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자라는 딸기의 비밀
네덜란드 선진농업 연수 : 훅스베터링 Hoogsewetering 딸기농장
네덜란드 헤이그시에서 서쪽으로 30분, 클라프웨이크 Klapwijk의 조용한 주택가를 지나면 훅스베터링 Hoogsewetering 딸기농장의 간판을 만날 수 있다.
사전조사 시 다른 기관에 비해 상당히 단순한 홈페이지로 농장에 대한 정보가 그다지 많지 않아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 곳이다. 농장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주거지역의 가운데 상당한 규모의 딸기농장이 떡 하니 들어서 있다. 농업강국 네덜란드에서나 볼 수 있는 진정한 로컬푸드 농장이다.
오래된 온실과 최신의 IT기술이 만난 농부의 스마트팜
Hoogsewetering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리처드 반 디크(Richard van Dijk)씨는 바쁜 농장 일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온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Hoogsewetering은 연수기간동안 방문한 다른 농장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수만㎡에 달하는 대규모 온실에 첨단 자동화 설비가 세팅되어 식물공장의 느낌이 강했던 기존 농장들과 달리 한적한 동네에 자리잡은 Hoogsewetering는 우리나라 어느 시골에도 있을법한 아담하고 따뜻한 농장이었다. 꽤 오래 전에 지은 유리온실임에도 깨끗하고 단정하게 관리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특히 방문객을 처음 맞이하는 온실 앞뜰 작은 동물우리에서는 아기염소들이 폴짝폴짝 뛰어놀고 있어 더욱 포근하고 정감이 간다.
약 3,000평의 대지 위에 세워진 유리온실 안에는 1.35m의 딸기 고설베드가 설치되어 있다. 전 세계 200개 국가 중 평균키가 183.8㎝로 가장 키가 큰 나라인만큼 농부의 작업을 편하게 하기 위해 고설베드 높이도 매우 높았다.
겨울작물인 딸기를 여름에 재배하기 위해 어떤 특별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지 궁금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적으로 더운 기후에 강한 품종을 선택하는 겁니다. 기온이 올라가면 자동으로 온실이 열고 닫히며 실내온도를 조절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할 때면 온실 상단 스프링쿨러를 통해 온도를 낮춥니다. 분무된 물이 기화하며 열을 흡수해 온도가 낮아지는 원리지요.”
베드 아래 온실 바닥에는 긴 파이프라인이 설치되어 여러 용도로 사용된다. 겨울철에는 파이프로 따뜻한 물을 보내 난방에 활용하기도 하고 낮에는 이산화탄소를 공급하는데 사용한다. 이산화탄소 공급 여부에 따라 딸기 생산량과 크기가 10~15%까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적정한 이산화탄소의 공급은 매우 중요하다.
리차드씨는 매달 딸기 생육에 필요한 온도, 습도, 빛, 이산화탄소 등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에 대한 빅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해 이를 기반으로 직접 딸기생육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수많은 환경센서와 컴퓨터로 거의 모든 변수가 자동으로 제어되는 다른 첨단 스마트팜에 비해서는 농부의 노하우가 좀더 많이 적용되는 편이다. 그의 노력 덕분인지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농장인 듯 보이는 Hoogsewetering은 평당 딸기 생산량이 30킬로그램이 넘어 우리나라의 어떤 딸기농장보다도 높은 생산성을 자랑했다.
빅데이터로 축적해가는 과학적 농업의 노하우
우리나라도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주도로 “미래농업은 사람의 경험보다는 데이터의 수집, 분석, 활용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비전을 기반으로 데이터 기반의 지능형 스마트팜 구현에 필요한 “미래 스마트팜 기술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농업의 체질과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경쟁력을 키우고 농가살림이 나아지는 시대가 조만간 오지 않을까 기대된다.
리처드씨는 온실 안에 올망졸망 자라나는 딸기들을 직접 따서 맛보게 해주었다. 한국에서라면 이미 딸기농사를 끝내고 다음 시즌의 모종을 준비하고 있을 6월, 여전히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는 이 곳의 딸기는 생각 외로 매우 달고 맛있다.
