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아빠랑 계속 도전하자”
카카오 재활치료비 지원사업
계단 중간에 서서 치료실 창문을 마음 졸이며 바라보는 이정훈(가명) 씨. 12살 딸 지우가 북과 심벌즈를 즐겁게 치는 모습을 보자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쉽니다. “몸은 고돼도 치료를 중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알겠어요.” 이 씨의 눈가가 촉촉이 젖습니다.
한 줄기 빛
뇌병변 장애와 지적장애를 갖고 태어난 지우는 언어 소통과 인지 발달이 늦습니다. 주변의 물건들을 물어뜯어 공갈 젖꼭지를 입에 물리고 여전히 기저귀를 채웁니다. 게다가 식욕을 제어하기 힘들어 날이 갈수록 체중이 늘다 보니, 다리가 휘어지고 고관절에 무리가 갈까봐 걱정입니다.
아빠는 작년에 이혼한 뒤 일을 그만두고 혼자서 지우와 둘째 아들 준호를 키우고 있습니다. 준호도 지우와 같은 장애를 가졌습니다. ‘왜 하필 두 아이 모두에게 장애가 왔을까...’ 아빠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자괴감에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심장이 바늘로 찔리는 듯 따끔거리고 답답해 병원에 가니 협심증이라고 했습니다. 매일 먹어야 하는 심혈관질환 약만 4가지나 됩니다.
한부모 가정 보조금으로 빠듯하게 생활하느라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치료’는 치료비가 부담돼 아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불현듯 찾아온 실낱같은 희망. 카카오를 통해 재활치료비를 지원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학교가 끝나는 지우를 데리고 거의 매일같이 치료실로 향합니다.
서서히 나타나는 작은 변화들
음악치료는 지우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입니다. 음악치료사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고양이가 만세해요~”라고 노래하자 지우가 기다렸다는 듯 “야옹!”하고 대답합니다. 강아지, 오리, 참새, 토끼 등 동물 제시어를 듣고 알맞은 단어를 골라 표현할 줄 압니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드럼을 치는 것도 곧잘 합니다.
음악치료사는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치료실에 들어서자마자 벌러덩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던 지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바지를 내리거나 기저귀를 벗어 던지는 등 주의를 얻기 위한 과잉 행동을 보였어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는 적절한 표현을 말하게 하고 특정 행동에 대해서 칭찬을 해주니, 이제는 인정을 받으려고 스스로 행동을 조절하게 됐습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동작을 훈련하는 작업치료가 이어집니다. 치료사가 건넨 퍼즐 조각 5개를 이리저리 대보더니 하나의 그림을 뚝딱 완성합니다. 5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좁쌀만 한 크기의 구슬을 집게를 이용해 옮기는 활동을 이어갑니다. “젓가락을 집는 것처럼 손끝에 힘을 주고 꾹 눌러서 집어보자.” 자신이 잘 했는지 확인을 받은 뒤 통에 담습니다.
지우의 집중력은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작업치료사는 “화장실에서 문을 잠가 볼일을 보고, 정수기에서 물을 떠먹고, 옷을 벗고 입는 등 일상생활을 독립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것”이 앞으로의 치료 목표라고 말합니다.
아빠는 치료를 마친 지우의 표정에서 치료사들과 교감하며 하나씩 배워가는 과정에 적응하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여전히 엄마가 그리운지 선생님들을 자주 포옹하지만, 예전보다 웃음이 많아졌어요. ‘최고야 잘했어!’라는 말을 들으면 할아버지한테 전화하래요. 자기 칭찬해달라고요.”
그러면서 휴대폰 사진 한 장을 보여줍니다. 한 사찰에서 지우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병으로 누워 계신 할머니를 위해서 기도했대요. 그 얘기를 어머님께 했더니 눈을 번쩍 뜨시면서 좋아하시는 거예요. 이런 작은 감동들을 직접 보니까 재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해요.”
매일, 불어 넣는 긍정의 힘
재활치료는 절망에 빠져 낙심하던 아빠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줬습니다. “제가 뭐라도 노력해야 지우가 조금이라도 좋아지고 퇴보하진 않겠구나 싶어요. 외롭고 어렵더라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죠.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힘을 내보려고 합니다.” 재활치료는 부녀에게 유일한 희망입니다.
얼마 전, 학사모를 쓰고 졸업식 예행연습을 하는 장애학생들을 보고 딸의 미래를 그려봤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디서든 당당히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아빠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스무 살이 되면 받아주는 곳이 없잖아요. 바리스타가 되거나 빵 가게에서 일할 정도로 소통이 되고 인지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점차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품고 몇 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아이들에게 경험의 폭을 넓혀주고, 학교 체육대회, 학부모회의, 공개수업에도 적극 참여할 생각입니다.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던 어두운 터널을 아빠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지우가 “아빠~”하고 부르더니 손에 움켜쥔 과자를 아빠 입에 쏘옥 넣어줍니다. 두 아이의 재잘대는 웃음소리에 아빠의 움츠러들었던 어깨는 다시 활짝 펴집니다. “저희에게 주신 사랑을 잊지 않고 계속 도전하겠습니다.”
*글, 사진= 정담빈 대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