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병이 뭐예요?
푸르메소셜팜 곽연주 직원 가족 인터뷰
발달장애 직원 채용 후 1년...
발달장애 청년들이 자립을 꿈꿀 수 있는 행복한 일터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짓기 시작한 푸르메소셜팜.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 농업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직무로 원하는 업무를 찾아줄 수 있으리란 기대로 선택한 일터입니다. ‘케어팜’이라는 이름으로 장애복지와 농업을 연계한 선진국의 사례를 연구하면서 괜찮겠다는 확신도 얻었습니다.
2년여의 준비 끝에 드디어 지난해 10월 푸르메소셜팜을 착공하면서 1기 직원 15명을 뽑았습니다. 2·3·4기 직원도 차례로 채용해 현재 총 38명이 근무 중입니다.
‘직장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와 달리 무단지각이나 결근하는 이도 없고 아직 퇴사의사를 밝힌 직원도 없습니다. 이만하면 행복한 직장일까? 농부라는 생소한 직업이 20대 청년인 이들에게 만족스러울까? 우리가 기대한 대로 푸르메소셜팜은 이들에게 좋은 일터가 되고 있을까? 갑작스레 시작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그래서 직접 물어봤습니다. 당사자인 장애청년과 그를 가장 잘 아는 부모에게요.
월요병이 뭐예요?
올해 5월, 푸르메소셜팜 3기 직원 합격 발표날.
“문자메시지가 왔는데 연주가 떨려서 못 열어보겠다는 거예요. 결국 제가 대신 열어서 합격이라는 걸 확인해줬어요. 얼마나 기뻐하던지, 온 동네방네 다 연락해 자랑했어요.”
첫 월급날, 연주 씨(29)가 월급봉투와 함께 명함 한 통을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 9년간 꾸준히 일했지만 자신의 이름이 적힌 명함을 받은 것은 처음입니다. 엄마 정경미 씨는 명함을 통해 직장인으로서 연주 씨의 자부심이 크게 높아졌다며 푸르메소셜팜의 세심한 배려에 고마움을 표현합니다.
“늘 명함을 가지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나눠주고 있어요. 푸르메소셜팜이 어떤 곳인지, 자신이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열심히 설명하면서요.”
최근 다리가 부러져 깁스를 했던 연주 씨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했습니다. 다 나을 때까지 쉬라는 농장의 권유에도 꼬박꼬박 출근했던 연주 씨. 거기서 엄마는 그토록 꿈꿔왔던, 진정한 직장인이 된 딸의 모습을 봅니다.
“주말이 되면 항상 월요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요. 전 직장에 다닐 때는 월요일에 출근한다는 생각에 일요일부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든요.”
연주 씨에게 푸르메소셜팜은 행복을 주는 공간입니다. 하늘을 향해 쭉 뻗은 줄기와 푸릇한 잎 사이에 묻혀 빨갛게 익은 방울토마토를 따고 있으면 지겨울 새 없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답니다.
“온실에서 토마토를 따다 보면 주변에서 풀 냄새가 나는데 그게 너무 좋아요.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골라내는 것도 재밌어요.”
하루의 고단함과 행복을 함께 나누는 친한 동료들도 생겼습니다. 거리가 멀어 직장 밖에서 따로 본 적은 없지만, 돈을 많이 벌면 밖에서 만나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영화도 보며 놀고 싶은 친구들입니다. 푸르메소셜팜에서 연주 씨는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알아갑니다.
꿈이 쑥쑥 자라고 있어요
두 번째 월급을 받은 날, 연주 씨는 엄마와 함께 은행에 가서 청약저축통장을 만들었습니다. ‘내 집 마련’이라는 멋진 꿈이 생겼거든요. “아직은 엄마와 떨어져 살 용기가 없지만, 돈을 많이 모아서 제 (이름으로 된) 집을 갖고 싶어요.”
연주 씨가 이런 꿈을 얘기한 것은 직장생활 10년 만에 처음입니다. “그럴 수밖에요. 늘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돈을 받거나, 계약직이었기 때문에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불안했거든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에 다니게 되니 그만큼 꿈도 커졌어요.”
연주 씨의 첫 직장은 장애인보호작업장이었습니다. 동상에 걸릴 만큼 좋지 않은 환경에서 하루 8시간씩 일했지만 월급은 40여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두 번째 직장은 기관에서 운영하는 작은 카페. 복지관에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후 취업한 이곳은 일도 편하고 여유시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근로지원인과 둘뿐이라 동료도 없고 부지런한 연주 씨에게는 지루하기만 했습니다. 1년 계약직이라 매년 계약을 새로 해야 하는 불안정함도 있었지요. 그마저도 코로나19 확산으로 문을 닫으며 연주 씨는 오갈 데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활동지원사를 통해 푸르메소셜팜에서 장애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자연친화적인 공간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쏙 들었어요. 일하면서 정서적인 안정감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많지는 않으니까요.”
특히 최저임금 보장과 4대 보험 가입으로 마땅히 일한 만큼 대우해줘야 한다는 푸르메소셜팜의 원칙에 엄마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푸르메소셜팜의 정규직원이라는 것이 연주에게는 큰 자부심이에요. 모든 사람에게 자랑하지요. 어떤 곳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끊임없이 얘기해요. 푸르메소셜팜은 우리 아이들에게 직장의 개념을 넘어 꿈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에요.”
'꿈'이라고만 생각했던 평범한 하루
교직에 몸담고 있던 엄마는 연주 씨를 위해 승진 욕심도 버리고 도시를 떠나 이천으로 왔습니다. 삶의 중심이 ‘나’에서 ‘아이’로 옮겨간 것입니다.
“장애자녀에게 가장 좋은 스승은 부모라고 생각해요. 재활치료 대신 아이를 옹호해주는 커뮤니티를 만들어주고, 직접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최대한 많은 자극을 주려고 노력했어요.”
그 덕분에 연주 씨는 대부분의 일상생활을 혼자서 할 수 있을 만큼 잘 자라 주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성경 필사를 해요. 매일 체중계에 올라 몸무게가 늘었으면 식사도 간단하게 먹어요. 잠들기 전에는 일기를 쓰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주려고 편지도 써요.”
그런 연주 씨도 안정적인 직장을 찾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없을 것 같아 언젠가는 연주와 함께 일할 카페를 직접 차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푸르메소셜팜 덕분에 그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지요.”
얼마 전 생일을 맞아 연주 씨에게 용돈 20만 원을 선물로 받은 엄마. 상상만 해왔던 일이 현실로 이뤄졌다는 생각에 벅차오릅니다.
일을 마치고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하다는 연주 씨. “오늘 내 하루는 어땠는지, 엄마는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얘기할 때 너무 즐거워요.”
연주 씨의 입에서 행복했던 하루가 흘러나오는 순간부터 엄마의 하루에도 행복이 스며듭니다. “연주가 자신이 번 돈으로 독립해 하고 싶은 것, 필요한 것도 직접 사면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꼭 보고 싶어요. 푸르메소셜팜에 다니면서부터는 그 바람이 꿈만은 아닌 것 같아 무척 설렙니다.”
*글, 사진= 지화정 간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