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록 기부자 1편] 내 삶을 완성짓는 아름다운 마침표, 나눔!

푸르메재단 후원자 이야기_권오록 기부자 1편


 



“푸르메재단이지요? 조금 전에 1억 원을 송금했으니 확인해보세요. 잘 부탁합니다.”


2019년 2월 25일에 걸려온 전화 한 통.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말에 담당 직원은 처음엔 장난 전화인 줄 알았다. 그런데 계좌를 확인하니 정말 1억 원이 입금돼 있었다. 기부자는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처럼 안타까운 사정이 어디에 있느냐”면서 “좋은 일에 알아서 잘 써달라”고만 했다. 직접 만날 필요도 없으니 또 연락하지도 말라고 했다.


언론매체에 알려진 소식만을 듣고 이렇게 큰돈을, 아무 조건 없이 쾌척하는 기부자는 처음이었다. ‘얼굴 없는 기부 천사’로 유명한 권오록 기부자와 푸르메재단이 처음 인연을 맺은 장면이었다. 2달이 지난 그해 4월, 권오록 기부자를 어렵사리 설득해서 재단 사무실에 모셨다.


“얼굴 없는 기부 천사”의 등장


작지만 단단한 체구에 반짝이는 눈빛, 당시 85세의 어르신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기억력이 좋은 분이었다. 손에는 5년도 넘게 사용하고 있다는 2G 폴더폰이 들려 있었다. “좋은 일을 하는 곳이고 믿을 만하다 싶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기부를 합니다. 주거래 은행의 직원도 이제는 별로 놀라지 않아요.”


2019년 3월 5일, 권오록 기부자가 푸르메 사람들에게 처음 모습을 드러낸 날. 백경학 상임이사와 직원들이 자택을 방문해 한사코 사양하는 그와 어렵사리(?) 기념사진을 찍었다.
2019년 3월 5일, 권오록 기부자가 푸르메 사람들에게 처음 모습을 드러낸 날. 백경학 상임이사와 직원들이 자택을 방문해 한사코 사양하는 그와 어렵사리(?)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장애어린이가 청년이 되면 좋은 일자리를 갖도록 아름다운 스마트팜을 짓는 데 기부금을 쓰겠다고 하자 흔쾌히 허락하셨다. 간단히 대화를 마치고 일어선 권 기부자는 재단 사무국과 푸르메재활의원의 활기찬 모습을 쓱 훑어보고는 바람처럼 떠났다.


연로한 분이어서 편히 모시려고 택시를 부르려 했더니 ‘그럴 돈이 있으면 어려운 사람 돕는 데 쓰라’고 살짝 역정을 내시기도 했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이토록 과감하고 시원하게, 적극적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멋진 어르신이 계시구나’ 하는 마음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기부하고 지켜보다가 또 기부…권오록표 나눔법


아름다운 소동(?)을 겪었던 재단 직원들은 권오록 기부자가 방문한 다음 날 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권 기부자로부터 “1억 원을 더 보냈으니, 확인해 보라”는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푸르메 임직원의 얼굴을 보고 의료진이 장애어린이들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니까 믿을 만한 사람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는 이유에서였다.


훗날 알고 보니, 이는 권오록 기부자 특유의 ‘나눔 패턴’이었다. 먼저 1억 원을 기부하고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1억 원을 기부하는 식이다. 2017년에 대한적십자사에도 1억 원을 보내고 이듬해 9월에 다시 1억 원을 보탰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도 2017년 5월에 1억 원을, 이어서 2018년 10월에 다시 1억 원을 기부했다.


그러면서 ‘내세울 일이 절대 아니니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못박았다. 보도자료도 안 되고, 이름을 알려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기부금을 낸 단체의 임직원과 식사자리 한번 갖지 않았다. 그가 ‘얼굴 없는 기부자’로 알려진 이유다.


여러 단체에서 받은 감사패가 자택의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있다.
여러 단체에서 받은 감사패가 자택의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있다.

푸르메재단과 인연을 맺은 뒤에도 나눔의 행보는 멈출 줄을 몰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나라 전체에 암울한 기운이 덮친 2020년 봄,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익명으로 5억 원을 기부했다. 아내는 물론 네 자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즈음부터 ‘나의 나눔을 남에게 알리지 말라’는 지론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한 신문사 기자와 푸르메재단 사무실에서 만나 “기부의 기쁨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제는 그 기쁨을 만인과 나누고 싶다”면서 “내 아들과 딸, 손주뻘 되는 사람들이 내 모습에서 좋은 영감을 받았으면 한다”고 했다. “오른손이 한 일을 가끔은 왼손이 알아도 된다는 게 새 지론”이 되었다는 것이다.


부인 김봉숙 여사와 함께 경기도 여주시 푸르메소셜팜의 유리온실을 찾은 권오록 기부자. 자신의 기부금이 쓰인 푸르메소셜팜을 둘러보며 “사시사철 이렇게 많은 토마토가 열린다니 기적이 따로 없다”고 감격했다.
부인 김봉숙 여사와 함께 경기도 여주시 푸르메소셜팜의 유리온실을 찾은 권오록 기부자. 자신의 기부금이 쓰인 푸르메소셜팜을 둘러보며 “사시사철 이렇게 많은 토마토가 열린다니 기적이 따로 없다”고 감격했다.

기부의 범위도 폭이 넓다. 모교인 대동세무고에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을 조성했고, 평생을 공직자로 몸담았던 서울시의 퇴직자 모임, 안동 권씨 종친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2019년 언론 인터뷰로 얼굴이 알려진 뒤로도 도움이 필요한 곳에 9억여 원을 추가로 기부, 지금까지 총 21억여 원을 기부했다. 큰 기업의 사주가 수백억, 수천억을 기부해 화제가 된 적은 있었지만, 은퇴한 어르신이 부지런히 기부처를 찾아 이렇게 열심히 기부하는 경우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푸르메재단에 총 5억 원 기부한 ‘밥 잘 사주는 할아버지’


2021년 3월 3일, 지칠 줄 모르는 기부의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한 권오록 기부자. 시상자인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와 함께.
2021년 3월, 지칠 줄 모르는 기부의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한 권오록 기부자. 시상자인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와 함께.

권오록 기부자는 2019년부터 3년 동안 4차례에 걸쳐 총 5억 원을 푸르메재단에 기부했다. 그런데 큰 기부자이기에 앞서 푸르메재단 직원들 사이에서 ‘밥 잘 사주는 할아버지’로 통한다. 계절이 바뀌었다고 밥을 사고, 좋은 일이 생겼다고, 또 덕분에 상을 받았다고 밥을 사신다. 급한 일로 식사자리에 오지 못한 직원은 다음에 잊지 않고 꼭 부르신다.


당신에게 기쁨을 안겨준 나눔의 최일선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푸르메 임직원이 아들 같고 손주 같아서 맛있는 음식을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은 것이리라. 본인은 소식(小食)한다며 자기 몫을 한껏 덜어내신다. 그러면 마주 앉은 직원의 그릇이 절로 수북해진다. 기부자와 기부단체의 사이가 아니라 ‘식구(食口)’의 정을 나누는 사이가 된 셈이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글= 정태영 대외협력실장

*사진= 푸르메재단 DB, 조선일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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