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의 미래를 찾아서
네덜란드 선진농업 연수
발달장애 청년을 위한 희망의 스마트팜 건립사업을 펼치고 있는 푸르메재단이 해외연수단을 꾸려서 지난 6월 7일부터 15일 사이에 네덜란드 각지의 농업현장을 찾았습니다.
재단 사업부서와 산하기관 직업재활 전문인력, 건축사 등 총 10명로 구성된 푸르메연수단은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스마트팜은 물론 복지서비스와 농업을 결합시킨 케어팜까지 다양한 형태의 현장을 두루 살피며 발달장애인의 일자리로서 농업이 지닌 잠재력을 꼼꼼하게 연구했습니다.
연수단이 네덜란드에서 방문한 8개 기관과 스마트팜 박람회, 관련해서 참고할 만한 제도나 현황 등에 대해서는 여러분께 자세하게 소개할 예정입니다. 한 마디로 네덜란드는 농업 선진국이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눈이 번쩍 뜨이고 귀를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시설농업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2위의 농산물 수출국이라는 명성을 고려해도, 질적으로 또 양적으로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성과를 내고 있었습니다. 1100개가 넘는 케어팜을 유지시키는 국가 시스템도 부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우리 실정과 부합하는 것은 아니었고, 때로는 의문 부호가 남는 측면도 없지 않았습니다. 국내 현실에 더 굳건히 발 딛고 선진국에서 보고 배운 요소를 냉철하게 취사선택하는 진지한 과정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뜻일 겁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연재 순서>
1. 스마트팜: 놀라운 생산성의 버섯농장 (Kwekerij’t Voske)
2. 스마트팜: 네덜란드 대표 스마트팜 (Agriport A7)
3. 연구지원: 농업과 교육, 비즈니스의 통합 (Demokwekerij)
4. 스마트팜: 토마토 스마트팜의 선두주자 (Tomato World)
5. 스마트팜: 여름에 맛보는 싱싱한 딸기 (Hoogsewetering)
6. 도시농업: 도시인과 함께하는 유기농 공동체 (Almere City Farm)
7. 케어팜: 하싱크 교수의 케어팜 (Hoeve Klein Mariendaal)
8. 케어팜: 지역공동체의 거점 (Eekhoeve)
*사정에 따라 순서와 내용이 약간 바뀔 수 있습니다.
“농업은 첨단 산업이다!”
- <그린테크 2018>을 둘러보고 -
오늘은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사흘간 개최된 첨단농업 박람회 <그린테크 2018>부터 소개하려 합니다. 첨단농업 분야의 기술적 발전상을 먼저 살펴보는 편이 이후에 소개해드릴 스마트팜과 케어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린테크(GreenTech www.greentech.nl)는 전 세계 농업부문의 주요기업들이 대거 참여하는 중요한 행사입니다. 특히 온실재배에 필요한 시설 건축과 기계류 관련 기업들이 주류를 이루고 종자와 데이터 관리, 자재류 등 농업과 관련한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합니다.
박람회가 열린 장소는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 있는 RAI센터로, 유럽의 대표적인 전시장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연수단이 그린테크를 찾은 14일은 전시회 마지막 날이었는데도 오전 10시 행사장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장사진이었습니다. 1만 평이 넘는 행사장 내부는 첨단기계와 IT제품으로 가득해서 이곳이 농업 관련 전시회인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수백 개의 전시부스가 식물공장의 발전된 형태인 수직농장(vertical farm)과 정밀농업(precision farming) 등 굵직한 몇 개의 카테고리로 나뉘어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식물공장에 쓰이는 색색의 엘이디 인공조명을 켜놓고 서로가 최적, 최고의 광질(光質)을 약속한다고 자랑하는 기업들이 즐비했습니다. 컨테이너 박스를 식물공장으로 탈바꿈시킨 어느 기업은 구매자가 원하는 어떤 크기로도 제작 및 배송이 가능하다고 선전했습니다.
