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집문제 해결방법은?
백경학 상임이사의 미국 연수기 6편 <헤이워드 독립생활센터(Cril)>
“집값과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서민들이 자꾸 시 외곽으로 쫓겨나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대책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결국 노숙자가 될 수 밖에 없어요. 이들에게 살 집을 찾아주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샌프란시스코만 동남쪽을 아우르는 헤이워드 장애인독립생활센터(Community Resources for Independent Living. 이하 Cril 크릴)의 론 할로그(Ron Halog) 사무총장은 “주택 문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현상은 직원 4만 명을 가진 구글(Google)과 애플(Apple), 반도체 회사 인텔(Intel), 네트워크 솔루션 전문기업 시스코(CISCO) 등 세계적인 IT기업들이 샌프란시스코 도심과 실리콘 밸리의 산호세(새너제이)에 둥지를 튼 뒤 인근 지역으로 회사와 직원 주택을 확장하면서 촉발됐다.
최근에는 부유한 중국 학생들이 서부의 명문대학 UC 버클리(Berkeley)와 스탠포드(Stanford)로 대거 유학을 오면서 집을 구하는 것도 이 일대 집값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집값의 상승으로 월세를 감당하지 못한 서민들은 살던 집에서 쫓아내 변두리로 변두리로 내몰고 있다. 외부에서 유입된 인구의 폭발은 차량의 증가를 초래했고, 차량의 증가는 교통마비를 낳았다. 다리 하나를 건너는 데 몇 시간이 걸리는 상황을 견디다 못한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가 악순환처럼 반복되고 있다. 크릴이 위치한 헤이워드시만 하더라도 지난 20년간 인구가 6.5배나 급증했다. 상황이 심각하다.
크릴은 집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주 월요일 오전 시각장애인과 노숙자 등을 대상으로 <집찾아주기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20명이 정원인 이 프로그램에는 집 계약이 만료돼 쫓겨날 위기에 처한 사람부터 수급자로 지정돼 정부의 보조금을 받기 원하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1시간 거리인 헤이워드 지역은 방 1개에 공동화장실 및 공동거실을 가진 집의 월세가 약 1,600달러(약 190만원)나 된다. 정부가 지급하는 평균 기초수급비 950달러(약 114만원)로 집을 구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크릴의 역할은 이들에게 캘리포니아 주정부나 카운티(군)에서 소유한 빈집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 장애인의 경우 주정부의 장애인복지국과 협력해 공공주택의 입주를 주선하고 카운티가 지원하는 910달러(약 109만원)의 바우처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준다. 집 없는 서민들에게 연방정부와 주정부 뿐 아니라 카운티와 시정부, 기업과 비영리기관의 지원제도를 찾아주는 것이 크릴의 몫이다.
지금까지 <집찾아주기 프로그램>에는 460명이 참여했으며 이중 12%가 살 곳을 찾았다고 한다. ‘너무 낮은 비율이 아니냐’는 질문에 할로구 총장은 “헤이워드시는 경제상황이 좋기 때문에 그나마 다른 지역에 비해 성과가 높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바우처를 이용해 지난 한 해 동안 집을 구한 사람도 16명이나 된다. 장기적으로 집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냐고 묻자 “뚜렷한 대안이 없다”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노인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지원 책임을 맡고 있는 연방정부 복지부 산하 지역사회거주관리청(The Administration for Community Living)과 지방정부가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에서도 최근 미국과 영국 등의 지역사회에서 치매 노인과 장애인을 돌보는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 시스템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커뮤니티 케어>란 돌봄서비스가 필요한 노인과 장애인이 자신의 집이나 그룹홈 등 지역사회에 살면서 자신에게 맞는 지원과 복지서비스를 누리며 지역주민들과 어울려 살아가도록 하는 사회서비스체계. 하지만 성공회 김성수 주교님이 설립한 강화도 <우리마을>과 같이 보호자도 없고 자립생활조차 어려운 중증발달장애인들이 어떻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난감하다. 상황이 다른 여러 경우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우리도 필요하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버클리와 오클랜드 지역의 방값만 해도 에어비앤비와 지인을 통해 알아봤더니 예상보다 너무 비싸다. 방 하나에 거실과 화장실을 같이 쓰는 조건으로 월세 3000달러(약 360만원) 전후니 수급자나 장애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아닐 수 없다.
