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팜의 표준이 되는 곳

네덜란드 선진농업 연수 ; 베쥬크 애그리포트(Bezeok Agriport) 농장


 


암스테르담 북쪽으로 약 40Km 떨어진 노르트홀란드주 Agriport A7 단지에 베쥬크 애그리포트(Bezeok Agriport) 농장이 있다. 네덜란드의 최첨단 스마트팜 단지로 개발된 이 곳 첨단유리온실 스마트팜을 견학하기 위해 2017년에만 전 세계에서 약 7,000여명이 방문할 정도로 스마트팜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곳이다.


베쥬크 농장이 속해있는 네덜란드 Agriport A7 단지는 흥미로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20년대까지 바다였던 이곳은 1930년대 자위더르 해(Zuiderzee) 간척사업을 통해 해수면보다 5.7m정도 아래에 있는 육지로 탈바꿈했다. 이 후 농지로 쓰이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한 민간회사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개발되고 민간에 분양되었는데 현재 농업단지와 산업단지의 융합을 통해 성공적인 농업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다.


이곳엔 850ha(1ha=3,025평, 260만평)에 달하는 첨단 유리온실단지와 100ha에 달하는 비즈니스 단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농업, 물류, 에너지, 데이터센터 등의 다양한 분야의 회사가 입주하여 서로 시너지를 내고 있다.


베쥬크 농장은 에너지 생산시설과 양액저수조, 첨단 유리온실로 이루어져 있다.
베쥬크 농장은 에너지 생산시설과 양액저수조, 첨단 유리온실로 이루어져 있다.

“파프리카 농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베쥬크 농장의 투어 매니저 벤 탑스(Ben Tops) 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금융업계에서 은퇴 후 이곳의 투어 매니저가 된 그는 견학 내내 적절한 유머와 함께 친절하게 농장에 대해 안내했다.


“이 지역은 일조량이 다른 지역보다 10%정도 높고, 겨울에는 바람이 동쪽의 따뜻한 바람을 타고 와서 온실의 온도를 높여주고 여름에는 서쪽에서 바람이 언덕을 넘어와 온도를 낮춰 생산량 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습니다. 또 이곳은 A7고속도로, 공항, 항구에 접근이 용이해 수출에도 유리합니다.”


염분이 남아있어 농사에 부적합한 간척지를 시스템의 힘으로 오히려 강점으로 만들어내는 네덜란드인의 도전정신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농장으로 들어가기 전 우리는 위생복을 착용하고 소독액을 분사했다. 언뜻 봐도 관리가 잘 돼 보이는 이 농장은 위생적으로도 철저함이 느껴졌다.


파프리카 농장에 들어서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중앙통로를 기준으로 양쪽으로 배치된 30ha의 유리온실을 포함하여 총 46ha에 달하는 크기는 방문자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농장 안에는 근로자들의 이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자전거를 비치해 두었다.


베쥬크 농장은 작물이 성장, 수확, 출하될 때까지 곳곳에 첨단 기술을 적용한 유리온실 스마트팜이다. 유리온실에 설치된 수많은 센서에 의해 실시간으로 측정된 내·외부환경 데이터는 서버로 전송되고 환경제어컴퓨터는 측정된 데이터 값을 산출해 작물이 성장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위해 내부 시설을 자동으로 조정한다.


일조량이 많을 경우엔 커튼을 치고 온도가 낮을 경우 난방을 공급해준다. 또 컴퓨터는 배지와 연결된 케이블을 통해 작물이 생장하기에 필요한 양액을 빗물과 비료를 최적의 비율로 섞어 공급하고, 산소와 이산화탄소 역시 센서값에 따라 적절히 공급한다.


그렇다고 여기에 사람의 손길이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다. 이 데이터들을 분석하고 기준 값을 설정하는 것은 농업 전문가의 몫이다. 수십년간 쌓은 농업 노하우가 데이터 분석에 고스란히 담기기 때문이다.



컴퓨터로 내부 환경을 제어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자동화 설비가 노동력을 대신한다.


