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어른의 책임을 새기다

기부자 인터뷰 : 강선우 님


 


매일 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천원 남짓한 금액을 무통장으로 입금합니다. 700원, 1,200원, 1,500원. 두 달이 되어 가는 지금까지 푸르메재단 입금 내역에는 같은 이름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민 기부로 지어진 어린이재활병원의 장애어린이들을 삼시세끼 밥을 먹듯 매일 생각하기 위해서라는 택배기사 강선우 님을 만났습니다.


매일 어린이재활병원 택배 한 건당 100원씩 모아 기부하는 강선우 님
매일 어린이재활병원 택배 한 건당 100원씩 모아 기부하는 강선우 님

어린이재활병원 첫 배송 날 ‘기부 결심’


택배기사를 시작한 지 5개월째인 강선우 님. 전 직장 재경팀에서 7년 동안 일하다가 퇴사한 뒤 이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이느라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는 덜 피곤해서 몸이 건강해진 기분이에요. 체중도 10kg나 감량했죠.”


강선우 님의 담당 구역은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과 아파트 단지와 옆 상가입니다. 병원 통합사무실과 지하1~2층에는 직접 배송하고 입원병동과 치료실 보호자들을 위해서는 무인택배함에 물건을 놓고 갑니다. 처음 병원에 배송 갔던 날을 잊지 못합니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끔 지어진 병원 안에서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뛰어 노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병원 보호자들이 찾아갈 수 있도록 무인택배함에 물건을 넣고 있는 강선우 님
병원 보호자들이 찾아갈 수 있도록 무인택배함에 물건을 넣고 있는 강선우 님

그러면서 한 가지 결심이 섰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재활전문병원에 매일같이 오는 만큼 힘이 되자고 말입니다. “택배 한 개당 100원씩 기부를 하자고 마음먹었죠. 금방 왔다 가는 거라서 아픈 아이들을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몸이 불편한 어린이들이 재활치료를 잘 받아서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커요.”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8~9시가 되어서야 업무가 끝납니다. 워낙 배송량이 많아 시간에 쫓기다보니 병원에 물건을 내려놓자마자 바로 다음 배송지로 이동하면서도 택배 개수에 해당하는 기부금액을 입금하는 일만큼은 빼놓지 않습니다.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가장 많은 하루 입금액은 2,000원. “하루에 한 번은 꼭 해요. 너무 바쁘면 쉬는 날에라도 잊지 않고 입금하지요.”


기부금의 90% 이상을 지정사업에 쓴다는 내용을 신뢰한다는 강선우 님
기부금의 90% 이상을 지정사업에 쓴다는 내용을 신뢰한다는 강선우 님

편리한 자동이체 대신 무통장입금을 선택한 이유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어린이재활병원을 도와야 한다고 상기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나태해져서 장애어린이들이 제 관심 밖으로 멀어지면 한도 끝도 없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니까요.” 다만 입금 내역을 자주 확인해야 하는 푸르메재단 모금팀 직원을 귀찮게 하는 것 같아 걱정이랍니다.


강선우 님은 자신의 기부금이 어린이재활병원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일들에 사용되기를 원합니다. “기부안내서에 기부금의 90% 이상이 제가 지정한 사업에 쓰인다는 내용을 보고 안심했어요.” 의료비며 의료진 인건비며 하다못해 전기세라도 보탬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답니다.


헌혈·아동결연·철인대회… 꾸준한 나눔


강선우 님과 어린이재활병원과의 인연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은총이와 함께하는 철인3종 대회에 두 번이나 출전했던 것입니다. 2014년 동호회 사람들과 릴레이로 뛰어 완주했고 이듬해 개인 자격으로 참여했습니다. 은총이를 보트에 태워 헤엄치고 휠체어와 트레일러에 태워 전력질주하던 은총아빠 박지훈 씨를 보면서 깊은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들었습니다.


철인들의 기부금 전액이 어린이재활병원에 기부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뿌듯했습니다. “저 또한 의도치 않게 기부를 했었네요. 하하.” 일 하느라 바빠서 운동과 멀어졌지만, 가슴 한편에 대회에 참가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있습니다.


다른 배송지로 이동 전, 휴대폰으로 입금하는 강선우 님
다른 배송지로 이동 전, 휴대폰으로 입금하는 강선우 님

강선우 님은 나눔을 “의무감”과 “풍족함”이라고 정의합니다. “기부를 통해 스스로가 더 풍족해져요. 기부금을 내면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더 채워져요. 기부를 계속 해나가기 위해서 더 열심히 살게 되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생 때는 친구랑 경쟁하듯 헌혈을 한 끝에 30회를 달성해 은장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두 명의 해외 결연아동도 후원합니다. 자신의 나눔이 누군가에게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직장을 관두고서도 정기기부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 하고 그치는 게 아니라 인연을 맺고 있는 어린이들과 비영리단체, 자신에게 하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자금 계획을 짤 때도 기부금은 항상 1순위였죠. 택배 일이 정상궤도에 오르면 결연아이도 한 명 더 늘리고 싶고 푸르메재단에도 증액하고 싶어요.”


복지재단을 세우는 날까지 차곡차곡


강선우 님의 삶의 목표 중 하나는 복지재단을 세우는 것입니다. 어릴 적부터 키워 온 꿈입니다. “매달 기부금 이외에도 일정액을 저축하고 있어요. 혼자 심심할 때면 제가 원하는 재단 이름도 지어보고 사업 구상도 해봐요. 뉴스만 봐도 우리사회에 생각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좋은 일을 하고 싶어요.” 지금처럼 어린이를 위한 기부를 꾸준히 이어가다 보면 언젠가 세울 복지재단의 방향성도 차츰 그려질 거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책임을 짊어진 성인으로서 어린이들에게 선택권이 많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나이가 먹을수록 선택권이 줄어들어요. 초등학생 때의 꿈은 정말 다양했는데 대학교 졸업할 때쯤 되면 단 한 가지도 말하기 어려워요. 무엇을 하든 내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어요. 장애어린이들이 치료 받으러 전국을 돌아다녀야 하는 게 아니라 집 근처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장애어린이들에게 선택권이 많은 세상을 희망하는 강선우 님
장애어린이들에게 선택권이 많은 세상을 희망하는 강선우 님

어린이재활병원 1층 기부벽을 한참 뒤에야 봤다면서 굉장히 아쉬워합니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병원 건립을 위해 기부했을 거라면서. “병원을 짓기 위해 도움주신 분들 모두 대단하세요.” 지금은 경제적 능력이 안 되지만 먼 미래에 언젠가 고액기부자 모임 ‘더미라클스’에 이름을 올리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칩니다.


“이 시대의 책임은 어른에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저에게도 어린 세대에 대한 책임이 일정 부분 생겨가고 있어요. 어쩌면 기부는 제가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다하기 위한 행동인 거예요.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권리이기도 하고요.” 어린이가 우리사회의 미래를 보여주는 ‘작은 점’과 같다는 강선우 님. 그 점이 커져 새로운 길이 되고 어둠을 비추는 빛이 될 수 있도록 강선우 님은 오늘도 희망을 배달합니다.


*글, 사진= 정담빈 선임간사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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