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행복한 일자리 비밀
발달장애인의 행복한 일자리 <스마트팜> 이야기 下
2015년 4월에 ‘독일과 스위스의 농업중심 장애인 교육, 직업, 공동체 기관연수’을 다녀왔다. 연수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지만 이 글에서는 그곳에서 알게 된 발달장애인의 행복한 일자리 비밀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비밀 하나. 일 할 수 있도록 준비
첫날 방문한 하일브룬 보호작업장(Beschuetzende Werkstätte von Heilbrunn)에서 만난 공장장에게 여기서 2년 동안 직업훈련을 받고 작업에 배치되지 못한 사람 수를 묻자 “작업에 배치되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최적의 배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또한 “본인이 원하지 않았음에도 갖게 된 장애로 인하여 생산력이 낮다면 그건 그 사람이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성과와 상관없이 그 노력을(노동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들에게는 작업공간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노동”이라며 장애인에게 있어서 노동이 갖는 의미를 덧붙였다. 필자의 경험을 감안해 볼 때 한국에선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교육 후 실제 업무에 배치되기 어려운 상황들이 떠올라서 한 질문이었는데 예상 밖의 답변을 듣고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공장장의 자신 있는 답변은 독일의 기관들을 견학하는 동안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독일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정책의 핵심은 장애인을 낮 동안 보호(care)하는 사회적 비용보다 생산적인 곳에서 장애인이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 효율적이며 일반적인 라이프 사이클(생활패턴)을 만들어 주는 삶의 질을 매우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작업장들이 ‘모든 장애인이 제각기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고 그에 맞는 환경을 구성하는 것에 집중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인이 되면 낮 시간에 일을 하듯이 장애인도 똑같은 삶을 살아야하기에 이들 작업장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내고 그들이 가진 신체적 · 인지적 조건을 이해해서 기계를 개조하고 작업과정을 세분화하여 장애인들이 일 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무엇보다 위의 사진처럼 장애인들의 신체적, 인지적 조건을 고려한 작업환경의 구성이나 보조공학 지원은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예를 들면 물건의 무게를 측정하는 작업에서 저울의 숫자를 읽지 못하는 장애인에게는 적정한 물건 양을 올려놓으면 녹색불이 들어오는 등이 부착된 저울이 제공되었고, 소리에 민감한 장애인에게는 헤드셋을 지원한다. 목공작업의 경우 크기나 길이를 쉽게 측정할 수 있도록 기계에 일정한 틀이나 보조장치가 되어 있다. 한 손만 사용할 수 있는 장애인에게는 한 손으로 조립할 수 있는 기구를 제공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장애인에게는 작업대에 자신이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사진 등을 놓을 수 있게 하여 편안한 작업환경을 만들어준다.
연수 일행 중 발달장애인 자녀와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부모(우영농장 장이사님)들은 이러한 독일의 발달장애인 일자리 지원 환경을 보면서 “일자리에 있어서 신체장애인에게는 경사로, 발달장애인에게는 마음의 경사로가 꼭 필요함”을 이야기하였다.
결국 발달장애인의 행복한 일자리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맡길 것인가가 아니라 비장애인인 우리가 발달장애인 개개인의 흥미와 적성에 따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어떻게 체계적으로 준비해 줄 것인가가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비밀 둘. 치유농업, 사회적 농업으로 연결한 다양한 역할 창출
독일과 스위스의 장애인 농업공동체에서 만난 장애인들은 대체로 큰 근육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발달장애인들이었다. 농산물이 주 생산품이었지만 상품라벨 제작, 포장, 판매, 청소, 서비스, 사무 등 발달장애인들의 역할은 매우 다양했다.
그 곳이 발달장애인 각자의 흥미와 특성에 따른 역할을 할 수 있는 행복한 일자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에서 치유농업이나 사회적 농업(Social Farming)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한편, 농산물 생산뿐만 아니라 교육, 치료, 서비스, 관광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도록 지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발달장애인들이 일하는 농장은 치유농업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치유농업이란, ‘치유를 제공하기 위한 농업의 활용(using farming to provide care)’을 의미하는 것으로 2000년대에 들어 유럽에서 하나의 이슈로 떠올랐다. 현재 유럽 전역에 3,000여개 이상의 치유농장이 분포하고 있다. 고도의 산업화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치유(healing)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주제이며, 정신적·육체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지친 ‘나’를 치료하고 치유하여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는데 있어서 자연은 그만큼 특별한 선물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자의 이전 원고 ‘발달장애인의 행복한 일자리 <스마트팜> 이야기 上’에도 언급하였듯이 발달장애인에게 치유를 위한 농업의 효과성은 매우 높다.
스위스 후마누스하우스(Humanus-Haus)에서 만난 농장 팀장은 발달장애인이 보이는 공격성을 과연 공격성이 있다고 이해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사람은 누구든 에너지를 모을 때가 있고, 발산할
때가 있다. 발달장애인의 현재 환경이 그에게 모인 에너지가 왜곡되어 발산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지 여부를 점검해봐야 하며, 무엇보다도 자연에서의 환경과 농업활동은 발달장애인의 에너지가 충분히 건강하게 발산할 수 있게 한다고 강조했다.
요컨대 발달장애인이 일하는 농장은 사회적 농업(Social Farming)으로의 역할부여와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농업'이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는 등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푸르메재단이 추진 중인 ‘희망의 스마트팜 캠페인’ 또한 발달장애인들의 행복한 일자리이자 사회적 농업으로서 역할이 확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으로 기존 발달장애인 일자리에선 장애인이 보호의 대상이고, 경제활동이 아닌 소일거리 수준에 머무르거나, 다양한 활동의 가능성이 제약된 상태로 있었다면 푸르메에코팜(희망의 스마트팜)은 이들에게 비장애인과 같은 일상의 삶,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행복한 일터가 되길 바란다. 또한 단순히 노동의 필요성에만 집착하기보다 고품질의 소비가 가능한 상품을 생산하여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사회의 일원으로, 일반 소비자에 의해 그들이 생산한 상품의 가치는 물론 함께 사는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가 되었으면 한다.
이제 다시 꿈꾸어 본다.
<푸르메에코팜>에서 성취감을 느끼며 의미 있는 노동을 통해 발달장애 청년들이 웃는 모습과 이들이 생산한 제품의 소비자이자 기꺼이 지원군이 되어줄 시민들의 모습을 기대한다.
그리고 응원한다.
발달장애인들의 행복한 일자리를 위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출발한 푸르메재단의 ‘희망의 스마트팜’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그 길에 한 명의 시민으로서 함께 할 것이다.
*글 · 사진= 최미영 운영지원실장 (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