‘삐삐’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 자동컨테이너는 자동으로 수확된 파프리카를 창고로 나르고, 근로자는 발밑에 달린 이동설비의 버튼을 이용하여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이동하며 작물을 더욱 쉽게 수확할 수 있다. 무인자동시스템으로 수확된 작물이 모이면 자동분류시스템으로 분류해 박스 안에 담은 후 포장하여 출하된다.


“파프리카” 농장에서 찍은 단체사진과 베쥬크 농장에서 수확한 파프리카.
파프리카 농장에서 찍은 단체사진과 베쥬크 농장에서 수확한 파프리카

베쥬크 농장의 주 생산물은 파프리카다. 이 곳의 파프리카 수확시기는 3월에서 11월. 이 기간동안 보통 4~5m 가량 자라는 파프리카는 줄기당 75~80개 정도 수확된다. 20ha의 파프리카 농장 내에서는 50만 줄기가 재배되고 있다. 우리나라 시설재배에서 수확되는 파프리카 개수가 줄기당 35개 정도임을 감안하면 두배가 넘는 생산량이다. 심지어 기후가 좋으면 이보다 더 많이 수확할 수 있다.


이런 높은 생산성에는 농장의 오랜 노력이 깃들어있다. 축적된 데이터와 엄격한 오염관리로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면서 곳곳의 센서와 CCTV를 통해 세심하게 작물의 상태를 모니터링한다. 혹 수확과정에서 이상이 있는 파프리카 줄기엔 근로자가 파란색 또는 빨간색 딱지를 붙여 농업 전문가가 작물의 상태를 확인하고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베쥬크 농장은 비료와 농약을 최소로 사용하는 친환경 농장에 주어지는 Milieukeur이라는 최고 품질의 에코라벨을 통해 공식적으로 인증받고 있다. 이렇게 수확된 파프리카는 95% 가까이 유럽, 미국, 일본 등으로 수출된다고.


베쥬크 농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모습 (출처 : bezeok 농장 유투브영상)
베쥬크 농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모습 (출처 : bezeok 농장 유튜브영상)

베쥬크 농장은 근로자 고용 부분에 있어서도 유연함을 보여준다. 첨단 기술로 노동력을 절감해야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대부분 자동화 설비가 돼 있어 넓은 면적임에도 농장을 상시로 관리하는 핵심인력은 농장주 부부, 농업 전문가 1명, 수확 전문가 1명 정도가 전부이다.


그 외에 노동력은 상황에 따라 파트타이머로 고용하고 있다. 3월에서 11월까지 바쁜 수확시기에는 100명 정도를 고용하고, 청소와 배지를 새로 설치하는 12월~2월의 시기엔 약 40명으로 조절한다. 이들이 하는 주요한 업무는 암면배치의 설치, 작물의 수확과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작물을 골라내는 것 등 단순노무가 주를 이룬다.


농장 내 각 근로자들은 모두 태그를 하나씩 지니고 있는데 태그는 근무시간과 수확량을 실시간으로 측정해서 관리자가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많이 수확한다고 인센티브를 주는 건 아니다. 파프리카는 익는 정도에 따라 색깔이 다르고 상품성이 다르기 때문에 적당한 시점에서 따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베쥬크 농장을 보면 첨단 기술과 노동력이 적절히 조화된 모습이 인상적이다. 푸르메에코팜을 추진하는 우리 입장에서도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 보였다.


관건이 되는 것은 노동의 강도와 난이도. 발달장애인들에게 여기 근로자들이 하는 일을 맡길 수 있을지 물어보자 벤 탑스 씨는 “배지를 설치하는 일은 단순하고 위험하지 않아 발달장애인 근로자도 할 수 있을 듯 하지만 파프리카를 수확하는 일은 높은 곳에서 작업도 해야하고 안전나이프이긴 하지만 수확용 칼을 사용하기도 해야 해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전에 많은 작업훈련과 직무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베쥬크 농장의 다양한 설비 사진.
베쥬크 농장의 다양한 설비 사진

