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이 순간, 소중합니다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 희귀난치질환 의료비·부모심리치료 지원사업
또래보다 작은 체구의 12살 혁이가 카메라를 보자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며 곧잘 웃습니다. 엄마 김유경(가명) 씨는 “저를 닮아서 밝아요. 새처럼 날고 싶고 친구처럼 뛰고 싶어 해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마음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에너지를 생성하는 미토콘드리아 세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전신의 근육이 서서히 손상되는 ‘미토콘드리아 세포병증’과 투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찾아온 희귀병
혁이는 5살이 되던 2011년, 왼발이 마비된 듯 절뚝대자 종합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습니다. 김유경 씨는 병치레 한 번 없던 아들이기에 별 일 아니겠거니 싶었습니다. 검사 결과는 미토콘드리아 세포병증. “수술도 안 되고 약도 없어서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데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눈물만 흘렸어요.”
그로부터 1년 뒤, 잠을 자던 혁이가 갑자기 경기를 일으켰습니다. 응급실로 옮겨 수술을 받은 뒤로도 경기는 여진처럼 이어졌습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에너지가 소모되니까 경기를 해요. 재활치료를 받는 것도 힘들어 해서 치료도 중단한 상태예요. 의사 선생님도 재활치료를 권하진 않아요. 경기를 할 때마다 뇌세포가 망가지고 재활 받은 게 원점으로 돌아가거든요.”
혼자서 움직일 수 없는 아이를 엄마는 24시간 돌봐야 합니다. 발병 전까지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으”하고 힘겨운 소리를 내뱉습니다. 엄마는 그 소리로 혁이의 몸 상태를 파악해야 합니다. 호흡곤란이 잦아 산소포화도 측정기로 산소를 공급해주고, 음식을 소화하지 못해 매끼 잘게 다져 먹입니다. 외출조차 어려운 혁이는 장기간 스테로이제를 복용한 탓에 얼굴은 붓고 골다공증도 생겼습니다.
“갑자기 호흡곤란이 오면 세상을 떠날 수 있어요. 작년에 같은 병을 가진 혁이 친구도 그랬거든요. 제 일이라고 생각하니 그런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안 좋죠.” 폭력적인 남편과 이혼해 홀로 아이를 키우며 누적된 양육 스트레스로 엄마의 우울증은 깊어졌습니다. 일상생활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 파도처럼 밀려오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에 수시로 휩싸였습니다.
모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손길
그런 감정의 파고를 잔잔하게 다스려준 건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푸르메재단의 지원사업. 혁이는 1년 동안 주사치료비와 약제비를 지원받고, 김유경 씨는 부모심리 상담치료를 다니게 된 것입니다. “혁이를 키우면서 생애 첫 지원이라 뜻 깊고 감사해요. 특히 심리상담은 받고 싶어도 회당 10만 원을 호가해서 기초생활수급자인 저로서는 엄두를 못 냈었거든요.”
혁이 옆에는 아침, 점심, 저녁 하루 3번씩 꼬박 챙겨 먹어야 하는 약들로 빼곡합니다. “경기약, 비타민제, 영양제 등 종류만 23가지에요. 하루라도 안 먹으면 바로 경기를 해요.” 엄마는 약이 지금보다 더 퇴행하지 않도록 유지해주는 것임을 잘 안다며 “아이가 꿋꿋이 버텨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합니다. 약 이외에도 면역글로빈 주사를 맞은 덕분에 면역력이 높아졌습니다.
심리상담은 방 안에만 있던 김유경 씨를 세상 밖으로 이끌었습니다. “작년 11월까지 몸무게가 100kg까지 나갔어요. 한동안 밖을 못 나갔어요. 외출을 하더라도 건물에 들어가는 것도 지하철이랑 버스 타는 것도 힘들었어요. 누가 봐도 아파보이는 얼굴이었죠. 자다가도 갑자기 숨을 못 쉬어서 죽을 것 같았어요. 그랬던 제가 상담을 통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어요.”
매주 2~3회 찾아오는 심리상담사에게 마치 친한 언니랑 대화하듯 속마음을 열었습니다.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 하나 없었던 터라 아이에 대한 걱정과 불안, 자신에 대한 감정, 타인과의 관계 맺기의 어려움 등 하고 싶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봇물 터지듯 쏟아냈습니다. 정해진 시간을 넘겨 두세 시간씩 상담할 때도 많았습니다. “외출하면 새벽이어도 상관없으니 꼭 문자하라고 하세요. 그런 분이 어디 있어요?(웃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마음도 안정됐죠.”
“엄마가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하죠.”
또 다른 변화는 헬스‧필라테스 등 꾸준한 운동을 시작한 점입니다. “제가 아프면 아이를 돌보기 어려워요. 엄마가 건강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알게 됐어요.” 아이를 들쳐 업어야 할 때가 많아 근력을 키우는 하체운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식단 조절도 병행합니다. “운동하고 나면 기분이 정말 좋아요. 혁이가 짜증을 내도 웃어넘겨요. 엔도르핀이 솟아난다고 할까요?” 한발 한발 내딛는 새로운 발걸음에 이제껏 몰랐던 일상의 감각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김유경 씨는 아이가 아파도, 형편이 어려워도 희망을 품고 살아낼 수 있는 힘은 자기 일처럼 챙겨주는 곁들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제가 인복이 많은가 봐요.” 심리상담사, 활동보조인, 복지관 사회복지사 등 자신과 아들을 도우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소중한 이유입니다.
아들이 살아 숨 쉬는 그 자체만으로도 자신은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라며 두 눈을 반짝이는 김유경 씨. “제가 잠을 못 잘 정도로 몸이 아팠을 때 혁이가 저를 안아주겠다고 두 팔을 벌리더니 ‘호’ 소리를 내면서 자기한테 오라더군요. 아이가 제 옆에 있는 그 자체로 감사해요.”
혁이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엄마의 소망은 단 하나, 혁이보다 하루라도 더 사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제 곁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혁이를 먼저 떠나보내고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엄마 품에 안긴 혁이의 작은 숨결을 조금 더 오래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글, 사진= 정담빈 대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