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여행
홍서윤 2월 칼럼
2019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우리가 독립운동을 기억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대개 3.1운동을 생각하면 유관순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우내 장터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옥고를 치르면서도 민족의 독립을 위해 끝까지 저항했던 인물로 기억한다.
독립운동은 또 어떤 모습인가. 김구 선생?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 등. 치열했던 모습만 기억할 뿐 역사의 슬픈 이면은 쉬이 떠올려지지 않는다.
2019년 1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인권운동가이신 김복동 할머니께서 별세하셨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주인공이자 전 세계에 전쟁여성인권피해에 대한 목소리를 내시며 일본이 사과할 때까지 ‘끝까지 싸워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역사의 슬프고 아픈 면을 기억하는 것 우리에겐 조금 낯설다.
그러나 역사의 슬프고 아픈 면까지 기억하는 여행인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이 해외에서는 인기다. 다크투어리즘이란 재해피해지, 전쟁철거지 등 인류의 죽음이나 슬픔을 대상으로 하는 관광이다. 왜 슬픈 장소까지 가서 관광을 할까. 아픔이 있는 지역에 방문하여 모든 것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또 관광을 통해 그 지역의 분위기를 살리기도 하며 때로는 그 지역 주민의 경제에도 도움이 되게 하는 형태가 바로 다크투어리즘이다.
1996년 처음 다크투어리즘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대표적으로 독일의 아우슈비츠와 체르노빌을 방문하는 체험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대문형무소가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명소이며, 세월호를 추모하기 위한 진도 팽목항 역시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장소다. 이 외에도 제주 4‧3평화공원,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겪었던 많은 역사적 장소가 대한민국에 있다. 이곳들 역시 다크투어리즘의 장소이다.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은 개인마다 천차만별이다. 개인의 가치철학에 따라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과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는 사실이고, 왜곡될 수 없으며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뼈아픈 고통의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평화’적 관점에서 이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다. 폭력과 전쟁은 그 어떤 개인에게도 이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장애인들은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까. 다크투어리즘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지체장애인으로서 역사의 명소를 경험하고 체험해보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물리적 접근성을 생각한다면, 서대문형무소는 우리나라 최고의 다크투어리즘 명소이지만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에게는 최악의 역사 여행지이다. 서대문형무소는 장소 전체가 문화재 보존 구역이라 외부 시설 외에는 휠체어 관람이 제한적이다.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그럼에도 외부 투어로 새로운 점도 발견했다. 형무소라는 장소성 때문에 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는 사실이다. 몰랐다. 나무 한 점 없는 이곳에서 여름엔 더위와 겨울엔 추위와 그리고 낮밤 할 것 없이 옥고를 치렀던 독립투사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과거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특별한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있다. 다크투어리즘이 그러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어렴풋이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을 상상해볼 수 있고, 종로 태화빌딩이 있는 독립선언 33인 광장에서 100년 전 독립선언문을 읽었던 33인의 마음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애국지사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청각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들은 어떨까. 많은 고민을 해보지는 못했지만 역사를 기록하고 저장해둔 박물관에 초점이 옮겨졌다. ‘디지털화에 발맞추어 영상전시가 많아진 박물관에서 수어통역이나 자막이 입혀진 영상을 만나는 것이 흔할까?’라는 의문이 있었고, ‘서대문형무소 벽면에 남은 총알자국이나 만세운동에 쓰였던 태극기를 촉감으로 느껴볼 수는 없을까?’라는 의문도 남았다. 지적장애나 발달장애인들에겐 이 역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처음으로 골똘히 고민해보았다. 소중한 우리사회의 보물이라는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있을 것 같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나라는 없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이 있다. 역사는 기억되어야 하며, 그 역사가 아프고 슬프다면 더더욱 잘 기억해야한다. 그리고 장애인 역시 그 민족의 일원으로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역사를 기억하고 경험해야 할 것이다. 오늘, 이 순간도 100년 후엔 역사이니까.
*글=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대표)
홍서윤은 장애인여행작가이자 현재 한양대학교 관광학 박사에 재학 중이다. “당신이 여행을 갈 수 있다면 나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여행이라고 특별하지 않다. 그렇기에 장애인만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장애인도 함께하는, 모두를 위한 여행(Tourism for All)이 뿌리내리길 꿈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