‘일반적으로 유럽 딸기는 한국 딸기보다 맛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이다’ 하고 딸기 맛을 칭찬하자 리처드 씨는 웃으며 아일랜드에서 개발된 신품종 딸기라고 설명했다. 이 곳의 딸기는 네덜란드 대부분의 농가에서 재배하는 Elsanta가 아닌 Malling Centenary라는 신품종 딸기인데, 엘산타에 비해 생산량은 25%정도 적고, 모종비용도 줄기장 10센트 더 비싸지만 단단한 과육과 예쁜 모양, 높은 당도를 갖고 있어 고객들이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Hoogsewetering의 경쟁력은 딸기 수확방식에 있었는데 소비자가 좀 더 오랜기간 딸기를 맛볼 수 있도록 온실의 영역을 잘 조절해서 연간 3개 시즌에 걸쳐 수확하고 있다. 1차 시즌 딸기는 1월에 심어 3월~7월까지 수확하고, 2차 시즌 딸기는 7월에 심어 9~11월에 수확하는데 이렇게 2차 시즌 수확을 마치고 나면 잠시 휴지기를 가졌던 1차 시즌 딸기가 다시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고. 한 여름이 아니면 꾸준히 지역주민에게 딸기를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특히 한 시즌 수확하고 나면 전체를 폐상시키는 우리나라와 달리 네덜란드에서는 한 모종으로 이듬해까지 2년에 걸쳐 딸기를 수확하는 것도 우리와 다른 점이었는데, 2년차 딸기 모는 첫 해에 비해 수확량이 좀 적거나 크기가 작은 경우도 있지만 생육환경을 잘 조절하면 충분히 좋은 딸기를 수확할 수 있다는 게 리처드씨의 설명이다. 어쩌면 이 방법이 딸기는 더 오래 열매를 맺을 수 있어 좋고, 농부는 모종값을 아낄 수 있으니 서로에게 윈윈일 수 있겠다.
한참 딸기가 열릴 때는 일손을 구하기 힘들 정도인데 아무래도 다른 과일에 비해 과육이 무르기 쉽다보니 일반인들에게 딸기따기 체험을 시키거나 익숙하지 않은 일꾼을 고용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섬세하게 작업할 수 있는 여성만 고용하고 가능하면 지역에서 바로바로 소비시키는 등 고객에게 더 좋은 딸기를 신선하게 맛볼 수 있도록 생산에서 유통까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는 리처드씨에게서 농민 그 이상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역주민에게 직거래로만 판매하는 진정한 로컬푸드
이 농장에서 처음부터 딸기를 재배한 것은 아니었다. 2009년 이전에는 장미를 재배했었는데 생산비용이 점차 높아지고 경쟁이 많아지자 과감히 딸기로 재배품목을 바꿨다고. 품목을 딸기로 결정한 이유를 묻자 씩 웃으며 “주변에 딸기농장이 없기 때문”이란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지역의 특성과 시장분석, 그리고 인근 농민과의 상생까지를 함께 고민한 의사결정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농장의 반경 20㎞ 이내에 딸기농장이 없고, 다른 품좀을 재배하는 농가들과 서로의 작물을 함께 판매하는 등 잘 융합되며 시너지를 내고 있었다.
딸기는 지역주민들에게 직거래로 판매한다. 우리가 농장을 방문한 날에도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농장에 들러서 딸기와 수제 딸기잼을 구입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농장에서 재배한 딸기 외에도 주변 농가들에서 수확한 각종 채소들을 함께 팔고 있어 동네 채소가게 같은 모습이었다. 언뜻 생각하면 딸기농장에서 왜 굳이 다른 작물까지 팔까 싶었지만 큰 상가가 없는 지역주민들에게 한 번에 필요한 채소와 과일을 신선하게 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지역 농가들과 서로 도우며 함께 성장할 수 있으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공동체의 상생모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지역주민들에게 직거래로 판매하다 보니 딸기 수확 여부와 딸기를 살 수 있는 시간을 홈페이지와 SNS에 공지하고 있다. 방문하기 전 확인한 홈페이지에는 3.31~6.23, 월~금 13:00-17:00, 토 10:00-16:00에 방문하면 딸기를 살 수 있다고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딸기 시즌에는 마을 어귀의 원형교차로에 간판을 설치해 농장으로 가는 길을 쉽게 안내하고 있다고. 만약 마을 입구에서 이 간판을 볼 수 없다면 딸기농장을 열지 않은 것이다.
