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난치질환 부모의 눈물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 희귀난치어린이 지원사업
이제 막 3살이 된 하진이(가명)는 혼자 몸을 가누지도, 밥을 삼키지도 못합니다.
태어난 지 3일 만에 청색증을 동반한 경련 증상을 보였던 하진이. 금방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100일 넘게 지속된 경련은 하진이의 성장을 멈췄습니다. 대학병원을 전전하던 하진이에게 최종적으로 내려진 진단은 ‘SCN2A 유전자 변이’로 스스로 나트륨을 조절하지 못해 잦은 경련과 인지 저하 등의 증상을 보이는 희귀난치질환입니다.
하진이가 의료용 대마(CBD오일, 이후 대마오일)를 복용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 2018년 11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의료용 대마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처방이 본격화한 시점이었습니다. 보통 대마오일은 레녹스-가스토 증후군과 드라베트 증후군 등의 소아 뇌전증 치료제로 사용하지만, 경련 완화에 효과를 보일 수도 있다고 판단한 병원의 주치의가 조심스럽게 권유한 것입니다.
하진이가 세 달간 복용할 수 있는 대마오일 100ml 1병의 가격은 160여만 원.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지만 엄마 유진(가명) 씨는 대마오일을 사용해보기로 했습니다. 당시 만 2세였던 하진이가 9개의 약을 복용했음에도 경련이 쉽게 잡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마오일을 추가하면서 약을 5개로 줄였습니다. 효과는 더 좋았습니다. 경련이 줄고 인지능력이 좋아지면서 하진이의 입에서 처음으로 “엄마”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남편이 실직하고 하진이의 보험계약까지 취소되면서 가정 형편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하지만 겨우 찾은 희망을 놓칠 수 없었던 엄마 유진 씨(가명)는 대출을 받아 대마오일을 추가로 구입했습니다. 효과가 눈에 보였기에 더 절박했습니다. 도저히 견디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은 올해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되면서부터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의료용 대마 도입을 전면 합법화한 것이 아니라 제한적으로 허용했습니다. 병원 처방을 받아 식약처와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신청하면 식약처장의 승인 후 식약처에서 약을 들여옵니다. 하지만 수입절차가 길고 복잡해 식약처에서는 미리 수요를 예측해 국가 예산으로 여유분을 확보해 놓았습니다. 각 지역의 대학병원 근처에 거점약국을 두고 비교적 편하게 수령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했습니다. 문제는 1년도 안 돼 예산 삭감으로 기존 서비스들이 전면 중단된 것입니다.
작은 소녀에게서 시작된 의료용 대마 합법화
출생 후 3개월 만에 첫 발작을 시작해 한 주에 300번씩 발작을 하던 샬롯은 두 살 때 심각한 인지력 저하와 자폐증세를 보였고 세 살이 되자 휠체어에 묶여 말을 할 수도, 먹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5살 때에는 몸이 심하게 망가지고 심장이 멎기도 했습니다. 결국 의사들은 두 손을 들고 부모와 상의한 끝에 그녀의 몸이 쉴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혼수상태에 빠뜨립니다.
샬롯의 할아버지는 드라베트를 앓고 있던 한 소년이 대마초를 투여하고 효과를 봤다는 성공담을 보고 샬롯에게 대마오일을 투약했고 결과는 바로 나타납니다. 하루에 300번씩 나타나던 발작 횟수가 한 달에 2~3번으로 줄었고, 샬롯은 다시 먹고, 걷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2014년 CNN에 이 소녀의 사연이 소개되면서 각국에 의료용 대마 합법화의 길이 열립니다.
“대마오일은 처방받은 본인만 복용할 수 있기 때문에 환불받지도 못하고, 누구한테 되팔 수도 없어요. 그런 상황을 알기에 병원에서도 선뜻 지금 중단하라는 말을 못 하는 것 같아요. 일단 사 놓은 약을 소진한 후에 대마오일 복용 중단을 결정하려고 해요.”
약을 선주문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엄마는 아픈 자식에게 한없이 죄책감이 든다고 말합니다.
“사실 약값이 너무 비싸다 보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부유하지 않은 집에서 태어나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해주지 못해서 하진이에게 참 미안한 마음이에요.”
다행히 하진이는 이번에 푸르메재단과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이 희귀난치질환을 앓는 어린이들을 위한 지원사업에 선정돼 재활치료비와 약제비를 지원받아 부담을 덜게 되었습니다.
레녹스-가스토 증후군을 앓고 있는 4살 서율(가명)이 역시 지난 3월, 대마오일 복용을 시작한 경우입니다. 반복되는 경련에 양쪽 뇌를 연결하는 뇌량을 잘라 발작을 없애는 뇌량절제술을 고려했지만 나이가 어리고 효과가 검증되지 않아 수술 대신 대마오일로 증상을 완화하고 있습니다. 1달에 1병씩 복용하는 서율이는 경련 횟수와 강도가 약해지는 등의 효과를 보였습니다. 대마오일 구입 비용은 급여와 양가 부모님의 지원으로 겨우 해결하고 있었던 상황입니다. 그래도 지난해에는 신청하면 1주일 안에 거주지의 거점약국에서 수령이 가능해 구입 자체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올해 예산 삭감으로 서율이네는 4개월분의 약값, 총 640만원이 당장 필요했습니다. 급한 대로 양쪽 집안에 손을 벌려 두 병을 먼저 주문하고 발을 동동 구르던 차에 푸르메재단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의 희귀난치질환 치료비 지원사업에 선정돼 두 달분을 추가로 주문할 수 있었습니다.
“대마오일의 효과 중 하나라는 인지 발달은 아직이지만, 계속 사용해볼 예정이에요. 바람이 있다면 기존대로 예산이 배정되어 수령 기간이 줄고, 거점약국 시스템이 원활히 돌아가는 것이죠.”
희귀난치질환을 앓는 자녀를 키우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결국 ‘경제적 부담’이라고 부모들은 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상대적으로 환아의 수가 적어 보험이 되지 않는 약이나 치료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모들에게 이 모든 약과 치료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마오일로 경련이 10번에서 5번으로 줄 수만 있다면 어디서든 돈을 빌려서라도 먹어야 하는 필수재인 것입니다.
“희귀난치질환에 관한 예산은 아이들의 목숨값과 같아요. 국가 예산이 필요한 곳은 많겠지만 기존 서비스가 중단되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다행히 재단과 기업의 지원으로 올해는 우리 아이에게 조금 덜 미안할 것 같아요.”
*글,사진= 지화정 간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