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하는 여행

홍서윤 11월 칼럼


 


보통의 사람들은 여행을 그저 즐기는 것이라 여긴다. 보통의 사람들은 여행을 그저 여유를 부리는 것이라 여긴다. 보통의 사람들은 여행을 그저 사치의 일환으로 여긴다. 하지만 또 어떤 보통의 사람들은 여행이 자신의 삶에 유익과 가치를 부여한다고 믿는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여행은 특정한 장소를 방문해 그곳을 관찰하고 관람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관람과 관찰은 여행가가 아니어도 할 수 있다. 때로는 학자가, 때로는 전문가가 때로는 탐사원이, 평가원이 관찰과 관람을 한다. 물론 그러한 이들의 행위도 여행이다. 특정한 목적을 둔 여행이거나 혹은 비즈니스 여행이라 부르기도 한다.



접근가능한 여행의 필요가 사회 전반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여행 그 자체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여행의 행위에서 비롯되는 심리·정서적 이점이나 개인의 변화를 논하는 것이 과거와 달라진 변화이다. 새로운 문화와 환경을 마주하면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이를 이해하고 소화하여 자신만의 의미를 되새김질한다. 그것이 여행의 매력 중 일부다.


때로 여행의 매력은 목적지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가, 누구를 낯선 여행지에서 만나는가에 따라 여행의 매력과 성격, 만족감이 달라진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여행 중 만난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로 인해 여행 중 낯선 만남을 기대하는 여행객들도 늘었고, 그런 만남을 가능케 했던 오스트리아 비엔나(Wien)을 찾는 관광객도 늘었다.


여행은 결국 교감이다. 사람과 환경의 교감,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교감이다. 정서적 상호작용 과정 후에 남겨진 것들이야말로 여행이 값지다고 느끼게 하는 이유이며 그것은 여행 중 만난 새로운 문화와 환경뿐만 아니라 ‘누가’ 그 여행에 함께 하였는가에 따라 다르다.



여행 작가 태원준 씨는 60대 어머니를 모시고 300일간 세계를 누볐다. 어머니의 환갑잔치 비용을 두고선 잔치보다는 어머니와 함께 세계여행을 하기로 결심해 시작된 모자의 세계여행이다. 심지어 이 엄마와 아들은 배낭여행을 시작했다(물론 누나도 함께 했다).


태원준 씨가 쓴 책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를 읽고 여행의 동행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여행과 사람에 관심이 생겼고, 이 관심은 어느 순간 가족에게로, 또 ‘엄마’라는 존재로 이어갔다. 장애아동으로, 장애청소년으로 그리고 성인기 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과연 ‘엄마’와는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왔는지 궁금했다. 비로소 독립된 삶을 살고는 있지만 더 아픈 손가락이었던 자녀의 양육과 그런 자녀의 독립을 어떻게 엄마는 마주하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런 호기심과 관계의 의문을 한편에 두고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떠났다. 물론 이전에도 둘이서 여행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유난히 이번 여행에서는 생각이 많아졌다. 이번 여행의 동행자가 엄마였기에 같은 장소의 추억, 딸과 엄마의 관계를 고민해볼 수 있었다. 여행은 이런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기도 한다. 장애가 있는 자녀를 양육한다는 부모의 마음을 필자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부모의 장애 자녀로서, 장애 자녀와 엄마는 어떤 관계인지 한번은 고민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필자의 이야기는 개인의 경험이며 보편적이지 않을 수 있다.


엄마와 단 둘이 떠난 여행길 (홍서윤 제공)
엄마와 단 둘이 떠난 여행길 (홍서윤 제공)

장애 자녀와 그 부모의 관계는 복잡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양육자는 대개 자녀를 우려한다. 사회로부터 상처받고 차별 받는 것을 우려하고,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지 못할까봐 우려한다. 자녀가 상처받고 아파할까봐 먼저 보호하기 바쁘다. 때로는 내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타인의 자녀에게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필자의 부모님도 그러했고, 그래서 필자와 갈등을 많이 겪어 왔다.


