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만한 지역사회

2020 지역복지 이야기마당


 


지난 27일, ‘누구나 살만한 지역사회를 꿈꾸는 장애인복지 실천현장 이야기’를 주제로 <2020 지역복지 이야기마당>이 열렸습니다. 푸르메재단 산하의 과천시장애인복지관,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종로장애인복지관이 주최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재확산으로 수많은 논의 끝에 온라인 행사로 결정이 됐습니다. 사회 전체가 큰 변화에 직면했듯 장애인복지 역시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대응을 선택한 것도 변화의 일부입니다.


온라인 라이브로 진행했던 '지역복지 이야기마당' 현장
온라인 라이브로 진행했던 '지역복지 이야기마당' 현장

오후 2시에 시작해 3시간이 훌쩍 넘게 진행되는 동안 150명 이상이 라이브에 참여했고, 120여 명의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컴퓨터 앞을 지켰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누구나 살만한 지역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온라인의 특성상 많은 분과 의미 있는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세 복지관을 대표해 인사말을 하는 곽재복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장
세 복지관을 대표해 인사말을 하는 곽재복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장

“지역 커뮤니티센터의 역할로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복지관이 되기를 기대하며, 장애가 있는 이들이 평등하고 귀한 존재로서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복지 이야기마당이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곽재복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장의 바람과 함께 2020 지역복지 이야기마당이 시작됐습니다.


[기조강연] 평범한 삶을 지원하는 자산기반 접근

_김용득 교수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지역사회 중심의 복지서비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하는 김용득 교수
지역사회 중심의 복지서비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하는 김용득 교수

기존의 장애인 복지서비스는 장애인의 사회를 복지공간(Service Land)과 현실세계(The Real Land)로 구분합니다. 복지공간은 ‘특수학교, 장애인복지관, 장애인을 위한 체육교실 등’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장애인은 비장애인처럼 일상을 누립니다. 하지만 현실세계로 나오면 장애인은 아무것도 못 하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됩니다. 일반학교에 다니며 친구를 사귀고 함께 운동하고 모임에 참여하는 일상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일을 구하는 것도, 심지어 소비자로서 지역의 카페나 병원을 방문할 때도 늘 거절당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기존의 서비스는 이런 방식으로 복지공간와 현실세계 사이에 벽을 세웁니다.



복지공간과 현실세계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사람 중심의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그 서비스는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이것이 장애인이 보통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장애인복지의 핵심입니다.


대화를 통해 장애인이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 후 지역사회 내에서 이 욕구를 이뤄줄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산을 찾고 설득하고 연결합니다. 이러한 서비스 절차를 체계화하는 것이 그다음입니다. 앞서 체계화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마당에 또 다른 절차를 만든다는 것이 언뜻 모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습관과 행동을 한 번에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기존의 방식과 다른 시스템을 만들어 변화를 위한 통로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직원의 실제 역량을 키우는 일입니다. 복지나 재활처럼 기존에 서비스했던 분야만이 아니라 또 다른 전문성을 개발해야 합니다. 제빵, 임가공 등 업종이 제한적인 성인발달장애인의 직업개발 지원, 의사소통 지원(AAC), 지역사회 접근을 위한 핵심영역인 시민옹호인 발굴 및 양성, 활동 지원, 장애인 주거생활 지원 등이 지금 당장 필요한 역량입니다.


위와 같은 접근방식을 현장에서 직접 적용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애인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사회 중심의 복지서비스를 실현하고 있는, 각기 다른 세 가지 사례를 소개합니다.


[사례1] 약자가 살만한 사회, “월평빌라” 이야기

_박시현 소장(중증장애인거주시설 월평빌라)


월평빌라는 중증장애인 거주시설로 2008년 12월, 경남 거창군에 문을 열었습니다. 거창군은 좁은 면적에 4만 명이 모여 살아 소도시에 버금가는 인프라가 갖춰진 지역입니다.


강자경 씨의 지역사회 자산지도
경남 거창군 시내에 있는 강자경 씨의 사회적 자산 지도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오랫동안 월평빌라에 살다가 2016년에 독립해 현재는 시내에서 자취하는 강자경 씨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강자경 씨와 그 둘레사람인 미용실 사장님, 목사님과 성도들, 반찬가게 사장님, 그림공방 강사와 수강생, 집주인 아주머니와 그 이웃들의 이야기입니다.


강자경 씨와 미용실 사장님의 인연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월평빌라 사람들이 잠깐 길을 잃은 강자경 씨를 찾아다니다가 김정숙미용실에 들렀는데, 사장님이 함께 걱정하시며 선뜻 가게 문을 닫고 함께 찾으러 나섰습니다. 그 후 강자경 씨는 직장을 마치면 종일 김정숙미용실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김정숙 사장님은 가족이 없어 명절 때마다 외로워하는 강자경 씨를 위해 자신의 집에 불러 음식을 대접하기도 하고, 매년 자신의 색소폰 연주회에 강자경 씨를 초대합니다. 올해부터 김정숙미용실은 실직한 강자경 씨의 새 직장이 됐습니다.


2009년 월평빌라 입주 때부터 다녔던 거창제일교회에서 강자경 씨는 여전도회 회원입니다. 매회 나들이에 빼놓지 않고 참석합니다. 자취방을 구하고 이사할 때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2019년 이사한 집은 교우들이 종종 놀러 와 예배도 보고 모임장소로 활용됩니다.


