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느낀 우리의 역사
서경덕 교수와 함께하는 독립원정대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대한민국의 뿌리가 된 임시정부의 역사적인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것. 암울했던 시대를 온몸으로 저항했던 독립투사들과 이름 모를 수많은 이들의 헌신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역사입니다.
푸르메재단은 태광그룹 일주학술문화재단과 함께 특별한 독립원정대를 꾸려 지난 6월 20일~23일 중국 상하이로 역사 탐방을 떠났습니다. 한국 홍보 전문가이자 푸르메재단 홍보대사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함께 장애인 형제를 둔 비장애형제·자매와 태광그룹 임직원 자녀 등 청소년 30명이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톺아보았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인 상하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한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태극기가 새겨진 형광색 조끼와 모자를 맞춰 입은 독립원정대가 부푼 기대를 안고 처음으로 향한 곳도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외국인이 거주하던 프랑스 조계지의 오래된 가옥과 고층 빌딩 사이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라고 쓰인 간판이 나타났습니다.
철문 안으로 들어서니 작고 붉은 벽돌의 3층 건물이 독립원정대를 맞았습니다.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사용된 청사입니다. 대원들은 교과서에서만 보던 유적지를 직접 확인하자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 “와”하는 탄성을 질렀습니다. “광복을 향한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던 대표적인 통치기구”라는 서경덕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집무실과 회의실, 숙소 등 당시를 재현한 모습을 눈에 담았습니다.
1919년 일제에 항거해 전국에서 독립 만세를 외친 3.1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을 대표할 조직의 필요성이 커지자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의 힘이 미치지 않는 상하이로 모였습니다. 4월 11일, ‘대한민국’으로 국호를 정한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상해 임시정부는 각계각층의 독립운동을 하나로 통합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독립원정대는 또 다른 임시정부 청사를 찾았습니다. 1919년 상하이, 한성, 연해주 대한민국 의회를 통합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던 장소. 현재는 유명 의류브랜드 매장이 들어서 있습니다. 서경덕 교수는 “작년에 임시정부 수립 99주년을 맞아 조사한 결과 이곳이 임시정부 청사였다는 점이 다양한 자료를 통해 확인되었는데, 현재 이러한 내용을 담은 안내판을 걸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윤봉길 의사의 투탄 의거 현장이었던 훙커우공원입니다. 중국 현지인들이 산책하며 여유를 즐기는 공원의 한복판에 한중 양국 정부가 함께 윤봉길 의사를 기리기 위해 만든 기념관이 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독립을 향한 강한 결의를 전 세계에 알리는 동시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침체기에서 벗어나 독립운동에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생애에 대한 영상을 본 고등학생 대원은 “누구도 하지 못한 결단을 내리고 용기 있는 행동으로 불꽃같은 삶을 살아낸 윤봉길 의사를 통해 어른이 되어서도 목숨처럼 소중히 지키고 싶은 가치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어요”라며 소회를 밝혔습니다. 추모 흉상 앞에 선 독립원정대는 한 마음으로 헌화와 묵념을 했습니다.
윤봉길 의사 의거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김구는 일제의 수배를 받자 가흥 지역으로 급히 거처를 옮겼습니다. 100년 뒤, 독립원정대가 만난 김구의 피난처는 회색빛 벽돌로 둘러싸인 주택가 안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대원들은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하나라도 놓칠세라 집 뒤편의 탈출용 나룻배와 갓난아이도 누울 수 없을 만큼 좁은 욕조 등 곳곳의 흔적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한 중학생 대원은 “당시 긴박했던 상황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대원들은 이제 항저우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1932년부터 3년간 사용했던 옛 청사를 가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한편에 자리한 곳. 임시정부 요원들이 언제 닥칠지 모를 위험 속에서도 김구와 장개석의 회담으로 중국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이끌어냈다는 설명에 한 대원은 “일제의 극심한 탄압에 맞서 상해를 시작으로 항저우를 비롯해 여러 지역을 떠돌다 중경에서 광복을 맞기까지 펼쳐온 긴 여정이 그려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이 거사를 도모했던 중국요리점인 육삼정 옛 터를 돌아보고, 동양의 베니스라 불리는 오래된 수향 마을인 주가각을 거닐며 청나라 때 지어진 우체국에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엽서를 부치고, 상하이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인 468m 동방명주 전망대에 올라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황포탄 의거가 일어났던 와이탄에서의 화려한 야경도 감상했습니다.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역사를 알아가는 과정은 글로벌 시대에 대한민국을 지켜나가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줄 것입니다. 친구들과 함께한 3박 4일 동안의 경험이 여러분을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되길 기대합니다.” (서경덕 교수)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일정에도 우리의 역사를 배우겠다는 열정으로 똘똘 뭉쳐 피곤한 기색 하나 없던 독립원정대. 교과서로만 배우던 100년 전의 역사 현장을 두 발과 손끝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제에 맞선 투쟁의 역사를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 유적지를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어서 뜻 깊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기말고사를 봐야 하지만 사실 시험보다 친구, 동생들과 함께한 역사 탐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고등학생 대원)
“장애를 가진 동생이 있어서 가족끼리 여행을 가기 어렵고 학교 수학여행 말고는 어디를 갈 생각을 못했던 저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었어요. 나중에 크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중학생 대원)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서 정말 좋았어요. 처음의 어색함도 잠시였을 뿐 서로의 특성과 개성을 하나씩 알아가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어요. 재단 분들을 통해서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은 제 꿈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고등학생 대원)
이번 탐방을 마친 대원들은 독립을 향한 고난과 역경의 역사를 되짚으며 더 나은 자신이 되겠다고 다짐을 해봅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중국에서 만난 ‘우리’, 청소년들의 가슴 한편에 대한민국이 뿌리 내린 그날처럼 묵직하고 강렬한 울림이 계속 퍼져나갈 것입니다.
*글, 사진= 정담빈 대리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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