫었습니다. “수를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었어요. 딸에게 제 인생 전부를 줘도 아깝지 않았어요.” 자신의 몸과 마음이 비명을 지르는 줄도 모르고 딸만 바라보며 달려온 시간. 기꺼이 방패막이가 되어준 엄마 덕분에 웃음과 말을 되찾은 수는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몸도 마음도 훌쩍 성장했습니다. 유일한 고민은 비장애 친구와 원하는 친구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이죠.


자신의 품을 벗어나 점차 날아오르는 딸 곁에서 엄마는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한계가 온 것 같아요. 수의 졸업까지 아직 할 게 많은데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요. 한 발만 잘못 디뎌도 바로 떨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에요. 최근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자살 소식이 자주 들려오는데 꼭 제 얘기 같더라고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서로에게 편지를 쓰고(왼쪽) 커플티를 만든 모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서로에게 편지를 쓰고(왼쪽) 커플티를 만든 모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영화 씨의 정신건강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복지관 전문가의 도움으로 하나금융나눔재단과 푸르메재단이 지원하는 심리상담 치료를 받게 됐지만, 엄마는 여전히 딸 걱정뿐입니다. 심리상담 전문가는 “엄마의 건강 회복이 우선”이라고 설득했지만, “딸의 고민 해결이 우선”이라는 영화 씨의 고집에 결국 모녀의 관계 개선을 목표로 함께 상담하기로 했습니다.


사춘기인 수의 관심은 온통 친구뿐이었습니다. 엄마와의 추억을 물어봐도 “친구와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고 얘기하는 수의 대답이 엄마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됐습니다. 이제 막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된 수는 미대에 보내겠다는 목표로 자신의 모든 스케줄을 통제하는 엄마가 갑갑하고 힘겹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그림도 점점 그리고 싶지 않습니다.


상담사는 엄마에게 자신을 챙기는 것이 먼저라고 조언합니다. “엄마가 먼저 건강하고 행복해야 자녀도 행복할 수 있어요. 수와 조금 거리를 두고 엄마 본인의 인생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상담 치료 중 음식을 만들고 있는 엄마와 수
상담 치료 중 함께 음식을 만들고 있는 엄마와 수


치료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모녀의 관계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상담의 한 프로그램으로 요리를 하던 수가 처음으로 엄마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엄마는 어렸을 때 뭐 먹고 컸어?” 엄마 역시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지시하는 대신 딸의 의견을 묻고 “오늘은 좀 힘들다”며 딸에게 자신의 약한 모습도 내보입니다. 그렇게 세상에 둘밖에 없는 모녀는 서로를 의지하며 밖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갑니다.


사람이, 사랑이 용기를 줍니다


“장애자녀를 키우는 엄마에게 돈보다 더 필요한 것은 다정한 말 한마디예요.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이 심리상담의 필요성은 차고 넘쳐요. 수가 그래요. 주위 사람들이 왜 이렇게 나를 사랑해주냐고요. 그동안 상처도 받았지만 그보다 훨씬 큰 사랑과 보살핌 덕분에 웃으며 살아갈 수 있었어요. 이 심리치료가 다시 살아갈 용기를 준 것처럼요.”



엄마인 영화 씨는 아직 수와 멀어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지만, 딸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그랬듯 기꺼이 날개를 달아주고자 애쓸 것입니다. 수 모녀가 이 사회에서 고독하지 않게 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응원해주세요.


*글= 지화정 대리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지화정 대리, 동문장애인복지관 제공


장애 가족들의 손을 잡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