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어디로 갔을까
뇌를 읽게 되면
고등학생 때 생물 선생님이 그랬다.
- 앞으로는 뇌를 연구하는 분야가 가장 각광받을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큰 수수께끼가 바로 인간 자신이라 하니 뇌를 연구하는 일은 어느 시대건 주요한 주제일 게다. 아마도 ‘나’는 나의 뇌 속에 제법 좀 많이 들어있을 테고, 나를 읽고 싶은 욕망도 나의 뇌가 갖는 욕망일 테니까.
아무튼, 뇌의 연구가 각광받을 거라는 우리 생물 선생님 말씀을 귀담아 듣기는 하였으되, ‘그쪽으로 진로를 정하는 게 좋을 거’라는 권유의 취지는 생까버린 눈치 없는 제자는, 분자생물학의 이 눈부신 발전을 보면서도 미련하게 ‘나’라는 수수께끼를 별로 많이 풀지도 못하고 실없이 헤매고만 다닌 듯싶으니, 애석하다.
나이를 먹으면서는, 어떤 모임을 하더라도 서로 상대의 기억력이 나만큼이나 감퇴했음을 확인하고 안심하는 처절하고 구슬픈 시간을 갖는다. 어렸을 때 기억이 상대적으로 선연한 걸 보면서는 더한층 슬프다. 내 뇌가 제법 품질이 좋아서 빠릿빠릿하게 잘 움직였을 때 입력된 것들은 아직도 출력이 무시로 자유롭다. 내 뇌가 나와 같이 나이를 먹어서 굼뜨고 게으르면서는 입력도 출력도 느린데다가, 가끔 의뭉스럽게 잘못 입력하기도 하고 출력하다말고 슬쩍 숨바꼭질을 할 때도 있다. 내가 나로 살면서 내 손과 발, 내 위장이나 간 쓸개, 내 눈 코 입보다는 내 뇌하고 더 친했기에, 나는 내 뇌가 낡아갈수록 혹시나 얘가 나를 배신하는 날이 올까봐 덜컥 겁이 난다. 그래서 어제는 시장 간 길에 호두를 사왔다. 내 뇌에게 공물을 바치려고.
언젠가는 뇌에서 벌어지는 신호를 받아 적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꿈을 기록하고 형상화하는 일이 이미 시도되었다 하니 기대해 봄직하다. 그리되면 사람은 ‘나’라는 수수께끼를 어느 정도 풀 수 있을까. 그리되면 어느 날 어느 시에 내가 왜 그렇게 내 감정과 엇나가는 말을 해버렸는지도 알 수 있겠지. 내가 왜 나의 이성적 판단과 어긋나는 어리석은 결정을 해버렸는지도 알 수 있겠지.
그리고......, 그리고 그리되면 우리들은 우리 아이를 읽어낼 수 있을까. 어떤 감각은 우리 아이에게 어떤 신호로 입력되는지, 어떤 감정은 어떤 신호로 출력되는지, 우리들은 우리 아이의 뇌가 풀어놓은 데이터를 읽으며 우리 아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왜 길에서 문득 냅다 달려가 버렸는지, 왜 갑자기 울음이 터졌는지, 소리 지르는 뜻은 무엇인지, 머리를 벽에다 왜 찧는지 알 수 있을까. 왜 싫은지, 왜 좋은지, 무엇이 좋은지 무엇이 싫은지 알 수 있을까. 그리고 아이가 어미인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 걸 아이가 알고 있는지도 알 수 있을까......아이의 뇌 속에 어떤 이야기가 삶으로 기록되어 있는지 알 수 있을까.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희한하게도 일정 시기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크게는 대략 7,8년이고 범위를 좁히면 5년 남짓이다. 내 뇌는 무슨 이유에선가 그 시간 동안 근무를 게을리 했다(고 생각한다). 그 기간 동안 내 삶은 별로 기록되지 않았든지, 아니면 대충 허술하게 기록해버리고 슬쩍 어딘가 가둬버린 듯하다. 나는 내 뇌의 근무태만을 엄중히 질책해야 마땅하지만, 나와 내 뇌의 특수밀착관계를 감안해서 너그럽게 이해하려로 한다.
대략 93년도부터 99년도까지의 기억이 희미하다. 큰 병을 겪었고, 덜컥 아이를 가졌고, 아이를 낳았고, .....살았고, 둘째를 낳았고, .... 살았다. 드문드문 기억나는 장면들은 있는데 그리 많지 않다. 사진에 남아있는 짧은 순간들은 간간이 기억이 나는데, 그렇지 않은 날들은 그냥 건성으로 넘어간다. 그러니 내 기억의 사진첩은 그 몇 해 동안은 매우 얇고 허술하다.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폐성 장애를 가졌다는 걸 안 순간부터는 여기저기 귀동냥, 눈동냥 해가며 지냈다. 자꾸만 뿌리치는 아이 손을 잡아끌며 복지관, 신경정신과, 조기교육실, 무슨무슨 치료실, 한의원, 기공치료실, 수영장, 체육관 등을 돌아다녔다. 엄마의 관심을 무한 받고 싶었던 둘째는 유사자폐라는 고약을 떨면서까지 엄마를 붙잡았다. 그때부터는 두 놈을 붙잡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친정아버지를 여의고, 이사를 했다. 기억은 이때부터 다시 이어진다.
