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보듬는 주름진 손
[푸르메인연] 이수옥 정기기부자
이웃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주는 할머니 기부자, 이수옥(75) 씨를 만났습니다. 25년째 살고 계시는 영구임대아파트 집 안으로 들어서자 올망졸망한 꽃 화분들이 한편을 메우고, 11년 전 위암 투병으로 사별한 남편의 영정사진이 걸려있습니다. 적적하지 않으시냐고 묻자 “처음 한 달은 내내 울었는데 이젠 아니야. 치매 있는 옆집 할머니 말벗도 돼줘야 하니, 외로울 틈도 심심할 겨를도 없어”라고 말합니다.
생애 첫 정기기부
텔레비전은 이수옥 씨의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켜 놓는 TV는 까만 밤이 될 때까지 ‘세상사에 대한 관심’을 채워줍니다. “앉아서 세상을 다 볼 수 있으니까 요리조리 채널을 돌리면서 봐요. 조용하고 적막한 걸 싫어하는데 얘는 두런두런 쉬지 않고 얘기하잖아.”
2014년 어느 날, 푸르메재단 어린이재활병원 건립 모금 TV 광고에 시선이 꽂혔습니다. “장애어린이들 위해서 재활병원을 짓는데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순 없었지. 장애아 엄마들이 아이 돌보느라 아무것도 못 하잖아. 내 아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가슴이 아파.”
십시일반의 뜻을 전하려 바로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한 달에 3만 원 하는 해외 어린이 결연은 솔직히 부담이 됐지. 만 원으로 병원 짓는 데 보탬이 된다니 할 수 있겠다 싶었어. 있는 사람들이야 몇 억 하면 좋지만 나 같은 사람들은 여럿이 조금씩 돕자는 거예요. 더 못해서 미안하지만... 십시일반이 무시 못해요, 그죠?”
매달 정부로부터 기초연금과 생계 급여를 지원받는 기초생활수급자로 형편은 빠듯하지만 꼭 하고 싶었습니다. “누가 알아주거나 대가를 바라는 게 아니라 내가 도움을 받으니까 얼마가 됐든 조금이라도 갚자는 마음이 컸지. 비록 쥐꼬리만 하지만 나도 나눌 수 있구나 하고 보람되죠. 억지로 하면 아까워서 못 할 텐데 하고 싶어 하니까 편안하고.”
‘초심 그대로 가달라’는 당부
정기기부는 생애 처음이라고 고백하지만, 주변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주름진 손을 있는 힘껏 내밀곤 합니다. 교회에서 연말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노인에게 쌀을 전달할 때 10kg을 기탁하기도 하고 치매 증상이 있는 옆집 할머니가 잘 있는지 하루도 빠짐없이 챙기며 같이 점심 먹는 일도 마다않습니다.
기독교인인 이수옥 씨는 푸르메재단이 종교와는 무관하다는 얘기에 “종교가 있든 없든 사실 상관없어요. 신앙이 없어도 사명감이라는 게 있잖아요. 운영을 잘하는 건 사람하기 나름이니까”라며 투명성이 제일 중요하지 않느냐고 되묻습니다.
초심대로 장애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활동을 펼치길 바란답니다. “초심의 눈이 요만했으면 그대로 가야 해. 눈이 커진다는 건 욕심이 생긴다는 의미거든. 처음 눈 그대로라면 이상이 없는 거야.” 이수옥 씨가 두 손을 동그랗게 오므려 눈에 갖다 댑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희망
혈압약을 챙겨야 하고 당뇨로 혈당 조절도 해야 하지만 또렷한 정신만은 젊은이 못지않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들과 글귀를 보여주며 손 안의 ‘요물’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초등학생 때 터진 6.25 한국전쟁 이후 학교 대신 공장을 다니느라 “시대를 잘못 만나 가방끈이 짧지만” 오랜 신앙생활과 세상에 주파수를 맞추고 있어 누구에게도 답답하단 소리 안 듣는다고.
뉴스 속 정치인과 기득권이 자신을 낮추기보단 ‘갑질’하고 부정을 저지르는 세태를 보면서 어린 세대가 걱정될 때가 많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 그래야 어린 아이들이 보고 배우지. 세상이 아무리 험해도 각자 소신대로 청렴결백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쓴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내면서도 희망은 놓지 않습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건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아서예요. 지갑을 주워서 경찰서에 갖다 주거나 쓰러진 사람을 인공호흡해서 살려낸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장애아 엄마들도 용기를 갖고 힘내면 좋겠어요.” 이수옥 씨의 나눔은 장애어린이들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의 다른 이름입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행복하다는 이수옥 씨. “늙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더 아프지나 말았으면 해. 이대로 살다가 잠자듯이 가면 얼마나 좋아. 자식도 없으니 세상에 미련이 없어요.” 정기기부만은 죽는 날까지 이어갈 계획입니다. “통장에서 자동이체가 안 되면 내가 간 것으로 보면 돼(웃음).” 찾아와줘 고맙다며 손 흔드는 이수옥 할머니와 헤어지는 길, 진한 여운이 오래도록 남습니다.
*글, 사진= 정담빈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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