일례로 필자가 2015년 유럽여행을 떠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만 해도 필자의 여행은 언제나 부모님의 ‘동의’와 ‘허락’이 필요했다. 첫 번째 이유는 편의시설이나 접근성이 좋지 않아서였고, 두 번째는 장애인이자 여성인 자녀 혼자만의 여행을 걱정해서였다. 장애 자녀의 안위가 가장 걱정 되서 그러했다.


자녀로서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지독하게도 이를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과잉보호라는 생각도 있었고 부모님이 없을 때의 독립적인 삶이 그려지지 않아서였다. 실제 이를 마주했을 때 절망감을 대처하지 못할 것이라는 고민도 있었다. 가끔은 부모님의 우려가 도전을 저해하는 요소였고, 나 자신이 미성숙한 보호적 존재임을 확인받는 과정이기도 했다.


여행지 속에서 여유를 갖고 서로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본 시간 (홍서윤 제공)
여행지 속에서 여유를 갖고 서로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본 시간 (홍서윤 제공)

필자가 선택한 방법은 하나다. ‘서프라이즈’. 사전에 장기 여행 일정과 발권, 호텔 예약까지 모두 끝내버렸다. 물론 환불 불가 상품만 골라서 예약했다. 갈등을 피할 수 없다면 마주하자는 전략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기 2주 전 선전포고를 했다. 장기 여행이었고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는 선언에 그날부터 부모님 두 분이 돌아가면서 전화가 왔다. 매일 매일.


결국 여행을 다녀왔고, 부모님의 인식도 많이 변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자녀가 독립적 주체로 살아가는 데 확신과 믿음이 생기신 듯 보였다. 이제 그들의 보호나 우려가 없어도 장애 자녀가 판단하고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말이다.


엄마와 여행 중 그 동안의 여행과 다른 점을 확인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모녀의 여행은 우려가 먼저였다. 딸이 여행을 먼저 제안하더라도 ‘휠체어가 갈 수 있는 곳이냐’, ‘시설이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 ‘피곤해서 몸이 안 좋아지면 어떻게 하느냐’, ‘엄마가 가서 뭘 하면 되느냐’ 등등 여행이 아닌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 것과 비슷한 질문들의 연속이었다.


반면 이번 여행은 좀 달랐다. ‘알아서 해’라는 한마디가 전부였다. 별것 아닌 멘트지만 필자에게 알아서 하라는 엄마의 한마디는 신뢰와 믿음이 바탕 된 이야기였고, 더 이상의 우려가 표현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굳이 묻지 않아도, 걱정과 고민하지 않아도 장애 자녀가 주체적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축적된 믿음의 표현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필자와 엄마는 공통의 추억을 되새김질 했다. 엄마는 모르지만 필자의 학창시절 일탈, 공부에 소질이 없던 필자가 용케 대학에 들어갔다는 우스갯소리도 했다. 서로의 추억을 웃음으로 마무리한 여행이었지만, 그 과정과 결말 속에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은 양육자의 무한한 신뢰와 믿음이었던 것 같다.


자녀의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한 인간의 성장에 필요한 자양분이 바로 신뢰와 믿음이라 말하고 싶다. 시행착오로부터 해답을 찾을 것이라는 양육자의 신뢰와 믿음, 좌절감으로부터 성장할 것이라는 신뢰와 믿음, 희망과 발전을 좇아갈 것이라는 신뢰와 믿음이 독립된 개인으로 성장하는 자양분이 된다.


여행의 동행이 누구냐에 따라 여행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이번 여행은 자녀로서 엄마와 딸의 관계, 양육자와 자녀의 관계를 고민해보는 여행이었다. 앞으로 엄마와의 여행은 어떤 성장을 경험할지 기대가 된다(물론 싸우지 않으면 다행이다).

여행의 동행, 누구와 여행하느냐, 이것 또한 여행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이다.


*글=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대표)










홍서윤은 장애인여행작가이자 현재 한양대학교 관광학 박사에 재학 중이다. “당신이 여행을 갈 수 있다면 나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여행이라고 특별하지 않다. 그렇기에 장애인만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장애인도 함께하는, 모두를 위한 여행(Tourism for All)이 뿌리내리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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