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복지의 만남
일본 '사회적 농업'을 아시나요?
최근 우리나라도 급격한 노령화와 경쟁력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의 대안을 찾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1차산업인 농업과 제조, 지식문화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미래 농업의 대안을 고민하기도 하고, 농업과 복지 등 다른 분야와의 결합을 통해 사회적 농업이라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도 한다.
노령화로 인한 농촌의 공동화가 우리보다 훨씬 빨리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분석해보는 것은 우리 농촌의 새로운 대안과 장애인의 자립를 돕는 사회적 농업의 바람직한 모델을 찾기위한 좋은 해법이 될 수 있다.
자치단체와 지역사회, 기업이 함께 하는 일본의 농복연계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앞서 고령화가 진행된 나라다. 농촌의 경우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 땅이 있어도 일손이 부족해 경작을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처럼 농촌 경제가 급격히 침체되면서 농촌지역의 일자리는 더 줄어들었고,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는 말할 것도 없이 부족해졌다. 이에 일본의 자치단체들과 사회복지법인들은 장애인 일자리와 자립을 위한 대안으로 농업 분야의 특례 자회사를 속속 만들어 장애인 고용을 확대하고 있다. 농업을 기반으로 한 장애인 특례자회사의 등장은 일할 사람이 없어 놀고 있는 농촌 땅도 활용하고 장애인들을 위한 일자리도 확보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어 일본 전역으로 확장되는 추세에 있다.
일본에서 농복연계라고 불리는 이 같은 사회적 농업의 형태는 2006년에 기업투자 장애인 복지시설 제1호가 등장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이후 10년간 각 지역마다 영리기업과 협동조합이 사회공헌(CSR)활동의 일환으로 장애인 복지시설을 설립하는 사례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6년 기준 농업과 연계된 장애인 고용 특례자회사의 숫자는 36개에 달한다. 설립 초기에는 단독으로 운영하는 특례 자회사가 많았지만, 점차 주변의 농민과 장애인 복지시설 등과의 네트워크와 협력관계가 강화되면서 지역 농업에도 기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출자한 기업에서 소비까지 책임진다...구신팜 메무로
홋카이도 메무로 초에 있는 ‘구신팜’에는 2017년 기준, 지적 장애인 17명, 정신장애인 3명으로 총 20명의 장애인이 근무하고 있다. 구신팜은 반찬용 채소의 재배와 소매를 하는 주식회사 쿡참 등 3개사가 출자하여 2012년에 설립한 기업으로 발달장애인의 영농훈련과 일자리창출을 위해 만들어졌다. 지역의 장애인 수에 비해 일자리가 너무 적은 것을 우려한 홋카이도 메무로쵸 지역정부의 적극적 노력으로 장애인 일자리에 전문성이 있는 (주)에후삐코의 특례 자회사 에후삐코닥스(주)와 협의, 협력기업인 쿡참 등이 함께 출자하는 형태로 구신팜을 설립했다.
구신팜에서는 장애인직원들이 지역특산채소인 감자 등을 재배하고 동시에 1차 가공 업무를 함께 맡고 있다. 반찬을 만들어 일본전역의 자사매장에 공급하는 도시락 전문기업인 쿡참이 판매처인 도시락회사의 요구에 맞게 작물을 세척하고 절단하여 공급하면서 단순 농업에 비해 고부가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구신팜에서는 일정한 크기로 자른 감자를 소분하여 진공 포장한 후 가열해 냉동하거나 냉장 보관한 것을 쿡참으로 배송해 판매한다. 감자의 1차 가공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반복 작업에서 효율성을 발휘하기 쉬운 지적 장애인의 특성에 적합한 업무다. 이렇게 1차 가공 후 공급하면 가공하지 않은 작물을 판매하는 것보다 몇 배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더욱 의미있는 것은 쿡참에 납품할 다른 채소의 경우, 구신팜에서 재배한 것이 아니더라도 지역 농민의 작물을 구입, 재가공해 납품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구매자인 기업입장에서는 더욱 안정적으로 납품을 받을 수 있고, 지역 농민 입장에서는 구신팜을 통해 판로를 확대할 수 있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모델이 되고 있다.
