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보지 못하는 사회적 농업
지역아카데미 강동규 이사 칼럼
현 정부의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인 ‘사회적 농업’이 요즘 우리사회에 화두가 되고 있다. 사회적 농업은 사회적 약자들(취약계층)이 농업활동을 통해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농업을 말한다. 이는 농업이 가지는 다원적 기능(Multifunctionality)을 활용하는 사례로 농업활동을 통해 실업자가 직업교육을 받고 일자리를 얻거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원예활동을 통해 치유를 받는 것, 혹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이 농작활동을 통해 학교생활을 잘 한다든지, 장애인이 농업분야에서 돌봄을 받는 등의 혁신적인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즉 사회적 농업은 의료와 복지, 교육과 노동 등 사회 각 분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농장주에게 있어 사회적 농업은 기존의 역할에 대한 외연을 확장하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고, 사회참여와 폭 넓은 사회적 관계를 제공하는 등의 의미를 가진다. 아울러 사회적 농업에 대한 보상체계가 이루어진다면 소득을 얻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네덜란드나 독일 등의 복지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 사회적 농업에 대한 보상체계가 미흡해 현재는 수익을 얻을 수 없는 구조다.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있어 사회적 농업은 함께 생활하며 보통의 사람들처럼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중장기적으로 보면 사회적 농업은 도시와 농촌 간의 관계를 증진시키고, 농촌의 일자리 창출과 농가수입 다각화 등 농촌지역의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독일의 사회적 농업 Hofgut Oberfeld
독일 중부지역 다름쉬타트(Darmstadt)에는 호프굿 오버펠트(Hofgut Oberfeld)라는 재단이 운영하는 사회적 농업 실천법인이 있다. 이 법인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함께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치유’ (Sozialtherapie)의 철학을 가진다. 장애인을 위해서는 일하는 공간과 거주하는 공간, 그 외 개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고, 일반 시민들을 위해서는 쇼핑공간과 카페, 가족이나 친구들과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 건물과 부속된 농지는 본래 1892년부터 농업활동을 하던 곳으로 12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사회적 농업을 시작한 것은 정부의 소유에서 시민의 소유로 넘어간 2006년이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재단을 만들어 정부의 건물을 구매하고, 골프장으로 예정되어 있던 건물 주변 농지를 임대하여 농업활동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일터, 삶터, 장터, 배움터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이곳은 농업생산활동, 치즈제조, 제빵, 교육농장, 행정, 직판장, 농장카페, 장애인 생활관 등에 약 6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고, 장애인 약 20명이 이곳 숙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낮 동안 인근의 장애인 작업장에서 일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이곳에서 원예치유, 미술치유, 승마치유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이 호프굿 오버펠트에는 세련된 직판장이 있어 일반 시민들이 언제든지 와서 먹거리 등을 구매할 수 있으며, 주말에는 벼룩시장이 열린다. 또한 시민들에게 커피를 마시며 쉴 공간은 물론 다양한 이벤트와 행사, 축제, 교육 강좌 등이 제공되는 문화의 공간이기도 하며, 정기적인 소식지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시민들의 공간이라는 인식을 주고 있다. 교육농장이 있어 학교나 유치원, 가족들이 방문하여 농산물(식량작물, 과채류, 화훼류, 축산)의 생산과정을 직접 보고 체험하며 배우는 프로그램이 제공되는 배움터 역할도 겸한다. 아울러 국내외 청소년 및 성인들에게 짧게는 하루부터 길게는 일 년까지 다양한 실습교육의 기회도 제공하고 있으며, 병원과 재활원 등과 연계하여 치유와 재활의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치유농업과 사회적 농업이 분리된 국내의 실정
이러한 선진국의 사회적 농업은 정부의 보상체계를 기반으로 법인이 운영하는 모범사례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이러한 사회적 농업의 형태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반면 ‘치유농업’을 하는 농장이 일부 존재하는데, 대개의 경우 공익보다는 사익을 추구하는 개인적인 농장이나 주식회사들이다.
국내에서는 사회적 농업과 치유농업이 아래와 같이 서로 분리된 채로 유입됐다. 누구를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사회적 농업의 경우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운영이 된다. 이들은 ‘비용지불능력’이 낮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공공기관의 지원이 필수다. 반면 치유농업 이용자들은 건강에 대한 관심을 갖고 여가나 체험 또는 건강증진을 목적으로 찾아오는 비용지불능력을 가진 ‘개인들’이다.
푸르메스마트팜 정착을 위해 정부 지원 절실
푸르메재단에서 준비하고 있는 푸르메스마트팜을 비롯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적 농업이 우리사회에 정착되려면 제도적·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먼저 ‘사회적 농업법’이 제정되어 우리나라에 맞는 사회적 농업에 대한 명확한 정의부터 내려져야 하며, 법에 따라 중앙정부부터 기초지방자치단체에 이르기까지 각 위치에서 해야 할 역할이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중앙정부부처 및 기관 간의 연계와 협력은 가장 최우선 과제다. 이는 사회적 농업의 대상자들인 사회적 약자들이 농업 정책은 물론 교육 정책, 복지 정책, 고용 정책, 의료 정책 등과 맞물리는 장소들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사회적 농업은 농림축산식품부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약 1조 원 가량이 적립돼 있는 ‘장애인고용촉진기금’을 농식품부가 사회적 농업 경영주를 위해 활용할 수도 없고, 개인이 활용하는 것도 해결방안을 찾을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법에 기초해서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도와 정책을 넘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배려와 존중의 문화와 의식 확산’은 푸르메스마트팜 성공의 최대 과제이며 가장 중요한 문제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로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서로 필요한 존재라는 인식이 우선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이렇게 보면 푸르메스마트팜이 나아가야 할 길이 사뭇 척박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푸르메재단이 지금껏 이뤄낸 성과를 보면 앞선 과제들을 적극적으로 극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국내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농업이 만들어져 장애인을 위한 복지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성과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글·그림= 강동규 이사 (지역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