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로 인해 다른 세상을 만났다

웹툰 <열무와 알타리> 유영 작가 인터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이탈리아 여행. 하지만 비행기는 불시착했고 네덜란드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주위 사람들은 그곳이 얼마나 멋진지 자랑하겠죠. 분명 당신은 앞으로 쭉 “나도 이탈리아에 가려고 했어. 그러려고 했는데...”라고 말할 거예요.


그 고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잃어버린 꿈이 너무나 크니까요.


하지만 이탈리아에 못 간 것을 언제까지 한탄만 하고 있으면 네덜란드만의 아주 특별한 사랑스러움을 진심으로 즐길 수 없을 겁니다.


- 에밀리 펄 킹슬리의 “네덜란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중에서 -




장애·비장애 자녀를 키우는 일상을 현실적이면서도 유쾌하게 그려내 큰 사랑을 받는 웹툰 <열무와 알타리>의 유영 작가.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개원 5주년을 맞아 조기 출산한 쌍둥이, 누구보다 든든한 조력자인 남편 토토와 때로는 좌절도 하지만,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으며 밝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유 작가를 만났습니다.


사랑하던 일을 포기했다


스무 살, 그림동호회에서 만난 남편에게 첫눈에 반해 그해 이른 결혼을 하고 14년을 딩크족으로 살던 유 작가는 30대 중반에 이르러 쌍둥이의 엄마가 됐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걷고, 말하고, 학교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조카가 어느새 훌쩍 큰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우리 부부의 시간만 멈춘 것 같더라고요. ‘아이가 있으면 어떨까’하는 얘기를 막 하려던 찰나에 거짓말같이 임신이 됐어요. 운명이라고 생각했죠. (웃음)”


게임디자이너로 일하는 것이 좋았던 유 작가는 3개월의 출산휴가가 끝나면 바로 복직할 예정이었습니다. “복직계획을 아주 철저하게 세워놨었어요. 직장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거든요.”



하지만 조기 출산에서 시작된 예상치 못한 일들로 복직계획은 모두 무산됐습니다. 이른둥이로 태어난 두 아이의 오랜 병원 생활, 퇴원 후 이어진 부정맥과 경련, 한 아이의 장애 판정, 끝이 없는 재활치료까지... 육아휴직까지 모두 소진해도 도저히 출구가 보이지 않아 결국 회사에 사직서를 냈습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중증의 장애아동은 아동돌보미 지원을 받을 수 없었고, 소득 제한에 걸려 장애아동돌보미 지원도 받을 수 없었어요. 사설도우미는 장애아이라는 이유로 큰 비용을 요구했지요. 사직서를 내고 오는데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불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토토와 나는 항상 절벽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 웹툰 <열무와 알타리> 중


웹툰 <열무와 알타리>의 초반부에는 조기 출산에 대한 불안, 뭐든 하고 싶어도 해줄 수 없는 죄책감, 어느 것 하나 당연하게 흘러가지 않은 현실을 견뎌야 했던 작가의 좌절과 그럼에도 버텨내야 하는 부모의 절박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알타리와 열무를 키우는 과정은 너무 달랐습니다. 장애가 있는 열무는 알타리가 누리는 당연한 것들을 전혀 누리지 못했습니다. 키즈카페를 가도 알타리는 온 데를 뛰어다니며 놀지만 열무는 미끄럼틀 한 번을 탈 수 없습니다. 평소 열무의 손길에 따뜻한 미소를 짓던 이들도 보조기기를 찬 열무가 손을 뻗으면 표정이 굳으며 외면했습니다.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요. 지난 일임에도 그때의 힘겨웠던 감정이 생각나서 그릴 때도 힘이 들었고, 보시는 분들도 힘겹지 않았을까 싶어요.”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올 정도로 힘겨웠던 시간들. 유 작가는 당시 열무의 재활치료를 가는 도중에 차로 가드레일을 박고 싶다는 생각을 셀 수 없이 했습니다. “우리만 없으면 남은 가족은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유 작가가 무너질 때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됐던 남편도 한계가 온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때 위로가 된 것은 마찬가지로 장애자녀를 키우고 있는 주변 지인의 말이었습니다. “장애가 있는 자식을 키우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엄마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 그래도 나를 부모로 선택해서 온 아이인데 우리가 버텨야지.”


