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엄마입니다
아이에게 한시도 눈을 못 뗀 19년…발달장애 엄마들
자폐 아들 키우는 고경미 씨가 말하는 또 다른 '말아톤' 이야기
발달장애 확진 후 엄마는 죄책감, 다른식구는 소외감 호소
특수학교 졸업 후 앞날 캄캄, 장애인의 속도와 호흡에 맞춘 일터 필요
"춤추기 좋아하는 민준이, 즐거운 삶 살길"
엄마에게 24명의 친구가 있어 하루에 한 시간씩 장애자녀를 돌봐줄 수 있다면? 발달장애인 가족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의 장혜영 감독이 묻는다.
현실에서 발달장애인 자녀를 돌보는 부모의 삶은 단 한 순간도 아이로부터 떨어지기 어렵다. 아이의 덩치는 점점 커지고 엄마도 늙어가지만, 기약 없이 이어지는 재활치료와 자립교육을 위한 노력은 오로지 엄마 몫으로 남는다. 자폐성장애를 가진 아들 정민준(19) 군의 엄마 고경미(57) 씨 이야기다.
나는 발달장애아를 둔 엄마입니다
엄마의 하루는 민준이를 깨워 밥을 챙겨 먹이고 학교에 데려다 주는 일로 시작한다. 초등학교 특수학급 때부터 특수학교 고등부 졸업을 앞둔 지금까지 엄마와 좀처럼 떨어지기 싫어하는 민준이.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엄마는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집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은평구의 한 특수학교로 매일같이 바래다준다. 특히 혼잡한 출퇴근 시간에는 혼자서 버스를 태워 등교시키기 쉽지 않다.
엄마는 민준이가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뒤에야 일터로 향한다. 요즘 그는 집 근처 쉐어하우스 관리인으로 오후 6시까지 일하고 있다. 전공을 살려 틈틈이 건축‧도시 관련 강의도 한다. 민준이가 태어나면서 온 신경과 시간을 아이에게 쏟느라 직장을 갖지 못하다가 취업에 성공한 지 2주차다. 50대 중반에 다시 일할 수 있는 건 그나마 방과 후 집에 데려다 주고 일정 시간 민준이를 맡아주는 활동보조인제도 덕분이다.
자폐성 장애인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 타인과 관계 형성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자폐성장애 1급인 민준이는 사회성이 부족하지만 간단한 단어나 문장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줄 안다. 엄마가 "저녁 뭐 먹고 싶어?" 물으면 "떡볶이"라고 대답하고, 처음 본 사람이라도 엄마가 이름과 함께 소개해주면 경계하면서도 곧잘 인사한다. 엄마는 퇴근하자마자 집에서 기다리는 활동보조인을 돌려보낸 뒤 부지런히 아들의 저녁 밥상을 차린다.
아이의 장애는 엄마 탓인가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고경미 씨는 건축설계사무소를 다니던 중 민준이를 가졌다. 첫째 딸과 9살 터울인 늦둥이였다. 39살, 늦은 나이였지만 행복한 임신으로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휴직하고 양육에 전념했다. 아이의 이상증세를 발견한 건 두 돌 무렵이었다.
"한글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아이가 좀 이상하대요. 또래보다 주위가 산만하겠거니 여겼는데 병원에서 '언어지연'이라는 거예요. 의사가 하라는 대로 열심히 언어치료를 받았는데 아이를 반복해서 다그치는 치료 방식이 도리어 큰 스트레스로 작용한 것 같아요."
1년 뒤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이번에는 '반응성 애착장애'라는 진단이 나왔다. 양육하는 부모의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해 유발되는 장애라고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건축가로 탄탄대로를 걷던 경력이 단절된 채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아이에게 할애해온 터였다. 엄마의 가슴에는 깊은 생채기가 났다.
아이가 4살이 되어 종합병원에서 재검사를 받자 '전반적 발달장애'라는 확진이 나왔다. 마음이 복잡했다. 장애 판정을 받았다는 절망과 장애가 부모 탓이라는 낙인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났다는 안도가 교차했다.
"확진을 받기까지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혹시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걸까' 죄책감에 시달렸거든요. 장애 진단을 받으면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이가 사회적 통념상의 '정상'으로 갈 순 없어요. 포기할 건 빨리 포기하자고 다짐했죠. 정상이 될 거라는 왜곡된 기대감이 아이를 도리어 엉망으로 만들 수 있거든요."
우리나라에서 아이가 장애 판정을 받는다는 건 부모가 평생 아이에게 매달려야 한다는 의미다. 고경미 씨도 각종 재활치료와 교육을 위해 병원과 치료센터를 쉼 없이 오갔다. 하지만 뭐든지 억지로 하지는 않았다. 어릴 적부터 받아온 1:1치료는 아이의 완강한 거부로 중학생이 된 뒤 중단했다. 복지관에서 운영하던 장애인 오케스트라단에도 몇 번 참여해 비올라를 배웠지만 못 하겠다고 버텨서 그만뒀다.
민준이는 춤추는 걸 좋아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방방 뛰어다녀도 지친 기색 하나 없다. 요즘은 '원 투 쓰리 포' 구령에 맞춰 팔과 다리를 흔드는 동작에 꽂혀 있다. 엄마가 해보라고 하자 두세 번 동작을 반복한다. 또래 친구와 지역주민에게 자신 있게 내세우는 춤이다. "워낙 춤을 좋아해 복지관에서 현대무용과 케이팝댄스를 배우고 있어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그 시간을 즐거워해요."
