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되돌아 본 대한민국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가끔 미국의 화려한 도시, 뉴욕(New York)이 나온다. 한 손에는 횃불을 들고 또 다른 손에는 법전을 들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이 있는 이곳이 바로 뉴욕이다.
뉴욕에는 자유의 여신상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상징적이긴 하지만 뉴욕을 대표하는 다양한 관광지가 많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 록펠러 센터(Rockefeller Center), 센트럴 파크(Central Park), 브로드웨이(Broadway), 월 스트리트(Wall Street) 타임스 스퀘어(Times Square), 할렘(Harlem), 브루클린(Brooklyn) 등 명소도 있지만, 뉴욕의 노란 택시(Yellow Cab), 푸드 트럭(Food Truck), 그래피티(Graffiti), 재즈와 뮤지컬(Jazz and Musical), 하이라인 파크(High Line Park)도 뉴욕을 대표한다.
처음 뉴욕에 닿았을 때의 느낌은 신비롭지 않았다. 높은 빌딩과 분주한 도시, 시끄러운 자동 소리와 삭막한 사람들의 표정은 마치 서울의 모습과 비슷했다. 항공권 한 장과 피곤한 몸을 뉘일 숙소만 준비 한 채 어떤 계획도 없이 뉴욕에 도착했다. 그동안의 무장애 여행은 준비기간이 상당히 필요했다. 항공, 숙소, 차량, 여행지, 음식점 등 며칠짜리 여행을 위해서 몇 달 동안 틈틈이 조사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뉴욕 무장애 여행은 준비 없이 출발했다.
어쩌면 미국이어서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대개 미국을 장애인의 천국이라 말한다. 우리나라의 무장애 관광 또는 장애인 정책을 논할 때 미국의 사례가 자주 등장할 정도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10점 만점에 10점은 아니다. 적어도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말이다. 그럼에도 장애인을 위한 환경, 서비스, 제도가 탄탄하고 세부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흔한 현관문을 마주하더라도 휠체어 표시가 된 버튼이 있으며, 어디든 쉽게 휠체어 표시를 볼 수 있다. 장애인 마크를 이렇게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은 그 나라에 장애인이 많아서가 아니다. 몸이 불편한 시민까지 꼼꼼하게 고려하는 것이 일상 속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일상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뉴욕에 올 수 있었던 이유도 그러했다. 미국에서 장애인과 노인,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당연한 일상이다. 시민들이 가정과 학교에서 철저한 교육을 통해 배려있는 행동을 몸에 익혔기에 가능하다.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사회적 위치로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뉴욕에서 가장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준비 없이 답사를 간 뉴욕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점이 바로 ‘이동수단’이었다. 뉴욕 맨해튼은 서울 종로구 정도의 면적이다. 도보로 어느 정도 이동할 수 있었지만 센트럴 파크, 브루클린, 할렘 등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교통수단이 필수적이었다. 뉴욕의 지하철은 서울보다 열악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이 대다수였고, 오래되고 노후해 휠체어로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역에 내려 한참을 걸어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매우 불편했다.
그래서 선택한 교통수단이 버스다. 뉴욕의 엄청난 교통체증 때문에 버스로의 이동 역시 쉽지는 않았다. 항상 길이 막혔고, 예상 소요시간보다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유일하게 버스를 타면서 좋았던 점은 창밖으로 뉴욕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서였다. 뉴욕 버스를 타는 동안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다. 저상버스 보급률이 약 40%나 되는 서울에서는 ‘버스를 태워줄까?’라는 고민을 하며 조심스레 버스정류장으로 향하지만, 뉴욕에서는 그런 고민조차 필요 없었다.
승객들은 휠체어가 탑승하기 전까지 밖에서 줄을 기다렸다. 애초에 휠체어가 우선 탑승하지 않으면 기사는 먼저 탑승한 승객조차 내리게 했다. 휠체어가 고정될 때까지 승객들은 차분했다. 비단 휠체어를 탄 장애인 승객만을 위한 서비스는 아니었다. 걸음이 느린 어르신이나 아이가 버스를 타도 마찬가지였다. 승객이 착석하기 전이거나 안전 바를 잡고 안전한 상태임을 확인한 후에만 출발했다. 이런 버스는 어떻게 운영되는 것일까. 단순히 미국식 매너나 예의라고만 생각하기엔 굉장히 체계적이었다.
이런 체계는 곧 제도와 인식에서 비롯된다. 장애인도 당연히 버스를 탈 수 있어야 하고, 장애인도 당연히 이동할 수 있어야 하는 도시 말이다. 지하철이 장애인에게 주요 교통수단이 될 수 없다면 대안으로 버스를 더 세부적으로 발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쩌면 필자는 뉴욕에서 ‘대안 교통수단’의 중요성을 체험했는지도 모르겠다.
비장애인이 전망대에 오르고, 전시관에 가고, 망원경으로 멀리 있는 피사체를 관람하고, 공연을 즐기고, 아기자기한 가게에 들러 쇼핑을 하고, 루프탑 바에서 달콤한 칵테일을 마신다면 장애인도 마찬가지로 똑같은 행위가 가능해야 한다는 생각이 미국사회 전반에 흡수되어 있었다. 단순히 제도가 아닌 사람들의 인식 깊이에 말이다.
우리는 어떠할까. 우리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은 여행을 하지 못할 때 무어라 대답하고 있을까.
*글, 사진=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대표)
홍서윤은 장애인여행작가이자 현재 한양대학교 관광학 박사에 재학 중이다. “당신이 여행을 갈 수 있다면 나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여행이라고 특별하지 않다. 그렇기에 장애인만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장애인도 함께하는, 모두를 위한 여행(Tourism for All)이 뿌리내리길 꿈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