이 농장의 연간 딸기 수확량은 81톤(81,000㎏)이나 되는데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직거래를 통해 거의 대부분 소진한다고 한다. 혹 딸기가 너무 많이 나와 직거래로 다 판매하지 못하면 인근의 마트로 납품해 판매한다고. 81톤의 딸기를 오로지 마을 내 공동체 안에서 모두 판매할 수 있다니! 지역주민과 지역 농부, 마트와의 유기적 관계와 상생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농장의 운영방식에 깃든 성숙한 시민의식
네덜란드 정부는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해 시설원예농장에 엄격한 친환경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하고 있다. 농장에서 사용되는 물을 절감하는 것은 물론 농장에서 배출되는 양액 등 부산물을 최소화하고 재활용해야 한다. 에너지 사용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일정 규모 이상의 시설원예농장들은 반드시 신재생에너지를 직접 생산해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2027년부터는 온실에서 사용하는 물과 비료의 온실 외부로의 배출이 전면 금지된다고 하는데 Hoogsewetering 농장에서는 이미 온실에서 사용하는 물을 외부로 배출하지 않고 자외선으로 살균하여 재사용하고 있다.
딸기를 재배하는 과정에서도 농약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천적을 이용, 병충해에 대응하고 있다. 이미 병충해가 생긴 경우라면 유기농 천연살충제를 사용하여 안전한 무농약 딸기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수확한 딸기 중 크기나 모양면에서 1급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딸기도 버리지 않고 바로 수제잼으로 가공, 판매함으로써 건강하게 자란 Hoogsewetering의 딸기는 한 알도 버려지는 것 없이 특급 딸기 혹은 신선한 잼으로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고 있었다.
이처럼 작은 마을의 농장조차도 단순히 내 작물을 잘 재배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과의 상생과 조화, 더 나아가 지속가능한 환경과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다른 농가와 경쟁하기 위해 규모를 키우거나 원가를 낮추는데 몰입하는 대신 소규모 개인농장 나름의 장점을 살려 지역 공동체에 녹아드는 모습은 앞으로 푸르메에코팜이 어떤 모습으로 운영방향을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화두를 던져주었다.
지역과 상생하는 건강한 공동체, 푸르메 에코팜
Hoogsewetering에서 만난 농장주 리처드씨는 지역과 함께 하는 장애청년의 일터, 푸르메 에코팜이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운영해나가야 하는지 정도(正度)를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누가 강요하기 전에 스스로 환경을 위한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시민, 더 신선하고 건강한 딸기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농부, 그에 필요한 연구와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경영자, 지역주민과 지역농민과 협력하고 상생하는 공동체의 노력 등이 융합되어 있는 농장의 모습은 앞으로 우리가 푸르메 에코팜을 어떻게 만들어가면 좋을지에 대한 다양한 사례들을 보여주는 듯 했다.
특히 장애에 대해 통합보다는 분리에 익숙한 우리나라의 현실 속에서 지역 안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소통해나갈 것인지, 지역과 함께 행복한 일터를 위해 어떻게 협력하고 상생할 것인지 그 복잡한 관계성을 풀어내는 일은 농장이면서 동시에 장애청년의 자립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푸르메 에코팜이 앞으로 차근차근 고민해나가야 할 과제일 것이다.
푸르고 쾌적한 농장, 네덜란드의 많은 농장을 방문하며 푸르메 에코팜이 발달장애청년에게 좋은 일자리 모델임은 명확해 보였다. 하지만 발달장애청년만의 특별한 일터가 아닌 농업을 매개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그 안에서 발달장애청년들이 제 역할을 찾아 나가는 성장의 터이자 일상적인 삶의 터전이 되기 위해서는 농장 이상의 공동체로서의 역할과 기능이 더 중요할 것이다.
지속가능한 농업과 장애청년의 자립,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하나도 쉽지 않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시도해야 하고 많은 이들의 마음과 의지가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목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푸르메 에코팜이 농업으로서도, 장애청년의 일터로서도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아름다운 상생의 공동체가 되길 희망한다.
*글= 탁현정 (종로장애인복지관 평생교육지원팀장)
*사진= 정태영 (푸르메재단 기획실장), 임규형 (과천시장애인복지관 운영지원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