크게 나누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키우기 위해서 새로운 종자를 개발해 선보이는가하면 IT기술을 활용해서 재배 관련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해 최적의 재배조건을 과학적으로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이 분야의 일류업체 대부분이 네덜란드 기업이었습니다. 재배지 상공을 날아다니며 적외선으로 생육상태를 파악해 데이터화하는 드론을 마주한 때는 적잖은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유리온실은 더 많은 햇볕을 받아들이기 위해 태양광의 입사각을 과학적으로 분석했고, 햇볕이 골고루 실내를 비추도록 산란시키는 등 유리의 소재까지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강한 햇볕을 외부에서부터 차단하기 위해 온실 전체를 뒤덮는 자동 차양막 기능까지 옵션으로 내놓은 기업도 눈에 띄었습니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측면은 더 놀라웠습니다. 씨앗을 뿌리고 잡초를 제거하고 수확해서 포장하는 모든 과정에 자동화 설비가 개발된 상태였습니다. 사람 대신 로봇이 농산물을 수확하고, 무거운 짐을 알아서 실어 나르는 장치가 센서를 깜박이며 부지런히 돌아다녔습니다.
센티미터 단위로 잡초를 베어내는 무인 트랙터는 GPS 기술로 가능했습니다. 수백 미터에 이르는 농로 주위의 폐기물을 몇 분 만에 수거해서 잘게 부수는 장비까지, 네덜란드에서 농업이란 사람이 손에 흙을 묻힐 필요가 거의 없는 일터였습니다.
이제 자동화는 기본이라는 듯,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효율이 높은 태양열 패널을 지붕에 붙이고 창문의 유리창까지도 회로를 삽입해 전기를 생산하는 제품입니다. 지하로 무려 5km까지 관을 심어서 물을 90도로 데우는 지열시스템 설비 앞에서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이런 노력 덕분에 실제로 에너지 비용을 30~50%나 줄이는 농장들이 있었습니다.
국내 기업도 세 곳이 전시회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주된 생산과정을 보조하는 정도의 기술로 보였습니다. 반면, 중국은 대규모 생산시설을 풀패키지로 제공하는 기업을 포함, 10개 이상의 부스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은 전국적으로 100개가 넘는 스마트팜 시공업체가 활동 중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 1위 업체라는 한 기업의 담당자는 우리 일행에게 “이미 한국에서 시공한 실적이 있다며 장애인 일자리를 위한 공익 목적이라면 마진 없이 공사를 하겠다”고 진지하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 몇 군데 스마트팜을 둘러보고 적잖이 놀랐던 우리에게 네덜란드 수도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전 세계 첨단 농업기술의 향연은 어지럼증을 유발할 정도로 휘황찬란했습니다. 하지만 뜨겁고 진한 커피 한잔으로 아픈 다리를 쉬며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과연 이 많은 기술이 우리 발달장애 청년을 위한 일터에 필요할까?
네덜란드 바게닝언대학교에서 농업을 공부하고 이번 연수의 통역을 맡아준 오홍근씨는 “기업들은 신제품이 생산성을 높여준다지만 그 만큼 더 비싼 가격표를 달고 나온다”며 “적정한 수준의 알맞은 기술로 일터를 구성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푸르메재단이 건립을 추진 중인 희망의 스마트팜은 발달장애 청년 직원들에게 좋은 일터여야 합니다. 좋은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기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고된 노동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기술, 복잡하고 난해한 작업을 단순화시켜주는 기술,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안전을 지켜주는 기술, 더위나 추위 같은 악천후를 막아주는 기술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꿈꾸는 스마트팜은 상당한 생산성을 이루어내는 지속가능한 일터, 자립이 가능한 일터를 추구합니다. 따라서 첨단기술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선사하는 가능성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만, 수익성 제고만을 목적으로 무조건 일손을 줄이는 방향의 자동화는 우리의 목표가 아닐 것입니다.
첨단농업의 세계가 선사하는 무수한 신기술의 세례 속에서 무엇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알짜이고 무엇이 신기루인지 신중하게 고민하며 중심을 잃지 않는 지혜로움이 무엇보다 절실하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려면 발달장애 청년 개개인의 특성에 대한 파악과 적절한 직무의 개발 및 충실한 교육 훈련, 우리가 지향하는 실질적인 목표의 분명한 설정, 기타 여러 가지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글, 사진= 정태영 기획실장 (푸르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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