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소소한 일상을 누리길"
4월 기부자 인터뷰 : 김창기 님
“장애인이라서 다른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죠.”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되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김창기(57) 님. 자신처럼 장애를 가진 어린이와 청년들이 그대로 주저앉지 않고 제때 치료받아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힘이 되고 싶은 기부자입니다.
갑작스런 사고로 찾아온 장애
김창기 님은 4년 전, 외곽순환도로에서 차를 운행하던 중 버스가 뒤를 받아 척수가 손상되면서 전신이 마비되는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몸이 전혀 움직이질 않았어요. 무중력 상태가 그런 기분인가 싶었어요. 같이 타고 있던 아들의 신고로 119구급대가 왔고 중환자실로 옮겨졌죠”라고 그 때의 상황을 담담히 얘기했습니다.
2년 동안 재활병원에 입원해 고통스런 치료와 사회 적응을 위한 지난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장애를 입고도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죽을 때까지 치료비가 들고 가족이 온 종일 돌볼 수 없으니 간병인도 필요하죠. 저를 간호하기 위해 아내는 직장을 그만뒀고 아들과 딸은 대학교를 휴학하기도 했어요. 내색하지 않는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요.”
김창기 님의 삶은 장애 이후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배뇨, 배변 문제를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해결할 수 없어요. 통증은 24시간 계속되고요. 취미를 즐기는 여유로운 노후 생활에 대한 꿈도 사라졌어요. 선택하는 대신 선택받아야 하는 입장이 됐죠.”
혼자서는 살아 갈 수 없는 장애인을 위한 손길
푸르메재단은 인터넷 검색으로 장애 관련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고 합니다. “장애를 갖게 된 뒤로부터 관심 있게 지켜봤어요. 해외 어린이들을 후원하던 중 우리나라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도 제가 술 한 번 안 마신 돈 아껴서 기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국내 어린이 단체에 오래 후원해 온 아내가 핀잔도 줬고요(웃음).”
기부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병원에서 만난 두 사람이었습니다. 같은 병실에 입원했다가 병원비가 없어 퇴원할 수밖에 없었던 스무 살 청년, 하반신마비여서 성장판이 닫히지 않으려면 매번 자라는 뼈를 잘라야 하는데도 웃음을 잃지 않던 초등학생. “어린 친구들에게는 살아갈 날들이 더 많아요. 저처럼 나이든 사람 말고 어린이와 돈 없어서 치료 못 받는 이들한테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푸르메재단 정기기부자로 함께한 지 1년째. 의료비뿐 아니라 장애인을 위한 보조기구 제작에도 기부합니다. 보조기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재활병원 의료진이 ‘장애인에게 최선의 치료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재활’이라고 말하더군요. 삶을 바꾸는 필수품인 보조기구를 고가라서 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기대”한다며 “없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하면 가진 사람보다 더 큰 힘이 되지 않을까요? 많진 않지만 소중히 써주세요”라고 활짝 웃습니다.
상처를 보듬는 공감이 필요한 시대
장애에 대한 우리사회 편견의 벽이 높다는 걸 온 몸으로 겪습니다. “휠체어 타고 지나가면 사람들이 쳐다봐요. 애써 무시하려 해도 그 시선을 느낍니다. 한 번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집에나 있지 왜 나와서 번거롭게 하느냐’고 하더군요. 몸만 다친 게 아니라 마음도 많이 상했어요.”
특히 장애인이 제대로 이동할 수 없는 현실에 목소리를 높입니다. “보도 턱 때문에 휠체어가 엎어지고, 불법주차로 차도로 가야할 때도 있죠. 버스와 지하철도 목숨 걸고 타야 하죠.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려면 기본 1시간은 기다려요. 장애인을 위한 환경은 조성해 놨지만 관리는 뒷전”이라며 “외국의 좋은 것들은 금방 따라하면서 외국의 장애인 복지는 왜 배우지 않는지”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면서 장애인이 장애인을 이해할 때가 많답니다. “휠체어 탄 분들이 오히려 문을 잡아줘요. 서로의 심정을 잘 아니까, 힘들어 하지 말라고 위로해줘요. 제가 암환자에게 ‘얼마 못 산다고 해도 걸을 수 있으니 좋지 않나요?’라고 물으면, 암환자는 ‘몸을 움직일 수 없어도 살아 있으니 좋지 않으냐’로 되묻습니다. 입장은 다르지만 서로의 상황에 대해 공감하죠.”
소소한 일상이 주는 행복
김창기 님은 특수 기계를 중개하는 ‘엔지니어 딜러’입니다. 방 안에는 컴퓨터‧팩스 양 옆으로 도면과 발주서가 가득 꽂혀 있습니다. 워낙 전문 분야라 30년간 해온 자신의 일을 장애를 가진 뒤에도 이어갈 수 있었답니다. “일은 줄었지만 하루를 헛되지 않게 보낼 수 있어서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장애인을 위한 자립 기반을 마련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거창한 꿈을 키우기보단 주어진 일상을 찬찬히 꾸려나가고 싶다는 김창기 님. “장애 여부를 떠나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하죠. 인공지능 스피커한테 듣고 싶은 음악을 틀어달라고 해서 듣기도 해요. 하루하루 소소한 일들을 통해 작은 기쁨을 누리며 살고 싶어요.”
장애는 한 가정을 흔들어 놓지만, 김창기 님의 가족애는 더욱 진해졌습니다. “큰일을 겪고서 제 아이들도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만큼 성숙해졌어요.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있어요.” 포기하기 않고 무엇이든 스스로 해보려고 노력한다는 김창기 님에게서 장애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삶을 배웁니다. “자꾸 시도하는 만큼 일상을 더 누릴 수 있으니까요!”
*글, 사진= 정담빈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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