크릴이 왜 장애인과 서민의 집 찾기에 집중하고 있을까. 미국 장애인 운동의 전설이 된 에드워드 로버츠(Edward Roberts)와 크릴의 설립자 조니 레시(Jonnie Lacy)가 1970년대 버클리 독립생활(Berkeley Center Independent Living)이라는 단체에서 함께 활동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니 레시는 1979년 헤이워드에 크릴을 설립해 앨러미다 카운티 지역의 장애인 지원 활동을 시작했다. 크릴은 카운티 정부가 부지를 제공하자 시민 모금을 통해 1984년 건물을 지은 뒤 장애인뿐 아니라 노숙자, 수급자, 외국인 문제 중 가장 심각한 집문제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주요 사업은 노인과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이들을 교육하는 것.
노인과 장애인이 모인 곳을 찾아가 일상생활에 필요한 교육을 해준다. 예를 들면 지하철, 버스, 우버 택시 사용법, 샌프란시스코 미술관에 가는 방법 등. 이들이 고립되지 않고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크릴의 목표라고 한다.
<Camping Out at Home>이라는 프로그램은 산불과 지진 등 자연적인 재해가 발생했을 때 미리 어떤 생활필수품을 구비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교육한다. 재난대피요령 책자를 만들어 보급하기도 한다.
할로그 사무총장은 버클리와 오클랜드, 헤이워드를 포함하는 앨러미다 카운티 소속 36명 긴급구조요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2년 전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있는 유명 와인생산지 <나파밸리>와 남부 <산타바바라>에 큰불이 났을 때 장애인 피난처를 찾아가 이들에게 응급대처법을 교육했다고 한다. 전기가 끊어졌을 때 상시 복용하는 약은 어디에 보관해야 하는지,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정보들이라고 강조한다.
장애인들이 필요로 하는 400여종의 보조기기가 12개의 지역보조기기센터 중 어디 있는지 컴퓨터로 검색해 찾아주고 외출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원하는 곳에 차를 갖다 주기도 한다.
5년째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는 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일손이 부족해 직원 공고를 내고 있지만 일이 힘들고 박봉이라서 좀처럼 직원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숨지었다.
<헤이워드 장애인독립생활센터
(Hayward Community Resources for Independent Living. 이하 Cril 크릴)>
439 A Street
Hayward, Cal 94541
전화: (1)-510- 881-5743
www.crilhayward.org
미국 장애인의 아버지 에드워드 로버츠와 기념센터
두 번이나 입학을 거절당한 끝에 1962년 호흡기를 단 중증장애 학생이 버클리에 입학했다. 14살 때 맞은 백신의 부작용으로 손가락 두 개와 발가락을 제외하고 전신이 마비된 에드워드 로버츠(1939~1995)였다.
당시 버클리대에는 경사로 등 장애인편의시설이 없었을 뿐 아니라 위중하게 보였던 에드워드의 상태를 감안해 학교 측은 그에게 학교에서 가까운 병원의 병실을 기숙사로 제공했다. 병원에 입원한 뇌성마비 환자들과 만나면서 에드워드는 60년대 장애인이 처한 현실에 눈뜨기 시작했다.
그는 서클을 조직해 컴퍼스 내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를 요구하며 세계 최초로 장애인권익운동을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경사로와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전용 화장실이 그의 투쟁의 결과이다. 에드워드가 버클리 지역에 처음으로 장애인자립을 지원하는 독립생활센터(Center for Independent Living, CIL)를 세우자 CIL 운동은 샌프란시스코와 캘리포니아를 통해 미 전역으로 확산돼 400개가 세워졌다.
운동 중에도 그는 버클리대에서 정치학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76년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재활국장으로 임명돼 잠시 일하기도 했지만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세계 장애인 연구소를 설립했다. 장애인의 인권존중, 차별철폐, 경제적 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그의 주장은 1990년 제정된 미국 장애인법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가 1995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자 버클리대는 버클리시와 함께 장애인 운동에 헌신한 그를 기념해 2011년 버클리대 인근에 <에드 로버츠 캠퍼스>를 지었다. 2248평의 부지 위에 유니버셜 디자인으로 지어진 기념관은 애쉬비 지하철역과 연결돼 있다. 비영리재단에 의해 운영되는 이곳에는 장애인기관과 NGO 단체들이 입주해 있으며 다양한 시민강좌와 세미나가 열린다. 버클리 시민들은 10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버클리대 못지않게 장애인 인권의 상징인 에드 로버츠 기념관을 사랑하고 있다.
<Ed Roberts Campus>
3075 Adeline Street
Berkeley, CA 94703
Info@edrobertscampus.org
www.edrobertscampus.org
*글·사진= 백경학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