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삶의 권리 ‘탈시설화’
[미국 장애인 생활시설 견학] 6편
디스커버리 하우스(Discovery House), 디스커버리 인 더 웨스트(Discovery In the West)
장애인의 ‘탈시설화’에 관한 논의가 여느 때보다 뜨겁다. 열기만큼이나 각자의 입장도 첨예하다. 시설을 벗어나려는 장애인 당사자, 그에 대해 우려하는 가족과 지역사회, 언제나 뜨뜻미지근한 태도의 정부, 그리고 그들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온도차.
과연 한국사회에서 탈시설화는 가능한 것일까? 한국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는 두 곳을 찾았다.
홀로서기를 돕는 ‘디스커버리 하우스’
디스커버리 하우스(Discovery House)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비영리단체인 아크 프레즈노(Arc Fresno)에서 운영하는 공동생활가정(이하 ‘그룹홈’)이다. 22~26세의 장애청년이 2년간 머물며 홀로서기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독립생활의 전초지이다. 정원은 4명. 현재 자폐와 다운증후군을 가진 청년 2명이 매주 $25(약 28,000원)의 생활비를 지불하며 거주하고 있다.
이곳은 그룹홈 유형 중 사회적 통합과 자립생활이 최대한 가능하도록 보장하는 ‘자립형’에 해당되며 담당 관리자가 주 1~2회 방문해 거주인들의 쇼핑과 요리를 돕는다.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고 끼니를 때우는 수준이 아닌,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구분해 계산하고 신선한 재료로 건강한 식단을 짜는 방법을 배우며 독립 후의 삶을 준비한다. 매니저 사브리나 프라이스(Sabrina Price) 씨에 따르면 자폐를 가진 거주인의 편식 성향도 이 과정을 통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집안의 모든 규칙은 거주인이 스스로 정한다. 거주인의 과도한 몰입을 예방하기 위해 여가시간에 TV 시청이나 인터넷 사용을 절제하고, 함께 보드게임을 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공동생활에 필요한 집안일 또한 협의를 통해 결정한다. 주어진 업무 외에 청소와 설거지 등 공동생활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쿠폰 지급으로 독려한다. 쿠폰으로 캔디나 연필을 구매하는 것부터 클럽에 가는 것까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 싶어 물어보니 “행동 개선에 효과적이고, 거주인 스스로도 가장 만족도가 높은 제도”라고 한다.
2년의 훈련 기간을 거친 거주자는 지역사회로의 진입 후, 누구보다 안정된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거주시설로 복귀하는 확률이 매우 낮다고 한다. 어렵고 힘들 거라 예상했던 발달장애인의 홀로서기가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일들이 한국에서는 어찌 그리 더디고 고된 걸까? 가슴 한 편이 아려왔다.
안전한 생활을 위한 ‘디스커버리 인 더 웨스트’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의 한적한 시골 외곽.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예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곳에 마스 그룹(Mars Group)이 운영하는 장애인 그룹홈이 위치해 있다. 18~59세의 중증 행동장애를 가진 성인들이 거주한다. 장애인들을 지역사회에 편입시키겠다는 주정부의 방침에 따라 시설 입소자들이 대거 영입되었다. 4명의 거주자 중 3명도 기존 시설의 입소자이다. 공격성 장애와 조현병을 갖고 있는 거주인들의 연령은 20대(2명), 30대(1명), 50대(1명)이다.
캘리포니아주 발달장애서비스부(DDS : Department of Developmental Services)는 발달장애를 가진 개인이 지역사회에 편입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CPP(Community Placement Plan) 펀드를 운영한다. CPP는 발달장애로 인해 지역사회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개인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금으로 4명의 거주자들도 이 기금을 통해 월 $13,000(약 1,456만 원)를 지원받고 있다.
그룹홈 운영의 가장 큰 목적은 지역사회 안에서 거주인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있다. 자해와 폭력성향을 가진 거주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 3명의 관리자들이 팀을 구성해 24시간 3교대로 근무한다. 외부 프로그램이 많은 낮 시간에는 추가 인력을 배정해 안전에 만전을 기한다. 개인공간을 제외한 모든 공공구역에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위험상황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가위, 칼, 포크처럼 날카로운 도구는 철저히 관리되며 15분마다 관리자를 통한 안전 점검이 이뤄진다. 1시간에 4차례, 하루에 96회의 점검이 쉽지는 않을 텐데도 관리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 충분한 인력이 지원되어 모든 것에 “No problem”을 외치는 그들의 여유가 무척이나 부러웠다.
이곳의 또 다른 목적은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것이다. 거주자는 하루 2회, 아침·저녁으로 청소, 빨래, 설거지 등의 집안일을 맡는다. 요리는 관리자가 직접 하지만, 거주인은 반드시 보조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또한 바람직한 행동을 강화하기 위해 '강화 메뉴(Reinforcement Menu)‘를 만들어 긍정적인 행동을 독려한다. 이것만으로 실제 행동의 변화를 볼 수 있겠냐는 물음에 관리인 마리오 알바레즈(Mario Alvarez) 씨의 대답은 디스커버리 하우스와 동일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이고, 만족도 높은 제도”라며 한국에도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을 권했다.
거주인들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아가는 지역 주민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집을 설계하고 리모델링하기 전에 주변 이웃에게 알리고 협조를 구했습니다. 또한 위험상황 발생 시의 대처방안에 대해서도 충분한 안내를 드렸어요. 실제 입주한 뒤에도 아무런 위험과 피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요즘은 건장한 관리자와 거주자들이 봉사활동을 통해 지역의 대소사를 도맡아 해결해 오히려 지역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아졌습니다. 이렇게 이웃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가 되겠어요?” 마리오 씨의 대답은 질문한 우리를 도리어 숙연케 했다.
탈시설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장애 유형과 장애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부실한 시스템과 부족한 지원이 문제이다. 탈시설의 실현가능성을 논하기에 앞서 장애인에 대한 비뚤어진 편견을 바로 잡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 사회에서 탈시설화를 말할 때, 더 이상 장애의 중증 정도가 기준이 되지 않을 그날을 꿈꿔본다. 문제는 지원이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글= 백해림 팀장 (모금사업팀)
*사진= 백해림 팀장 (모금사업팀), 최한성 직업재활사 (과천시장애인복지관)
주소 : 4490 E. Ashlan Ave. Fresno, CA. 93726 (Loewen Achievement Center)
전화 : (559) 226-6268
디스커버리 인 더 웨스트(Discovery In the West)
주소 : 12143 Ave 322 Visalia, CA 93291
전화 : (559) 372-8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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