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작 사부작 나아갑니다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인터뷰
살 빠지게 살 빠지게 운동해요~
89키로 되면 불고기 파티해요~
저녁 먹고 한 바퀴 뺑글 돌아요~
유쾌한 노래와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곳, 낯선 이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모든 사람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는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의 공간입니다. 서울에서 제일가는 마을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는 성미산마을의 한가운데 터를 잡고 있지요. 반지하의 공간이지만 골목길 방향으로 큰 창이 나 있어 사부작 가족들은 환한 빛이 가득한 거실 한가운데 둘러앉아 오가는 이들에게 큰 소리로 안부를 건넵니다.
“발달장애인 아지트를 만들자!”
“사부작은 발달장애청년과 마을을 연결하는 중심이에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지역단체를 연결하고 이 청년들을 옹호하고 지지해주는 사람, 장소를 확대해나가는 것이 저희의 목적이에요.”
사부작은 발달장애청년인 정찬 씨(28)와 정찬 씨 어머니인 소피아, 가을하늘, 연두, 다래, 타잔 다섯 명의 집행위원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예술이나 교육을 전공한 마을주민 8명이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고, 성미산 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강력한 지지자이자 활동가로 도움을 주지요. 평등한 관계에서 자유롭게 소통하기 위해 서로를 별칭으로 부른답니다.
“왜 학교를 졸업하면 발달장애 아이들을 볼 수가 없지? 장애청년들도 마을에서 편하게 오갈 수 있게 우리 아지트를 만들어보자."
정찬 씨와 학교를 함께 다녔던 비장애학생 엄마의 이 제안에 뜨개질, 요리 등 각자 다른 취미를 가진 주민들이 함께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2017년 12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비장애인처럼 행동이 빠르지 못한 장애청년들의 움직임이 사부작거린다는 말과 꼭 닮았다고 해서 모임의 이름을 ‘사부작’으로 정한 후, 함께 할 사람들을 모으고 프로젝트를 구상했습니다.
“여러 카페를 전전하며 회의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이 공간에 입주해있던 사회적 기업에서 회의공간을 빌려줬어요. 공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지요. 특히 마을 한가운데 위치하고 안팎을 훤히 볼 수 있는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들어 사회적기업이 철수한 후 마을 커뮤니티를 통해 보증금 1억을 모아 입주했어요.”
공간이 생기자 다양한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마을의 발효식품 전문가와 술빵 클래스를 열었고 요가를 함께하자는 강사의 제안으로 새 프로젝트도 추가했습니다. 최근에는 성미산 오케스트라 제6회 정기연주회의 사회자로 사부작이 나섰습니다. 매년 빠지지 않고 연주회를 참석한 것이 인연이 된 겁니다. “음악과 상관없어도 좋으니 사부작의 이야기를 해 달라”는 주문에 정찬 씨의 공연 관람 에피소드를 펼쳐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성미산마을의 첫 발달장애인동호회도 탄생했습니다. 성미산학교를 졸업한 비장애청년들과 장애청년들이 월요일마다 모여 노래를 부릅니다. 꼭 참석해야한다는 강제성도 없고 이뤄야 할 목표도 없습니다. 좋아하는 노래는 신나게 따라 부르지만 그렇지 않은 노래에는 영 무관심합니다. 그래도 모두가 월요일을 기다립니다.
성미산마을에서 시도해보기로 했다
정찬 씨는 졸업 전 마찬가지로 장애를 가진 선배 수진 씨와 성미산 학교 안에서 공방 겸 카페를 운영했습니다. 음식 만드는 취미가 있는 정찬 씨는 쿠키를 만들고 수진 씨는 양초를 만들어 판매했습니다.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준비과정이었지요.
수진 씨는 졸업 후 마을에 따로 공방을 차렸고 올해 10년이 됐습니다. 함께 하던 카페는 ‘성미산 좋은날협동조합’이라는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자리를 잡아 발달장애부모들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찬 씨는 이곳을 떠났습니다.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랐지만 카페 운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수익도 내야 했습니다. 두 가지 모두를 만족스럽게 해내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소피아는 발달장애부모들과 마을주민들, 학교 관계자들에게 연락했습니다. ‘이 장애청년이 학교를 졸업하고 이 카페를 그만둔 후에도 이웃과 어울리며 일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는 것이었지요. 그 수십 명의 사람 중 모임에는 나와 준 이는 한 명이었습니다.
“마을공동체의 모범으로 손꼽히는 성미산이지만 발달장애에 관한 인식 수준은 다른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장애청년들과 만나면 인사는 나누지만 그들의 생활이나 생각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이지요.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것도 여느 지역의 사람들과 같아요.”
그럼에도 소피아는 현재 살고 있는 성북동이 아닌 성미산 마을에서 사부작을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살면서 성미산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있어요. 화두를 던졌을 때 토론할 수 있는 바탕이 있고 재료가 있으면 어떤 요리를 만들지 고민하는 문화가 있지요. 시도해보자, 혹시 실패해도 여기라면 다시 시작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1동 1사부작’을 향하여
사부작의 현재 목적은 소박합니다. 발달장애 청년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 한 군데 더 늘리고 함께하는 ‘사람’ 한 명을 더 만드는 것. 그리고 혼자서도 들를 수 있는 ‘옹호가게’를 확대하는 겁니다. 그러면 청년들은 집 밖에서도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겁니다.
“정찬이가 매일 산책하면서 들르는 가게들이 있어요. 오랫동안 봐온 사이라 언제가도 반갑게 맞아줘요. 한 번은 15년 단골인 망원동의 비디오가게에 정찬이가 혼자 간 적이 있어요. 그 때 조금 흥분을 했는지 소리를 지르며 책상을 쳤대요. 놀라서 나온 주변의 가게주인들이 신고한다고 하자 비디오가게 사장님이 옹호를 해주신 거예요. 오는 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으니 잠시 기다려주자고. 그러자 곧 정찬이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비디오를 빌려갔다는 얘기를 한참 후에야 전해 들었어요.”
소피아는 장애 인식 개선의 출발은 ‘익숙함’이라고 믿습니다. 정찬 씨가 매일 동네를 산책하며 단골가게를 오가고 마을의 중고거래장터인 되살림가게에 나가서 앉아있는 것, 오케스트라 사회를 보고 지역행사가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은 모두 이런 이유입니다. 자주 보고 익숙해지면 궁금해지고 또 보고 싶은 것이 사람입니다.
첫 사부작은 성미산마을에서 시작해 이제 막 새싹을 틔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멉니다.
“최종 목표는 1동 1사부작이에요. 경로당이 없는 지역은 없잖아요. 성미산마을도 경로당이 3개입니다. 이처럼 장애인들을 위한 공간도 각 동마다 1개씩 있으면 좋겠어요. 집을 벗어나 마을과 소통할 수 있고 잠시 쉬어갈 수도 있을 거예요. 장애인의 현실적인 욕구와 바람을 충족할 수 있는 정책 마련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저희도 익숙한 성미산마을을 떠나 다른 지역에 정착하는 것이 조금 더 쉬워지지 않을까요?”
사부작이 나아가는 길은 푸르메스마트팜의 고민과도 맞닿아있습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넘어 그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것이 푸르메재단이 꿈꾸는 진정한 통합사회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방법은 쉬워요. 자주 보고 익숙해지는 거지요. 하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어요. 인내를 가지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글,사진= 지화정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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