지금은 생산에서 판매까지의 프로세스를 안정적으로 구축한 구신팜이지만 사업 초기에 영농기술의 확보가 최대 과제였다. 구신팜은 지역내 농업전문 인력을 적극 활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지역의 은퇴한 영농지도사로 그 지역에서 오래 농사를 지어왔던 은퇴한 농부 3명을 서포터로 고용, 홋카이도에서의 영농경험이 없었음에도 첫해부터 농업 생산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다.
지역생협의 유통망을 통한 안정적 판로 구축...하트랜드 히로시마
히로시마 생협은 히로시마현 8개 시에서 17개 출장소, 9개 점포를 운영하는, 지역에서 가장 큰 소비자 네트워크 중 하나이다. 2010년 농업을 통해 장애인 일자리를 마련하겠다는 목적으로 (주)하트랜드 히로시마를 설립했고, 2011년부터 흙 대신 배지나 배양액을 사용해 재배하는 ‘시설 양액 재배’를 시작했다.
생협의 특성상 먹거리에 대한 안전기준이 높은 편이라 하트랜드 히로시마에서 재배하는 작물들도 필드양액 재배와 시설 재배를 통해 균일한 품질과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
2600㎡(약 800평)의 온실에서 시금치 등 다양한 채소를 재배하고 있으며, 노지 1.4ha(약 4,200평)에서 고구마, 토란, 대파 등을 재배한다. 1,750㎡(약 530평) 규모의 하우스에서는 방울토마토와 무, 순무 등을 키운다. 현재 19명의 장애인(지적장애 18명, 정신장애 1명)이 일하고 있는데 이 중 히로시마쵸에 거주하는 사람은 4명, 나머지는 히로시마시에서 JR로 통근하거나 가까운 역에서 농장까지 자사의 통근 버스로 환승하고 있다.
현지에서 장애인 직원의 확보가 어려워도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가능하다면 도심과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도 장애인 작업장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이곳은 최저 임금을 준수하고 있으며, 월평균 약 10만 엔(원화 100만원) 수준이다.
주요 판로는 히로시마 생협의 택배 전용 전단지를 통한 온라인 판매가 중심이며, 수확한 작물들을 한정수량으로 실시간 판매한다. 재고가 남을 경우에는 직접 직원들에게 판매하기도 하고, 살짝 흠집이 있거나 멍이 든 못난이 채소는 가공업자에게 파는 등 다양한 판로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신 기술 적용 및 규모 확대, 안정적 판로 확보 덕분에 2015년에는 1,980만엔(원화 1억 9800만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설립 6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현재는 지역생협과 장애인복지의 우수한 결합사례로 전국 각지의 생활협동조합(생협)에서 견학 신청이 줄을 잇고 있다.
‘장애인 생산’을 브랜드 가치 향상에 활용...아스타네
일본내 장애인의 취직 · 전직 서비스 사업을 하는 (주)제너럴파트너는 설립한 지 14년이 된 중견업체로 연간 700~800명의 장애인 취업 실적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공공 지원이 아닌 유료 민간서비스의 특성상 취업알선 서비스 대상이 경증장애인에게 한정되었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고 장애인 취업서비스 대상을 확대하기 위해 장애 종류에 따른 취업 지원 사업을 실시하는 사업소를 2012년부터 잇따라 설립했는데 현실적으로 중증 발달장애인은 일반기업에 취업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었던 제너럴파트너는 2015년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시에 아스타네를 직접 설립했다.
아스타네에서는 중증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표고버섯 균상재배와 팩 포장을 실시하고 있다. 향후 단계적으로 생산관리 및 거래처와의 협의, 현장 관리까지 점차 업무의 훈련 범위를 넓혀 농업과 관련한 사업 전반을 장애인이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발달장애인은 24명(자폐 12명, 정신분열증 7명, 기타 5명)이며 안정적인 생산프로세스가 확보되면 재배 용지를 확대하고 고용을 늘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
채소 유통 전문 컨설팅을 통해 생산한 버섯은 인근 백화점 및 마트로 납품한다. ‘아스타네키친'라는 브랜드도 만들었다. 로고 및 도장 디자인에도 공을 들이고 “아스타네키친은 장애인 고용 문제의 해결에 노력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도 함께 넣어 ’가치 소비‘를 유도한다.
