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사랑으로 움튼 기적
서울 양천구의 한 병원 치료실, 라헬이(6)가 천장에 매달린 줄에 몸을 맡기고 일어섭니다. 움직일 때 마다 찾아오는 통증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꾹 참아냅니다. 여섯 살 아이답지 않은 의젓함에 엄마 김복희(44) 씨의 마음이 저밉니다. “라헬이는 혼자 걷질 못해요. 그런데 걸으려는 의지가 커서 힘든 재활치료도 잘 견뎌내요.”
5년의 간절한 기도
라헬이는 여섯 달 만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800g의 작은 몸으로 세 달 동안 인큐베이터에서 숱한 고비를 넘기고서야 엄마 품에 안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퇴원 한 달 만에 온몸이 마비되는 강직성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소통도, 움직임도 자유롭지 못한 라헬이게 필요한 건 재활치료였습니다. 하지만 병원에 갈 수 없었습니다.
“남편의 갑작스런 사업 실패로 집이 경매로 넘어갔어요. 간신히 얻은 집에서도 월세를 못내 나와야 했어요. 생활이 어렵다 보니 라헬이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했죠. 병원에서는 제때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데, 병원에 갈 교통비조차 없으니……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는 것 밖에 없었어요.”
엄마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라헬이가 5살이 되던 지난해, 처음으로 재활치료를 받게 됐습니다. 현대모비스의 나눔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엄마는 재활치료비 지원 소식을 전해들은 그날의 기쁨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라헬이가 지원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어요. 눈물이 나더라고요. 감사했어요. 너무나.”
힘의 원천, 모성애
엄마는 어떤 상황에서도 라헬이의 재활치료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플 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라헬이가 재활치료를 시작할 무렵 유방암 진단을 받은 엄마.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라헬이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아픈 몸으로 라헬이와 병원을 오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프지 않을 때도 라헬이를 데리고 다니는 게 힘에 부치는데, 항암치료로 체력이 약해진 상태라 더 힘들었어요. 주변의 시선도 부담스러웠어요. 항암제 부작용으로 흰머리가 났었는데, 어떤 분이 저한테 라헬이 할머니냐고 묻더라고요. 물론 몰라서 그러셨겠지만, 울적했죠. 나중에는 머리카락이 빠져 두건을 쓰고 다녔어요.”
하지만 엄마에게는 딸의 재활치료가 더 중요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고달팠지만 라헬이를 생각하면 없던 힘도 샘솟았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건데, 어떤 이유에서든 포기할 수 없었어요. 소중한 기회잖아요. 그래서 라헬이를 치료실에 데려다 줄 때 마다 당부했어요. 너무 귀한 시간이니까 열심히 치료 받아야 한다고…… 잘 하고 오라고…….”
“이런 게 기적이죠.”
엄마의 헌신적 사랑에 라헬이는 노력으로 보답합니다. 재활치료를 받은 건 불과 1년 남짓, 치료사 선생님은 효과가 놀랍다고 말합니다. “일단 라헬이의 의지가 대단해요. 의사소통 능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어요. 아직 서고, 걷진 못하지만 치료를 통해 일상 속에서 할 수 없는 동작들을 반복해주면 신체 기능도 증진될 겁니다.”
엄마는 정서적 변화가 가장 반갑습니다. “라헬이가 자기 몸 상태가 친구들과 다르다는 걸 안 이후부터는 밖으로 나가길 꺼려했어요. 누군가 자기를 쳐다보는 걸 무척 싫어했죠. 놀이터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숨기 바빴어요. 그런데 이젠 먼저 인사를 건네요. 찬양대 활동도 하고 있어요. 비장애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휠체어에 앉아 노래를 부르는데도 괜찮대요.”
재활치료를 마치고 선생님 품에 안겨 나오던 라헬이가 엄마를 향해 외칩니다. “두고 보세요. 꼭 걷고 말 거예요. 전 할 수 있어요.” 재활치료를 받기 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라헬이의 당찬 모습에 엄마는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런 게 진짜 기적 아닐까요? (웃음)”
*글, 사진= 김금주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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