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에게 길을 묻는다면

여러분은 시각장애인에게 길을 물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마도 시각장애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는 분들도 많지 않으실 텐데요. 저는 몇 년 전 미국에서 시각장애인의 도움을 받아서 길을 찾아가는 꽤 흥미로운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점자연구소(Braille Institute)에서 1965년부터 매년 개최하는 브래일랠리(Braille Rallye)였습니다.


브래일랠리에 참여해 도로를 주행하고 있는 참가자. (출처 : The Washington Post)
브래일랠리에 참여해 도로를 주행하고 있는 참가자. (출처 : The Washington Post)

브래일랠리는 TSD(Time-Speed Distance) 랠리 중 하나로, 일반 도로에서 이뤄집니다. TSD랠리는 우리가 보통 자동차 경주하면 떠올리는 스피드를 겨루는 경주가 아니라 동승한 네비게이터가 읽어주는 로드북의 지시에 따라 지정된 경로로 여러 곳의 체크포인트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운전자와 네비게이터간의 커뮤니케이션과 팀웍이 중요한 레이스입니다. 브래일랠리가 보통의 TSD랠리와 다른 특별한 점은 바로 지정된 경로를 알려주는 네비게이터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점과 로드북이 점자로 되어있다는 점입니다. 브래일랠리의 네비게이터는 점자학교에서 점자를 배운 학생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과 함께 하고자 자원한 비시각장애인들이 자신의 자동차를 가지고 참가합니다. 스페셜카를 가진 동호회 회원들도 많이 참가하기 때문에 신기한 자동차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저는 ‘린지’라는 이름의 대학생과 한 팀이 되었습니다. 제가 운전을 하면서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주면, 린지는 저는 봐도 읽을 수 없는 점자로 된 로드북을 차근차근 읽어주며 우리가 가야할 길을 알려줍니다. 로스앤젤레스 도심에서 출발해서 오렌지카운티의 애너하임까지 가면서 중간 중간 여러 군데의 체크포인트를 거쳐 가야하기 때문에 3시간이 넘는 레이스였습니다. 저와 린지는 열심히 체크포인트들을 다 찾아갔지만, 중간 중간 수다를 떠느라 길을 좀 헤매는 바람에 아쉽게도 수상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자동차 경주에 참여한 것이 처음이었기도 했지만 린지와 함께 한 시간이 참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상은 놓쳤지만 린지에게도 좋은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시각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이 행사를 통해서 점자를 읽는 능력도 키우고, 학습에 대한 동기유발뿐만 아니라 자신감도 키우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브래일랠리에 참여해 도로를 주행하고 있는 참가자. (출처 : The Washington Post)
브래일랠리에 참여해 도로를 주행하고 있는 참가자. (출처 : The Washington Post)

그러나 이 브래일랠리가 더욱 의미 있는 것은 비장애인이 도움을 주고 장애인이 일방적인 수혜자가 되는 행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경주라는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연구 조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저는 그날 경주에 참가한 많은 비장애인들이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매우 긍정적으로 바뀌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이전에는 만나보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과 부정적 인식이 의미 있는 만남과 접촉의 경험을 통해서 긍정적으로 변화한다는 이론이 있는데, 이 브래일랠리가 그 이론에서 제시하는 긍정적 변화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너 시간 남짓, 함께 힘을 합쳐 자동차 경주에 참가하는 동안 비장애인은 시각장애인이 가진 수많은 능력을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을 활용하는 보조기구들과 환경만 마련된다면 시각장애는 시력이 없는 것일 뿐, 결코 능력의 장애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떠올리면 ‘장애인은 능력이 없다, 약하다, 건강하지 않다’라고 생각합니다. 장애는 어느 한 부분에 생긴 것인데 그 사람의 전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시각에 장애가 있더라도 지적능력이나 감정 표현, 운동능력과 전반적인 건강 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데도 단지 눈에만 있는 장애를 그 사람의 다른 모든 것에도 적용하여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에서 수년 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있었는데, 실험에 참가한 대학생들은 어린아이, 비장애인인 성인, 그리고 휠체어를 타고 있는 성인의 사진을 보고 각각 인터콤으로 길을 알려주도록 합니다. 실험 결과,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휠체어를 타고 있는 성인의 사진을 보면서 길을 알려줄 때 비장애인 성인에게 썼던 말과는 달리 어린아이에게 길을 가르쳐줄 때와 비슷한 어조로 반복적인 설명을 했습니다. 장애인은 성인이어도, 단지 보행에만 장애가 있는데도, 지적능력이 어린아이 수준일 것이라고 여기고 어린아이 대하듯 말하는 것입니다.


휠체어를 양 팔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는 장애인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많이 있습니다. 친구와 같이 일본 여행을 하면서 일본 사람에게 제가 일본어로 길을 물어봤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 친구를 보면서 대답을 해주는 것입니다. 일본어는 하나도 모르는 친구에게 말이지요. 사고를 만난 지 17년이 지났고, 풀코스 마라톤을 두 번을 하고, 책도 쓰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제가 건강한지 (피부이식 수술을 좀 많이 받긴 했지만 건강에는 이상 없습니다), 그 짧은 손으로 컴퓨터 자판은 두드릴 수 있는지 궁금해 합니다. 몇 년 전에 어느 큰 행사가 열리던 첫째 날, 테이프 커팅식에 초대되었는데 초대된 사람들 중 저에게만 가위를 안 주었던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손이 불편하니 가위질을 못할 것이라고 단정하고 가위를 주지 않은 것이지요.


아마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매일의 일상 속에서 장애인들이 이런 일들을 겪으며 살고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해프닝으로 넘길 수도 있는 일이지만, 당사자가 겪는 불쾌함과 당혹감은 사실 쉽게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일들이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권리와 직결된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장애인은 능력이 없다, 도움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이 장애인들의 능력을 제한하고 장애인들을 늘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혜택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부정적인 인식이 장애인이 겪는 진짜 장애라고 생각합니다.


점자를 읽고 있는 시각장애인


여러분은 장애인에게 도움을 받아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혹시 그런 기회조차 내어준 적이 없는 것은 아닌지요. 잠시라도 장애인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가능하면, 도움을 주는 만남이 아닌 잠시라도 동등한 위치에서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함께 노력하는 활동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함께 하는 동안, 장애인을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여기던 생각에서 이제는 나와 비슷한 것이 많은 ‘사람’으로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장애인(障礙人)을 볼 때, 장애(障礙)를 먼저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人)이 먼저 보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사회도 장애인이 먼 곳에 따로 모여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의 직장동료가 되고, 동네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는 일이 많이 생겨날 것입니다.


*글= 이지선 푸르메재단 홍보대사










이지선 이지선 씨는 대학 시절 교통사고로 전신 3도 중화상을 입었지만 생사를 넘나드는 수술과 재활치료 끝에 절망을 딛고 삶의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2005년부터 푸르메재단 홍보대사 1호로서 재활병원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뉴욕 마라톤 완주, 매월 11일 ARS 기부데이 캠페인, 기적의 손잡기 캠페인을 이끌고 있습니다. 미국 UCLA 사회복지학 박사학위 취득 후 한동대학교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로 임용돼 장애인 복지 개선을 위한 연구·강연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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