아직 사업 초기 단계로 버섯의 생산량이 일정치 않지만 이것이 안정되고 매출이 흑자로 돌아서면 일본 전역에 네트워크가 있는 제너럴파트너의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다른 지역으로도 규모를 확장하고 다른 복지 사업소나 장애인 고용기업에 노하우를 전수하는 등 발달장애인의 고용 확대를 구상 중이다.
최근에는 지역 내에서 아스타네의 판로를 통해 지역의 다른 장애인 복지시설의 농산물도 공동 출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아스타네키친‘이라는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홍보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철처한 데이터 관리로 신뢰 확보...희나리
IT기업인 이토츄 테크노솔루션즈(주)을 모기업으로 둔 ㈜희나리의 경우 직접 재배를 하는 대신 농업과 관련된 부대업무들을 지역의 여러 농가에서 하청 받는 것으로 장애인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일손이 필요한 농가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장애인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초기에는 지역 대다수의 농가에서 과연 장애인이 잘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보였으나 점차 장애인에게 일감을 주는 농가 수가 순조롭게 확대되며 2016년 2월말 현재 20명의 장애인을 고용하고 8곳의 농가에서 농사일(수확, 정식 출하조정 등)을 맡고 있다. 특히 IT기업답게 철저한 품질 데이터 관리로 농가의 큰 신뢰를 한 몸에 얻고 있다.
"희나리"에 작업을 위탁하고 있는 농가에서는 "희나리 덕분에 경작규모를 확대할 수 있게 됐다"는 반응도 있어, 지역 농가의 경영 개선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공적인 푸르메스마트팜 운영...‘판로 개척’ ‘지역 상생’이 답
앞선 일본의 농복연계 사회적농업의 사례들을 통해 살펴본 것처럼 현재 일본은 장애인 일자리로서 농업 분야를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으며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기업과 장애인복지시설과의 연계를 통해, 혹은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때로는 지자체가 직접 나서서 지역사회와 장애인을 연결해주는 것이다. 특히 일본에서도 한계에 다다른 농촌의 노령화와 공동화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 농촌에서도 주목할 만 하다.
흔히 농업은 초기에 큰 투자가 없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쉽게 생각하지만 작물을 잘 재배하고 판로를 개척하는 것은 베테랑 농부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장애인 직원을 고용하여 농업에서 좋은 성과를 올린다는 것은 지역농민과 지역 자치단체와의 긴밀한 협조가 없이는 어려운 일일 수 밖에 없다.
일본의 사회적농업 모델 역시 일찌감치 그 같은 한계를 인지하고 지역정부 및 지역생협이나 지역농협과의 제휴를 통해 비즈니스모델을 진화시키고 있다. 처음 농복연계기업이 시도된 이래 10여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흑자로 돌아선 회사도 많다. 아직까지는 농업 특례 자회사의 효용성은 지속가능한 장애인 일자리 확보 정도지만 전문가들은 운영주체들의 농업 노하우가 축적된다면 장기적으로 농촌지역의 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적자를 벗어나며 나름 성공적인 운영이라는 평가를 받은 위의 사례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기업과 지역 협동조합이 운영주체 및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어 그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안정적인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독자적 판로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지역의 농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상생하며 지역사회와 한데 어우러질 수 있었던 것이 매출 확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푸르메스마트팜 역시 지역농민과 자치단체, 기업과의 협력이 필수적인 사회적 농업의 모델이다. 푸르메재단이 구상한 발달장애인에게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있는 스마트팜 기획에 지자체의 부지 지원과 기업의 사회공헌기금, 여기에 기적 같은 시민들의 힘이 보태진다면 장애인 자립과 일자리 창출에 있어 기존의 많은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사례를 만들 수 있다.
푸르메스마트팜의 핵심은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들이 나름의 역할과 자긍심을 가지고 필요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자리잡는 것이다.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고령화 및 인구 과소화가 진행되는 우리나라에서 푸르메스마트팜이 농촌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대안이 되고 그곳에서 일하는 장애청년들이 지역 농민들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글= 지화정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각 농업자회사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