나는 한 시기도 내 삶이 처절한 전쟁과도 같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좀 힘들었지만 그냥저냥 살만하기는 했으니까. 진짜로 전쟁 같은 삶, 진짜로 하루하루를 악으로 버티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니, 그들을 보면서 감히 나도 힘들었어, 나도 그때는 전쟁이었어, 이렇게 말할 수 없다. 다만 그 시절이 기억이 나질 않아,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뭔가 힘들었던 것 같은데, 통 기억이 나질 않아....
아는 언니가 그 사이에 두어 번 나를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내가 아이와 같이 나가서 고급식당에서 언니가 사주는 음식을 먹었단다, 그리고 언니의 신혼살림집에도 다녀갔었단다.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랑 밤새 논적도 있다고 했다. 떡이 되어 업혀왔었단다. 친척이랑 무슨 놀이동산에도 갔었단다. 기억나지 않는다. 심지어 사진을 봐도 기억이 나질 않는 게 태반이다. 낯선 시간에 낯선 화장을 한 내가 그 속에 있는데, 그 옆에 있는 예쁜 아이들이 분명히 우리 아이들인데, 그 얼굴조차 참 신기하다. 저런 얼굴들이었나……, 새삼 너무 예쁘다. 저렇게 예뻤던 걸 그 때 알고 있었다면 모델 시킨다고 설치고 다녔을 텐데.
왜 그 시절이 기억나지 않는 걸까. 어렴풋이 짐작은 간다. 그 시절은 너무 바빠서 내가 날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 그 시절은 정신이 반쯤 나가서 돌 아 다니느라 뭘 기록할 여유가 없었다. 그 시절은 먼지바람처럼 너무 훌쩍 지나서 기억하기에 허망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시절은 그닥 기억하고 싶은 시간이 아니다.
지금의 나라면, 그 시절을 나의 다른 시간들과 마찬가지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나, 아마도 그 시절을 보내고 있던 나는 그 시간이 어서 지나고 좀 더 나은 다른 시간이 오길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리미로 다린 듯 그 시절의 기억주름을 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 뇌가 그 시절을 차곡차곡 접어서 상자 속에 넣어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와 각별한 사이인 내 뇌는 근무태만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나에게 친절을 베푼 것이리라. 뭘 그런 것까지 다 되새기면서 살려고 그래, 잘 넣어뒀으니 그냥 닫아놓고 살아, 이러면서 말이다.
그리고 김광석
희한하게도 기억이 없는 그 시기는 내가 노래를 듣지 않았던 시기와 겹친다. 올해는 이런저런 이유로 김광석을 일 년 내내 호명했던 것 같은데, 김광석을 들을 때마다 나는 김광석의 시절에 그의 노래를 듣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사실 김광석은 그보다 더 전부터 알려져 있었으나, 80년대의 젊은 나는, 마이클 잭슨, 프린스, 마돈나라는, 이른바 58년 개띠 삼총사의 화려함에 빠져있어서 김광석을 돌아보지 못했다.)
그 때 김광석을 들었더라면 아마 그 시절의 기억이 그의 노래와 함께 잘 기록되었을지도 모른다. 뇌에는 공감각적 기록이 훨씬 더 잘 입출력된다고 하지 않던가. 내 귀에 김광석이 들어온 것이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으나, 나는 김광석이 살았을 때 그의 노래를 들었던 사람들이 참 부럽다. 그들은 김광석에게 위로를 받은 세월을 나보다 더 많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의 어떤 시절이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아야 할 정도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김광석이 주는 위로는 받아야 한다. 자신도 알아채지 못하는 자기의식의 저 깊고 어두운 바닥 그 어디께, 그의 노래가 닿는다. 나도 외면해버린 그 어느 구석의 굳은살에 그의 노래가 닿는다. 상처가 없다면 부러 만들어서라도 위로받아야 할 것 같은 절대위로, 그게 김광석이다.
그래서 그의 죽음만큼은 나에게 위로가 되지 않지만, 그의 노래는 위안 그 자체다. 게다가 그가 사랑했던 그의 아이가 장애를 가졌었다는 사실을 듣고서는, 그에게 위로를 돌리며 나 또한 위안을 받는다.
내가 그때 김광석을 들었더라면, 그 시절을 보내기가 훨씬 더 수월했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김광석의 위안 없이 그 시간을 보낸 내가 참 안쓰럽다......기억에 없는 나의 아픔에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더불어 어딘가에서 한 해의 기억을 지우고 있을 나의 장애인부모 동지들에게도 위로를 전한다. 기억 지우지 마시라,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 그래도 꼭 그러고 싶을 만큼 아프다면 아픔이 지나고 난 다음에라도 꺼내어 볼 수 있게 쉽게 열리는 상자에 기억을 넣어두시라.
*글= 김종옥 (서울장애인부모연대 동작지회장)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김종옥은, 가끔 철학 인문학 관련 책을 쓰지만, 가장 쓰고 싶어 하는 SF소설은 아직 쓰지 못했다. 가끔 인문학 강의도 하고 지역 내 마을사람들 일에 두루 참견하며 바쁜 척하고 지내고 있다. 쓰임과 즐김이 있는 좌파적 삶을 살고 싶어 하며, 매일같이 세월호의 아이들을 생각한다. 지은 책으로 <철학의 시작> <처음 만나는 공자> <공자 지하철을 타다(공저)> <장자 사기를 당하다> <지구는 생명체가 살만한 곳인가>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