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행복으로 내일을 삽니다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 희귀난치질환 지원사업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지아(가명)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지아(가명)


태어난 지 4개월 된 아이는 늘 잠에 취해 있었습니다. 몸도 축축 늘어졌습니다. 본능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감지한 엄마가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서울의 큰 병원까지 찾아 정밀검사를 받은 끝에 나온 병명은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잦은 발작과 뇌 손상으로 중증의 장애가 뒤따르며, 더 나빠지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알려진 희귀 난치 질환입니다. 백일이 갓 지난 지아(가명)에게 내려진 가혹한 선고였습니다.


어렵게 얻은 자유라 더 소중합니다


지아의 아침은 경련으로 시작됩니다. 경기를 멈추기 위해 써본 약만 해도 족히 수십 개는 될 터. 그중 파킨슨병 치료에 주로 쓰이는 약이 지아에게 효과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안 되는 이 약의 비용은 병당 약 30만 원. 2개월에 1병씩 소진하는 지아의 약값은 고스란히 가족의 부담입니다. 각종 의료적 치료와 고액의 재활치료비까지 감당해야 하는 지아네 가족에게 푸르메재단과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의 약제비 지원은 큰 도움이 됐습니다.



“경기를 멈추게 하는 것이 이 병의 가장 큰 과제예요. 경기로 인한 뇌 손상은 재활치료를 통해 애써 앞으로 돌려놓은 아이의 시계를 순식간에 뒤로 돌려버릴 수 있거든요. 이번에 지원받은 덕에 약을 제때 먹이지 못할 수 있다는 부담은 덜었어요.”


지아가 약을 먹는 시간은 오전 7시 30분과 저녁 7시 30분으로 하루 두 번. 경기의 무서움을 잘 아는 엄마는 이 시간을 절대 놓치는 법이 없습니다. 잘 맞는 약을 찾은 지아는 이제야 밤새 깨지 않는 날들이 늘었습니다. 경기로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밤새 안아 재우는 것이 일상이었던 엄마는 처음에 지아가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숨은 쉬는지, 반응이 있는지 밤새 확인하기도 했어요. 이제야 비로소 제 시간을 찾았어요.”


지아가 태어난 뒤로 자유를 포기해야 했던 엄마는 요즘 영화를 보고 산책도 하며 자신의 시간을 즐깁니다. 지아와 함께할 미래를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땄습니다. 혼자 움직이지 못하는 지아의 몸에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2시간에 한 번씩 깨서 몸을 굴려주어야 하기에 여전히 엄마의 밤은 깁니다. 그래도 어렵게 되찾은 잠깐의 자유에 엄마는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지아가 준 가장 큰 선물


“첫째 주명(가명)이는 발달도 빠르고 가르치면 금방 배우는 아이였어요. 늘 자랑하고 다니느라 하루가 짧았어요. 참 유별나게 키웠지요.”


지아의 엄마가 된 지금은 그때를 지우고만 싶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 자랑들이 지금의 내가 그런 것처럼 큰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지 부끄럽고 후회가 됩니다. “그때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날 자신이 없어요. 제가 아파보니 다른 사람의 아픔이 보이네요.”



가족을 이해하게 된 것은 지아가 준 가장 큰 선물입니다. 엄마는 연세가 많은 친정 부모님에게 지아의 병을 1년 가까이 숨기다가 신경안정제까지 드시게 한 후에야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어머니의 태산 같은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우리 딸 그동안 힘들었겠다. 너무 걱정하지 마. 네 뒤에 항상 내가 있을 테니까.’


“그때 느꼈어요. 엄마란 참 강한 존재라는 것을요. 지금도 힘들 때마다 그 말에 의지하고 있어요.”


같은 아픔을 가진 이웃들과 끈끈한 관계를 쌓아가며 스스로 세운 단단한 벽을 허물게 된 것도 지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지아가 태어난 후 우리 가족에게 여행은 없는 단어였어요. 그런데 장애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거나 캠핑을 다니는 용감한 부모들이 주변에 참 많더라고요. 그분들의 격려로 이번에 근처 복지관의 여행비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했어요.”


지아에게 딱 맞는 유모차를 지원받는 데에도 많은 이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지아처럼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들은 유모차에 있는 시간이 정말 많아요. 지인들을 통해 아이의 체형이나 상태에 맞는 보조기기 기능을 갖춘 유모차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높은 비용에 선뜻 사지 못하고 있었는데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과 푸르메재단,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의 지원과 도움으로 지아에게 딱 맞는 유모차가 생겼어요. 그래서인지 이전보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오늘의 행복으로 내일을 삽니다


지아의 상태는 조금씩 더 나빠지는 중입니다. 소변줄을 다시 달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콧줄도 다시 달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꾸준히 받아온 재활치료가 무용지물이 된 상황.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무너진 그 순간을 엄마는 어떻게 버텨온 걸까요?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죠. 십 년 넘게 수많은 고비를 넘어왔더니 이제는 지아에 관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어요. 제가 병에 걸려 지아를 감당할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올까 봐, 그게 가장 두려워요.”



엄마는 매일 매 순간의 작은 행복들을 모아 내일을 살아냅니다.


“멀리 보지는 않으려고 해요. 지아가 경기하지 않고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보낸 날이면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고, 큰 아이가 학교에서 즐거웠다는 말에 행복을 느껴요. 남편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하루를 보내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들지요. 행복이 뭐 별건가요?”


오늘, 이 순간의 기쁨을 아는 지아네 가족의 하루가 늘 조금씩 더 행복해지기를 기대해봅니다.


*글= 지화정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지화정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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