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준비
하나금융나눔재단 장애어린이 부모 심리‧상담치료비 지원사업
뇌병변 장애를 가진 5살 딸 보배를 키우고 있는 이미선 씨.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보배 곁에 온종일 손과 발이 돼주느라 쉴 틈이 없습니다. 병원 치료며 집안일, 생계까지 모든 걸 홀로 책임져야 하는 힘겨운 상황에서 극심한 우울감과 무기력이 찾아왔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친 이미선 씨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보듬어 준 건 심리‧상담치료였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살필 ‘소중한 틈’
이미선 씨는 매주 화요일마다 집 근처 상담센터를 다닙니다. 장애인 복지관의 사회복지사가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이미선 씨에게 상담을 권유했고 푸르메재단과 하나금융나눔재단의 지원으로 4개월간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보배를 특수학교로 등교시킨 뒤 오후 병원 치료를 받으러 가기 전까지 허락된 짧은 시간. 심리상담 전문가와 마주 앉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고민을 풀어놓습니다.
매일같이 병원과 재활센터를 돌며 재활치료를 받고 귀가하면 저녁 6시. 보배가 초저녁에 잠들어 밤 10시에 다시 깨기 전에 이미선 씨는 밀린 빨래며 설거지, 집안 청소를 끝내놓습니다. “저도 쉬고 싶죠. 아이가 자기를 봐달라고 보채니까 24시간 내내 정신없어요.” 도박에 빠져 가정에 무책임한 남편과는 1년 전 이혼했습니다. “아이 양육도 힘든데 전혀 신경을 안 썼어요. 식당과 파출부 일로 제가 먹여 살렸어요.” 보배의 할아버지와 사는 대학생 딸과 고등학생 아들은 장애를 가진 동생을 받아들이지 못 합니다. “아이들과 연락도 자주 하고 관계가 회복되길 막연히 기다릴 뿐이에요.”
자녀 양육에 집중하고 싶은 이미선 씨는 보배 말고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6월 보배 골반뼈를 교정하는 대수술을 앞두고 있어 입원이며 간병, 퇴원 뒤 재활치료 계획까지 신경 쓸 것들이 산더미입니다. 무엇보다 보배가 수술을 무사히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병원에서는 걷는 건 어렵다고 해요. 나중에 어떻게 되든 일단 다 해주고 싶어요. 앉는 것조차 어려운 지금보다 나아지려면요. 그때까지 보배가 잘 버텨주면 좋겠어요.”
심리상담사는 상담의 목적은 원하는 삶의 욕구가 충족되도록 돕는 것이라며 “재활치료는 긴 호흡으로 가야 하는 장거리 마라톤과도 같아요. 지금 어머니는 99%를 보배한테 쏟고 계세요. 보배와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어머니의 마음을 돌보셔야 앞으로의 삶을 감당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잘 하고 계셨으니까 지치지 않도록 해나가시리라 믿어요”라고 조언합니다.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위안
병든 마음과 속 깊이 쌓아둔 감정을 말하는 것이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예전에는 혼자서 많이 울었어요. 그래봤자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죠. 아이한테는 웬만하면 밝은 모습만을 보여주려고 해요.” 가만히 듣고 있던 심리상담사는 “묵혀둔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꺼내서 해소하시는 과정이 필요해요.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지요. 시간이 흘러 준비가 될 때 털어내셔도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상담을 받고 나서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이미선 씨. 눈을 맞추며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됩니다. “누군가한테 제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어요. 혼자서 끙끙 싸매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요. 장애자녀를 둔 엄마들은 속 시원하게 터놓을 수 있는 곳이 없거든요. 친구들한테 얘기하고 싶어도 공감대가 없다보니 엄두가 안 나요.”
상담을 받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효과가 크다고 심리상담사는 강조합니다. “보배를 돌보느라 늘 긴장 상태일 수밖에 없고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시간을 내서 상담 받으려는 의지를 칭찬해드리고 싶어요.” 이미선 씨는 무수한 걱정과 조바심으로부터 담대해지자고 스스로를 다잡아 봅니다. “수술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바라요. 제 편이 생긴 기분이라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실은 녹록치 않지만 사랑하는 딸과 함께여서 행복하답니다. 굳었던 손가락을 펴고, 의성어로 표현할 줄 알고, 가끔은 ‘엄마’라는 소리를 내뱉는 등 전혀 못하던 행동을 하나둘 해나가는 모습. 이미선 씨가 매 순간 용기를 얻는 원동력입니다. “사소해 보이는 작은 변화도 저에겐 아주 크게 다가와요. 금방 나타나진 않지만 점점 좋아지니까 재활치료를 열심히 다니고 싶어요.”
자신의 상태를 이해받고 지지받는 경험을 할수록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덜어내고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있는 이미선 씨. “또 다른 보배들을 둔 저와 같이 어려운 처지의 엄마들에게도 힘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런 기회가 많아지길 기대해요”라며 웃어 보입니다. 그렇게 이전보다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모녀에게 맞닥트린 고비들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글, 사진= 정담빈 선임간사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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