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푸르메직업재활센터 2편
[산하기관 탐방기] 마포푸르메직업재활센터_2편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푸르메 인턴이 간다!’를 통해 여러분과 함께 푸르메재단 산하기관을 둘러보고 있습니다. 그 시작으로 지난주부터 마포푸르메직업재활센터(이하 푸르메직업재활센터)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있지요. 김재일 마포푸르메직업재활센터장의 설명을 들으며 센터를 둘러보니, 일반사업체에 취직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들이 사회로 나와 주체적 삶을 살 수 있도록 작업의 기능을 가르치는 동시에 잘 보호하는 직업재활센터의 역할이 정말 중요해 보였습니다. 김 센터장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직업재활 분야는 지난 20년간 긍정적으로 변화해왔습니다. 시설 자체도 많아졌고, 장애인의 노동에 대한 인식도 많이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장애인의 노동이나 생산 제품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은 장애인이 만든 제품에 대한 우선구매 제도나 생산품 인증제도 등이 생겼고 인식도 많이 변했어요. 과거에는 스스로 몸을 제어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을 묶어놓는 비인간적 행위가 당연했지만,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죠. 요즘은 가능한 대안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해 나간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푸르메직업재활센터에서는 직업재활과 교육, 사회적응 훈련 외에 다양한 동아리 활동과 문화·복지 프로그램, 사회참여활동을 제공합니다. 이곳의 자랑 ‘아텐토’ 브랜드가 그중 하나인 미술 프로그램에서 탄생했다는 얘기는 지난 회에 들려드렸죠? 이런 프로그램에 대한 발달장애인 직원과 보호자들의 만족도는 아주 높답니다.
‘아텐토’ 디자인 개발에 직접 참여한 김현호 씨는 “일주일에 2시간씩 하는 미술활동이 기다려진다. 재미있게 그림도 그리고 만들기도 할 수 있어 즐겁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직접 그린 그림이 캐릭터로 변신해 가방에 새겨진 모습을 처음 봤을 때는 놀라기도 했지만, ‘아이디어를 칭찬받고 제품을 직접 판매하니 기뻤다’고 하네요.
김현지 씨도 본인이 디자인한 가방을 구매한 사람들이 ‘누가 이 그림을 그렸느냐’고 묻고 칭찬해줄 때 가장 행복하다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현지 씨는 작년 푸르메직업재활센터가 개최한 전시회에서 아이들의 3D펜 체험을 돕기도 했는데요. “제가 아이들에게 사용법을 알려주면서 마음이 설렜다. 스스로가 존경스러웠다.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다”며 예술 활동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 단순히 미술활동 시간에 만든 작품이 상품화된다는 의미를 넘어, 작가로서 자신이 그린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성취감을 느낀 것이죠.
장애가 특별하지 않은 세상에서는 차별도 없다
우리나라가 장애인복지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1988년 올림픽 이후였다고 합니다.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을 개최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던 것이죠. 이후 국가가 얕은 수준이지만 장애인복지에 관심을 두며 관련 제도들이 정착하고, 작년에는 장애인등급제가 폐지되고 중증, 경증 두 범주로 나뉘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장애인들의 ‘등급’을 매기는 나라는 대한민국과 일본뿐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는 김 센터장은 이 부분에 주목하였습니다.
“푸르메직업재활센터 내에서는 ‘장애인’이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이 친구들은 그저 ‘함께 일하는 사람’일 뿐이에요. 장애인은 또 다른 인간의 분류가 아니에요. 장애인을 하나의 분류로 삼기 때문에 우리나라 장애인복지 발전에 한계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이 겪는 차별을 ‘내 일, 내 이웃의 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장애인을 타자화하는 현상 또한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문제 중 하나입니다. 김 센터장은 장기요양제도를 예로 들어 설명했는데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쉽게 말하면 치매 어르신에 대한 비용 부담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언젠가 나에게도 닥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다수 국민이 이 비용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장애인의 약 90%가 후천적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누군가의 불행일 뿐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이 문제의 시작이라는 김 센터장의 의견에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내 친구나 가족 중 장애인이 있으면, 그 사람은 나에게 ‘장애인’이 아니라 그냥 ‘내 친구, 내 가족’이잖아요. 이런 시선의 차이가 많은 것을 달라지게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과거보다 나아지고 있고 더 많이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장애에 대한 관점의 변화와 함께 제도적 체계가 잘 갖춰진다면 모두가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장애인복지 제도가 많이 부족한 편은 아니에요. 다만 복지 서비스는 필요한 사람이 신청해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속성이 있습니다. 신청하려면 제도에 대한 여러 정보나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문제는 그 정보를 국민 개개인에게 잘 전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먼 훗날 함께했던 동료들에게 ‘그 선생님은 우리를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대했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가장 기쁠 것 같다는 김 센터장. 어떻게 직업재활 분야에 첫발을 내뎠는지 궁금하다는 제 질문에 “우연이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사회에 나와 경제 활동을 시작한 김 센터장은 서른 살이 되던 즈음 사업을 하며 남는 시간에 동네 복지관에서 수화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수화가 너무 재미있어 이후 사업도 접고 1년 동안 봉사의 즐거움에 푹 빠졌답니다.