강자경 씨는 2013년부터 7년간, 주 5회 1시간씩 시내 한가운데 있는 랜드로바에서 청소를 했습니다. 직장인으로서 자존감을 높여주었고, 번화가를 누린다는 자신감도 심어준 곳입니다. 지역주민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8년간 다니던 한글교실을 그만두고 지난해부터 다니기 시작한 그림공방. 집과 교회 사이에 위치해 오가며 이웃을 만날 수 있고 강사와 회원들과 어울리며, 직접 만든 비누와 향수를 다른 사람과 나누기도 합니다.


강자경 씨가 월평빌라 최희자 선생님, 동료 김성요 씨와 함께 찍은 사진
강자경 씨가 월평빌라 최희자 선생님, 동료 김성요 씨와 함께 찍은 사진

강자경 씨는 2016년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여러 집을 직접 다니며 까다롭게 고른 집에서 지난해 집주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주했습니다. 연세가 많았던 집주인은 월세를 깎아달라는 요청은 거절했지만 대신 밥은 먹었는지, 집에는 잘 들어왔는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살뜰히 챙겨주었습니다. 2019년, 지금 사는 집은 단독주택의 2층입니다. 옆집에는 신혼부부, 1층에는 집주인이 살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꼼꼼히 챙기며 인정을 나눠줍니다.


강자경 씨의 사례는 김용득 교수가 말하는 장애인복지의 대안적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거창군 시내, 만나서 돕고 어울리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곧 강자경 씨의 귀중한 사회적 자산입니다.


[사례2] 지역조직화사업: 지역사회 중심 지원 서비스

_정미선 팀장(진안군장애인종합복지관)


온라인으로 발표하는 정미선 진안군장애인종합복지관 팀장
온라인으로 발표하는 정미선 진안군장애인종합복지관 팀장

전라북도 진안군은 광범위한 면적에 장애인복지시설은 겨우 7개, 그중 6개가 진안읍에 있어 복지접근성이 취약한 지역입니다. 진안군장애인종합복지관은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역사회 내에서 복지자원을 찾고 마을 단위의 장애인복지를 생각했습니다.


진안군은 농산촌 중심 지역으로 아직 공동체 의식이 남아있어 지역조직화 사업을 추진하는 데 최적의 조건이었습니다. 지역주민 참여를 독려해 인적 물적 자원을 발굴하고 연결하는 지역사회 중심의 지원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소통했던 이웃주민과 함께 장애인 당사자를 방문해 거주환경을 살피고 그의 꿈이나 원하는 바를 찾기 위한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이후 회의를 통해 그러한 요구들을 이뤄주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찾고 쉬운 일부터 지역주민과 함께 실천해 나갔습니다.


취업을 원하는 장애인에게 일을 찾아주고, 탁구나 배드맨턴 등 운동할 기회도 마련했습니다. 무연고 대상자들을 발굴해 주민등록 및 수급자 지정을 돕고, 생애 첫 투표 기회를 마련해주는 등 국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찾아주었습니다.


성과는 장애인의 지역사회 참여도가 높아진 것과 더불어 이 사업에 함께 참여하며 성공으로 이끈 지역주민의 인식 변화입니다. 장애인 당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스스로 그들을 위한 옹호자가 되었습니다. 지자체가 관련 조례를 제정하면서 복지관을 중심으로 한 성공적인 지역사회 중심의 복지모델로 꼽히고 있습니다.


[사례3] 장애인들과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곳, AAC마을

_김지은 부센터장(언어치료 AAC센터 사람과 소통)


AAC는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기 힘든 이들이 몸짓이나 이미지, 글자판 등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한 모든 방법을 말합니다.


장애인과 보호자를 중심으로 AAC 교육이 확대되고 있지만, 비장애인의 경우 AAC를 거의 모르기 때문에 정작 지역사회에서는 활용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언어치료 AAC센터 사람과 소통’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려면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첫 AAC 마을을 구축했습니다.



공공기관과 식당, 편의점 등에 AAC 그림 및 글자판을 설치하고 그곳의 실무자, 사장, 직원들에게 AAC 교육을 한 후 입구에 AAC ZONE이라는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지역의 장애인들은 그 스티커가 붙은 곳에서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당당한 주민과 소비자로서 직접 의사소통하며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언어치료 AAC센터 사람과 소통’은 각 지역에 AAC 마을 지원기관을 선정해 추진했고 AAC 마을은 전국 단위로 늘고 있습니다.


AAC 마을 (진행중, 예정)
현재 진행 중이거나 예정된 전국의 AAC 마을

가장 큰 성과는 역시 AAC ZONE이 설치된 마을 공무원과 주민들의 인식 변화입니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시작했고 서로 눈을 맞추는 빈도도 늘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AAC 형태의 코로나 예방 포스터를 배포하자 장애인들이 잘 볼 수 있는 위치를 고민하며 부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해당 지자체 공무원들은 선별진료소용 AAC 그림 글자판과 시각지원판을 선별진료소에 신속하게 배포하고 먼저 나서서 의료진을 교육하기도 했습니다.


AAC 마을의 가장 큰 의미는 장애인 당사자,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혼자서도 지역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십니다. 일상을 누리는 것이 당연한 사회, 그곳이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에게도 살만한 사회입니다.


*글= 지화정 간사

*사진= 지화정 간사, 지역복지 이야기마당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