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인싸' 주언이의 꿈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개원 3주년 특집
양손에 지팡이를 짚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치료실까지 혼자서 걸어 들어오는 한 아이. 태어날 때 뇌 손상으로 하지가 마비돼 뇌병변 장애를 가진 15살 이주언 군입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꿈꾸지 못했던 일입니다.
매일 1시간 30분씩 ‘새로운 도전’
양쪽 다리 근육이 강직돼 제대로 걸을 수 없었던 주언이. 팔 힘으로 다리를 끌어가거나 휠체어로 이동하곤 했습니다. 근육이 뼈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무릎이 구부러지면서 몸 곳곳의 통증이 심해졌습니다. 수술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왜 걸어야 하는지 몰랐을 정도로 휠체어 타고도 못하는 게 없었지만, 너무 아프니까 안 되겠다 싶었어요.” 중학교 입학을 1년 유예한 채 무릎의 관절을 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두 달을 기다려 지난해 4월,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 입원해 매일 1시간 30분씩 집중운동치료를 받았습니다. 모든 게 처음이라 긴장의 연속, 치료할 때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양팔을 쓰다가 ‘낯선’ 다리를 움직여야 하니 중심을 잃고 넘어지진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집중운동치료는 매일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이었습니다. 김하나 물리치료사는 “다리와 몸통이 중심을 잡아야 흔들림 없이 자세를 유지할 수 있거든요. 팔의 힘을 덜고 다리의 힘으로 서고 걷고 움직일 수 있도록 몸에 대한 확신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손과 발 떼기, 워커(보행기)로 이동하기, 계단 오르기 등 강도 높은 훈련으로 차츰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몸의 중심을 잡고 서 있는 것은 물론 걷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김하나 치료사는 “주언이는 재활 의지가 강한 아이”라며 “어려워하면서도 끝까지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목표를 성취해갑니다”라고 말합니다.
“무릎이 펴지고 걸음을 떼는 게 신기했어요. 치료 도구가 추가되면 이걸 또 어떻게 하나 라고 복잡하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단순하게 생각해요.” 도구와 상황에 맞게 자동적으로 반응하게 된 주언이는 성취에 대한 경험을 반복해서인지 어떤 시도를 해도 기대된답니다. “제 의지가 두려움을 넘어섰어요(웃음).”
휠체어에서 벗어나 지팡이를 짚기까지
자세를 교정하고 움직임을 촉진시켜주는 테라슈트를 입고 트레드밀 위에 선 주언이가 시속 2.5km로 20분씩 반복해 걷는 보행 훈련을 합니다. 속도를 3.5km로 올리자 힘겨워 하면서도 걸음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렇게 40분을 탄 뒤 물을 벌컥 벌컥 마시고는 양손에 지팡이를 짚고 복도 끝까지 걸어가는 연습이 이어집니다. 두 바퀴를 돌고 5분 쉬고 다시 돕니다.
그 모습을 보던 엄마 고은화 씨는 “우리 아이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운동기구를 타는데 가슴이 벅차요. 불가능했던 일이 가능해지니 날마다 꿈을 꾸는 것 같아요”라며 미소를 짓습니다. “아이에게 자신의 몸을 신뢰하도록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몸 전체를 잘 관리해야 통증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신 의료진에게 감사해요.” 긴 시간과 끈기가 요구되는 집중운동치료에 환아, 치료사, 엄마와의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줍니다.
집중운동치료를 받는 동안 주언이의 몸을 지탱해주는 보조기기는 휠체어에서 워커로, 워커에서 지팡이로 바뀌었습니다. 그동안의 노력을 보여주는 증표와도 같습니다. “하나씩 업그레이드할 때마다 성취감이 커요. 재활치료의 결과가 쌓여 도구를 바꿀 수 있게 되었잖아요.” 지팡이를 사용한 지 3주째로 접어든 주언이의 다음 목표는 외발 지팡이를 짚어 한 손이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 달라진 건 사람들의 시선입니다. “휠체어 탈 때는 사람들이 혀를 쯧쯧 차면서 ‘어쩌다 그랬니?’라며 안쓰러워했고, 워커를 탈 때는 신기한 눈으로 ‘열심히 해라, 빠른 쾌유를 빈다’며 응원해요. 지팡이는 그냥 지나가요. 올려다보지 않고 눈을 마주치면서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아요.” 이 모습을 본 주언이 친구들은 “장족의 발전”이라며 ‘엄지 척’을 내보였다고.
병원에서의 훈련 과정이 가정과 학교생활에서도 이어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의료진의 제안에 따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치료사와 함께 외부에서 걸어보거나 횡단보도를 건너는 연습도 합니다. 주언이는 열심히 재활해서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등산도 하고 혼자서 가보지 않았던 곳들도 여행하고 싶어요.”
꾸준한 재활 훈련이 실제 삶에서 이어지려면
엄마는 하루 종일 병원 치료로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생활을 견뎌온 아들이 대견합니다. “고비를 뛰어 넘어야 한다고 강하게 시킬 때가 있어요. 눈물, 콧물 흘리면서 결국에는 해내는 아이가 고맙게도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자신이 건강했다면 게임하고 PC방 놀러 다녔을 거라며 오히려 아프니까 왜 공부를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다고요.” 힘든 치료 끝에 얻게 되는 효과를 주언이도 모르지 않습니다. 엄마는 속 깊은 아들이 지금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밝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감사하면서 살아가길 바랄 뿐입니다.
조만간 집중운동치료를 마치면 중학생이 되는 주언이는 미리 맞춘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학교 다닐 생각에 설렙니다. “학교생활이 정말 재밌을 것 같아요. 친구들한테 들어보니 동아리도 만들 수 있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 박보영이랑 손흥민 선수도 보고 싶어요!”라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반짝이는 영락없는 10대 청소년입니다.
엄마는 어린이재활병원에 “재활 효과를 위해 치료 시간을 늘려주면 좋겠어요. 아이와 치료사, 보호자가 긴밀히 소통할 수 있는 방안도 많이 고민해주세요”라고 당부합니다. 주언이는 “병원은 제가 하지 못했던 걸 새롭게 할 수 있는 의지를 만들어준 제2의 고향과도 같아요. 어린이재활병원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최고의 병원이라고 생각해요. 어린 아이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안심하고 치료받게 되길” 기대합니다.
올해 개원 3주년을 맞이한 어린이재활병원. 홍지연 부원장은 “우리 병원을 통해 어린이재활에 대한 수요가 일부 해소되었어요. 그동안 낮병동, 입원병동, 이른둥이 집중치료 등 어린이 성장을 위한 재활 프로그램의 규모를 늘려왔는데요. 이제는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환아와 보호자에게 어떻게 효과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주언이처럼 자기주도적으로 재활이 가능한 환아들을 포함해 장애인 가정마다 서로 다른 경제적‧사회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도록 충분한 가이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주언이의 꿈은 재활의학과 의사입니다. “의대에 입학하려면 수학 문제를 두세 개 이상 틀리면 안 된다고 해서 미련 없이 접었다가 집중운동을 시작한 뒤로 수학이 쉬워 보이는 거예요.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부원장님께 말씀드렸죠. 나중에 여기 취직할 거라고요(웃음).” 주언이는 여름방학에 병원을 다시 찾아 재활치료를 계속 해나갈 예정입니다.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활짝 웃고 있을 주언이가 기다려집니다.
*글, 사진= 정담빈 대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