“그러다 보니 가진 돈이 다 떨어져 우연한 기회로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하다 보니 부족함을 느껴 공부를 시작했고, 전공으로 삼으며 그렇게 20년이 흘렀습니다. 그저 순간마다 좋아하는 일,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따라가다 보니 이렇게 왔네요.”
많은 사람이 돈을 벌고 쓰는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데, 생업을 그만두고 오로지 봉사에 온몸을 던졌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너무 낯설고 놀랍게 다가왔습니다. 인생의 매 순간 좋아하고 하고 싶은 선택지만을 골랐고, 그것이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삶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인생의 목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복지란 특정 집단에 무언가를 ‘주는 것’이라고만 알았던 좁은 시각을 벗어날 수 있는 관점의 전환 또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장애인복지 관련 분야에 종사하며 김 센터장이 겪은 가장 큰 변화는 ‘장애인을 장애인 같지 않게,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게 대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장애인이 길을 가다 넘어지면 많은 사람이 달려가서 일으켜주고 손을 잡아줄 거예요. 하지만, 길을 걷다 넘어지면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모른 척하는 것이 덜 창피할 때가 있지 않나요? 장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친 배려가 차별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도움을 주려는 마음은 좋지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지 물어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상식입니다.”
신기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안경을 써왔는데요. 현재 친구 대부분도 안경과 렌즈를 착용하거나, 시력교정 수술을 했을 만큼, 주변에 교정 없이 시력이 좋은 친구가 정말 드물어요. 하지만 김 센터장의 어린 시절에는 분위기가 달랐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안경 쓴 학생들이 차별을 받았어요. 안경을 착용하는 것이 일상적인 상황이 되니 차별이 없어진 것입니다. 미국의 마서즈 비니어드 섬은 과거 주민의 대부분이 농인이었기 때문에 19세기까지만 해도 섬의 거의 모든 주민이 수어로 소통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 섬에 살려면 비장애인도 반드시 수어를 배워야 했죠. 이처럼 장애가 특별하지 않은 세상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변해야 한다
탐방을 마치기 전, 마지막으로 김 센터장에게 앞으로의 꿈과 목표를 물었는데요. 또 제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을 주셨습니다. “목표나 꿈은 따로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매 순간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확실히 한다고 합니다.
“사회복지사의 역할 중 하나는 ‘변화를 이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유일한 바람은 지금 이곳, 푸르메직업재활센터에서 함께 일하는 장애인들이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의 삶을 사는 거예요. 그 변화에 제가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곧 제가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작은 변화에 함께하고 싶은 특별하지 않은 마음입니다.”
‘자원봉사’의 개념, ‘장애’라는 개념을 성인이 되어 처음 알았다는 김 센터장의 이야기가 계속 마음 한구석에 남습니다. 6.25 전쟁 이후 형성된 장애인 집단 거주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는 그에게 한쪽 팔이 없는 이웃집 아저씨는 내가 못 드는 무거운 짐도 번쩍번쩍 나르는 이웃 어른일 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따로 분류되어야 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푸르메직업재활센터 탐방을 준비하며 ‘직업재활을 통해 장애인들은 어떤 변화를 겪을 수 있을지’만을 고민하던 저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진짜 변화해야 할 사람들은 장애인이 아니라, 작은 차이로 사람을 구분 짓고 종류를 나누는 ‘우리 모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장애인, 특히 발달장애인의 직업재활이 더더욱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르며 동시에 같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그들의 사회 참여와 함께 사는 삶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장애인과 함께하는 삶의 출발에 특별한 의미나 각오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좋아서, 함께하고 싶어 시작한 마음으로 20년째 첫 마음을 간직해온 김 센터장이 꿈꾸는 세상을 하루빨리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마포푸르메직업재활센터와 푸르메재단의 행복한 동행을 응원합니다.
*글= 오정윤 인턴(커뮤니케이션팀)
*사진= 푸르메재단DB, 마포푸르메직업재활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