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푼 만큼 다시 돌아옵니다”
[기부자] 황혜진 정기기부자
마포구 상암동 아파트 단지에서 동네 명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이 병원은 장애어린이뿐만 아니라 주민들, 그리고 황혜진(37) 씨와 같은 기부자에게도 이미 일상을 함께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어린이재활병원이 자랑스러운 주민들
강서구의 한 재활병원에서 임상병리사로 일하는 황혜진 씨는 7년 전, 9단지 아파트로 이사왔습니다. 당시엔 병원이 빈 공터였습니다. “장애어린이 병원인 줄은 몰랐다가 저도 병원에서 일하다 보니 관심이 갔죠. 나중에 아이가 아플 때 가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첫 삽을 뜨고 건물이 한 층 두 층 올라가는 과정을 줄곧 지켜봤습니다.
병원이 지어질 때 주민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쳤다는 걸 기억합니다. 직장을 다니느라 ‘관찰자’에 머물 수밖에 없었지만, 황혜진 씨는 모르지 않았습니다. 집값이 떨어지고 장애어린이가 문제 행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일부 반대 의견이 편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최근 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강서구에서 발생한 갈등도 지역주민들이 입장을 바꿔보면 해결될 일이라며 안타까워합니다.
병원이 생기자 동네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반대했던 주민들이 오히려 병원을 더 잘 이용하는 것 같아요. 아이는 또래 친구들을 만나고 어르신들은 편하게 쉴 수 있고... 집 옆에 아이들과 같이 갈 수 있는 도서관, 수영장, 소아과가 생기니까 좋다고들 해요.” 병원이 주민들에게 환영받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며 뿌듯해하는 황혜진 씨의 얼굴이 밝습니다.
장애아이도 내 아이처럼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 나눔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건강한 제 아이를 보면서 늘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왔어요. 제 아이가 소중한 만큼 장애가 있는 아이들도 똑같이 소중하게 다가왔죠.” 2015년, 푸르메재단에 정기기부를 신청한 황혜진 씨에게 찾아온 변화는 주변을 살피는 일. 우리 아이 다칠까봐 전전긍긍하기만 했다면 몸이 불편한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게 됐습니다.
온 가족이 병원에 애정이 많습니다. 지난해 6월 기부자 초청행사 ‘1만 명의 기적’도 빼놓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장애어린이들이 쾌적하고 넓은 공간에서 어떤 치료를 받고 또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직접 둘러보며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 “아들한테 좋은 교육이 됐어요. 아직은 어려서 놀이터처럼 생각하는 것 같지만요(웃음).”
1층 기부자벽에 새겨진 황혜진 씨 이름을 보고 아들과 남편은 엄지를 추켜올렸습니다. 아이 이름으로 기부할까도 했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본보기가 된 것 같아서 보람찼어요. 첫째랑 뱃속에 있는 둘째 아이가 기부를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죠?”
봉사할 기회를 꿈꾸다
7살 난 아들 두민이 방 창밖으로 병원 간판이 보입니다. “아들이 알록달록 반짝이는 간판이 예쁘대요. 같이 야경을 감상하면서 엄마가 기부하는 병원에 대해서 얘기해주죠.” 두민이에게 병원은 좋아하는 장소로 손꼽힙니다.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에 다니며 엄마 아빠 손잡고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리고, 예상치 못한 깜짝 전시회도 구경하고, 몸이 아플 땐 병원 소아청소년과를 찾습니다.
자신이 일하는 재활병원 성인 환자들을 볼 때면 꾸준한 치료와 관리의 중요성을 실감한다는 황혜진 씨. “몸을 안 쓰면 퇴화하잖아요. 포기하지 않고 하다보면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질 거라 믿어요.” 기회가 된다면 병동 아이들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손을 보태고 싶습니다. “주변 도움 없이 혼자 육아를 하게 되면 한두 시간의 여유가 고마울 때가 많아요. 장애어린이 엄마들에게 작은 휴식을 선물하고 싶어요.”
황혜진 씨에게 나눔은 ‘부메랑’과 같습니다. “기쁜 일은 같이 공유하면 배가 되듯, 물질이나 재능을 누군가에게 나누면 그 이상의 기쁨으로 돌아와요. 제가 베푼 나눔도 언젠가 돌아오지 않을까요?” 집 앞, 어린이재활병원을 누구보다 아끼는 동네 주민의 존재만으로 든든합니다.
*글, 사진= 정담빈 간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