엄마가 떠난 이 세상에 홀로 남을 내 아이
민준이를 홀로 돌보는 고 씨는 심리적‧시간적 여유가 없는 생활이 버거울 때가 많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남편은 지방 현장 근무라 주말에만 집에 오고, 큰 딸은 일찍 결혼해 독립해 살고 있다. "몸이 지칠 때 잠시라도 누군가 나 대신 민준이를 돌봐주면 좋겠다"는 엄마의 작은 바람이 언제쯤 이뤄질 수 있을까.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엄마가 짊어진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장애자녀를 돌보는 1차적 책임은 물론, 이로 인해 엄마의 손길이 가 닿지 못해 발생하는 다른 식구들의 애정결핍과 소외감 역시 엄마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첫째 딸은 동생에게 쏠린 관심에 불만을 쏟아내곤 했다. 사춘기를 지나 대학생이 되어서도 계속됐다. "딸이 심리적 박탈감이 컸던 것 같아요. 부족한 것 하나 없이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문제인지 제가 이해를 못 했죠. 동생을 돌보느라 힘든 엄마를 봐 오면서 불만이 있어도 자기 속내를 터놓을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커요."
돌발상황도 걱정이다. 오랜 세월 돌봐 온 자식이지만 때로 엄마조차 예측하기 힘든 순간을 맞닥뜨린다. 그럴 때마다 몸과 마음이 지친다. 이름을 부르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 아이가 엄마의 말투를 예민하게 받아들여 버럭 화를 내는 때도 있다. 한 번 화가 나면 하루 종일 앙금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다. 덩치가 커지고 힘이 세진 아이가 완력으로 거부의사를 표현할 때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학교에 가기 싫다고 몸부림을 치면서 앞좌석을 걷어찰 때가 있어요. 작년에는 엄마랑 있겠다면서 3개월 동안 학교를 안 갔고요. 나중에 알았지만 수업을 진행하기 힘들 정도로 학급 분위기가 엉망이었어요. 정신없고 시끄러운 공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모양이에요. 매일 아침 집 근처 안산을 데려갔는데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우여곡절 끝에 전학을 간 특수학교는 집에서는 더 멀어졌지만 민준이가 그런대로 적응을 잘하고 있어 안심이라고 한다.
영국에서 찾은 대안, 그리고 푸르메에코팜에 거는 기대
내년 초, 특수학교 고등부를 졸업하는 민준이는 전공과에 입학해 직업 및 사회적응 훈련을 받을 예정이다. 학교에 1년 더 남을 수 있어 다행지만, 그 다음을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다. 민준이의 취향과 능력에 맞는 일자리가 있으면 더 없이 좋겠지만 해답이 안 보인다. 성인이 된 장애인을 낮 시간 동안 돌봐주는 주간보호센터를 찾아봐야 하나 고민이다.
지난 8월 중순, 고경미 씨는 민준이의 미래를 탐색하는 차원에서 영국과 아일랜드에 있는 캠프힐(Camphill)을 2주 동안 체험하고 왔다. 엄마와 아들 단 둘이서 지구 반대편까지 떠나본 건 처음이었다. 캠프힐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마을이다. 주로 발달장애인이 비장애인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가축을 키우고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한다. 영국 정부가 지원하는 장애인연금 덕분에 생활하는 데 문제가 없다.
민준이는 구슬땀 흘리며 농작물을 재배하고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일련의 작업을 거뜬히 해냈다. "그동안 사적인 민준이만 보다가 사회적인 민준이를 처음 본 곳이 캠프힐이었어요. 마트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인형과 색연필에만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낯선 환경 속에서도 정해진 일과를 잘 수행하는 거예요. 캠프힐은 장애인이 살아가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을 하는 곳이지 생산력을 기대하는 곳이 아니에요. 장애인에게 생산성을 강요하기 보다는 왜 일을 해야 하는지 느끼게 해주는 게 중요해요. 일을 통해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국내에서도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위한 일터 조성을 추진중이다. 푸르메재단의 경우 일과 휴식까지 균형을 이루는 '푸르메에코팜' 건립을 준비중이다. 캠프힐을 경험한 고 씨는 '푸르메에코팜'이 민준이처럼 가만히 앉아 있기 보다는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발달장애인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일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이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에 매일 해야 하는 작업이 일로 익숙해질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장애인의 속도와 호흡에 맞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일하고 살아가는 행복한 삶
민준이가 사회적으로 자립하기 위해서는 일자리만큼이나 주거문제 해결도 중요하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아이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가 큰 고민이죠. 그런 점에서 본인 또래 장애인 친구들과 지내는 그룹홈이 하나의 대안이에요." 그러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녀가 홀로서기에 성공할 때까지 부모가 조금이나마 숨통을 틜 수 있도록 당번을 정해 번갈아가며 돌보는 방식도 제안한다.
발달장애인을 키우는 엄마들이 거리로 나와 삭발을 하고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부르짖고 있다. 복지관과 학교에서 지내다가 성인이 되면 갈 곳이 없어 부모가 모든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가슴 아픈 현실. 부모가 먼저 눈을 감더라도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직업, 주거, 소득의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달라는 절절한 외침에 우리 사회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고경미 씨가 민준이가 즐거운 삶을 살길 바란다. "무엇이 되길 원하지 않아요. 단지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자신의 요구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의 목소리에 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요."
부모가 떠나고 없더라도 이웃과 안부를 나누며 동네를 마음껏 활보하는 모습이 이상하지 않은 사회가 되어야 마땅하다. 우리는 어디쯤 와 있을까.
*글, 사진= 정담빈 선임간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