네덜란드 첨단 농업은 현재 생산량 향상을 위한 첨단 기술 적용에서 에너지 절감과 친환경 에너지 개발로 무게의 중심을 옮기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2025년부터 천연가스를 이용한 난방을 금지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베쥬크 농장 또한 이러한 발걸음에 맞춰가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베쥬크 농장은 100% 천연가스를 이용해 온실난방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했지만 2014년부터는 지열발전소를 설치하여 운영 중이다. 지열난방은 깊은 땅속까지 파이프를 심어 지열을 이용해 물을 데워 올려보내고 이 온수에서 열을 분리해 온실난방에 활용한 뒤 식은 물은 다시 지하로 돌려보내는 시스템이다. 현재 지하 2.5km 깊이로 설치된 지열시스템을 앞으로 5km까지 더 파서 더 뜨거운 물을 확보해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초기비용은 많이 들지만 지열발전을 통해 전체 에너지 비용을 무려 30%나 절감했다고 하니 굳이 환경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경영의 효율성을 위해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쥬크 농장은 자원 재활용 부분에서도 지역과 협력하며 효율적인 시스템을 찾아가고 있었다. 농장에 필요한 자원은 다른 곳에서 가져오기도 하고 농장에서 불필요한 부분은 다른 곳으로 판매하거나 기부한다. 작물 생장에 필요한 이산화탄소를 끌어오기 위해 주변 공단을 이용하는데 주변 공단에서 생산된 이산화탄소를 이미 설치되어 있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액체로 운송비만 지불하고 가져온 후 이를 기화시켜 작물에게 공급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온실가스로 골치덩이인 이산화탄소를 활용할 수 있으니 주변 공단에서도 환영할 만한 시스템이다.


농장에서 생산한 전기가 남으면 주변 공단으로 판매하기도 하고, 수확한 작물 중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들은 푸드뱅크로 기부하여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이용하기도 한다.


베쥬크 농장의 전문 투어가이드 벤 탑스 씨와 다양한 농업상품
베쥬크 농장의 전문 투어가이드 벤 탑스 씨와 다양한 농업상품

인상적인 것은 농업에서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이 농장에서도 농사에만 머물지 않도록 더 다양한 방법으로 수익을 창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농장에 견학오는 사람들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전문적인 농장 투어가이드를 두고 아예 이를 유료 투어서비스 상품으로 개발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는데 전세계에서 베쥬크 농장을 찾는 방문자 수는 연간 7,000~8,000명을 넘어섰다고 하니 농장견학프로그램만으로 창출되는 수익이 12만유로, 우리 돈으로 15억원이 훌쩍 넘는다.


방문자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이곳에서 생산되는 작물과 그와 관련된 굿즈를 개발해 판매하기도 한다. 방문자들에게 사전교육을 하는 공간 한 켠에는 Dutch Color라고 불리는 주황색의 가방, 엽서, 스카프, 컵, 장식물 등 다양한 상품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여전히 최고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스마트팜과 발달장애인의 복지가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들이 많다. 하지만 이토록 쾌적하고 안전하며 생산성이 높은 스마트팜에서 여전히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수많은 단순업무들을 볼 때, 오히려 직무를 잘 발굴하여 훈련할 수 있다면 스마트팜과 발달장애인의 결합은 더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지를 설치하고 철거하는 일, 오렌지 색깔로 익은 파프리카를 수확용 가위로 따서 담는 일, 혹 오랜시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농장의 CCTV를 감시하며 넓은 농장에서 뜻하지 않게 생기는 작물의 문제를 찾아줄 수도 있다. 좀더 훈련이 된다면 보조가이드로 농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농장을 소개해줄 수도 있고, 일부에서는 농장에서 판매되는 매장이나 카페에서 그들에게 맞는 일을 찾아줄 수도 있을 것이다.


생산의 효율성이 꼭 이익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면, 오히려 그 효율성으로 장애인을 위한 여유를 만들 수 있다면, 스마트팜은 오픈된 근무 환경과 농업이 주는 치유의 힘으로 장애인들도 오래 일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 세계 최고의 스마트팜, 베쥬크 농장이었다.


*글 = 박세황 간사 (인사팀)

*사진 = 푸르메재단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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