웹툰으로 마음을 치유하다


웹툰 연재는 그간 곯아 있던 유영 작가의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됐습니다.


“이제껏 이해받지 못할 것을 알기에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고, 많은 분이 ‘꼭 내 얘기 같아요’ ‘제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오신 거 아닌가요?’ ‘장애자녀 키우는 것을 이해받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그분들에게 이 웹툰을 보여줘야겠어요’라고 공감해주셔서 참 많은 위로가 됐어요.”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꾼다거나 하는 거창한 사명감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이 웹툰이 과거의 자신들처럼 목적지 없는 비포장도로의 시작점에 서 있는 이들에게 나아가야 할 방향과 지침서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장애아이를 키우니까 힘든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영국에서 장애자녀를 키우고 있다는 한 독자의 메일을 받았어요.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자마자 나라에서 장애에 대한 모든 경제적인 지원은 물론 때맞춰 장애에 맞는 검사를 하라는 통지가 날라오고 재활치료부터 보조기구, 전담교사까지 모든 것을 지원받았다면서, 아이에게 장애가 있는 건 슬펐지만 국가의 울타리 안에 있다는 기분이 들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유 작가는 한국에서 장애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장애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나 경제적 문제보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 어디서도 정보를 얻을 수 없었던 막막함이었다고 얘기합니다. 평생 장애에 대해 접해본 적이 없는 부모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직접 알아보고 선택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때 제가 느꼈던 외로움과 막막함을 이제 막 장애자녀를 품에 안은 또 다른 부모들은 느끼지 않았으면 해요.”


행복하기로 마음먹다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는 너의 미소에 행복하기로 마음먹었다.’ - 웹툰 <열무와 알타리> 중


요즘 우울한 날이 많아졌다는 열무. 커갈수록 쌍둥이 형제인 알타리와 달리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자신을 점차 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타리가 만지고 움직이고 뛰어노는 모든 활동을 부럽게 쳐다보고 울기도 해요. 한국에서 전혀 다른 사회에 사는 두 아이가 모두 만족하기란 쉽지 않아요.”


그래도 이제 유 작가는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갑니다. “음식을 먹는 것은 열무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얼마 전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맛있는 빵을 먹으면서 깔깔대고 웃었거든요. 열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웃을 수 있는 그 순간이 참 소중하고 행복하게 느껴졌어요.”


열무가 있기에 유 작가는 이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회를 만났습니다. 초등학교부터 학창시절, 사회생활까지 30년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한국입니다. “열무가 없었으면 평생 알 수 없는 세상이었을 거예요. 지금도 열무가 옆에 없으면 제가 평생 알고 살아온 그 익숙한 세상이 다시 펼쳐지죠. 열무와 알타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게 달라요.”


유 작가는 열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사회로 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만약 자립하지 못해도 자기 인생의 중요하고 사소한 문제들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회, 자신을 포함한 장애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마음 놓고 늙어갈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남편 '토토'에게 안겨 있는 열무(왼쪽)과 알타리.
남편 '토토'에게 안겨 있는 열무(왼쪽)과 알타리.

“자신의 아이가 ‘장애’라는 가혹한 사실을 이제 막 알게 된 부모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그 장애만 보여요. 그래서 한창 예쁜 모습을 다 놓쳐버리고 말죠. 제가 그랬거든요. 힘들었던 시기에 찍었던 열무의 사진을 지금 보면 이렇게 예뻤던 모습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갔다는 생각에 참 아쉬워요. 아이의 장애가 안타깝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도 되겠지만, 그 순간의 예쁜 모습들은 지나면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글= 지화정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유영 작가 웹툰,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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