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에 붕대를 감을 때면
몇 달 전에 휴대폰을 바꾸고 나서 삶에 한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오늘 하루는 얼마만큼 걸었는지 체크하게 된 것이다. 휴대폰을 바꾼 것과 걸음걸이를 신경 쓰게 된 것이 서로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다름 아니라 새로운 휴대폰에 만보기 기능이 생겼기 때문에 걸음 수를 셀 수 있게 되었다.
휴대폰이 알려주는 수치로는 내 몸무게와 키를 고려해 하루 14,087보를 꾸준히 걸으라고 조언하지만, 지난 몇 달간 단 하루도 이 막대한 목표치에 도달해본 적이 없다. 어릴 적부터 양손에 목발을 짚고 네 발로 만 사천여 걸음을 옮기기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매일 휴대폰에 기록되는 일간 통계에 따르면 나는 보통 5,000여보를 걷고, 많이 걷는 날에는 11,000여보를 걷는다. 주로 가족과 함께 나들이 혹은 여행을 떠나는 주말에 많이 걷곤 한다.
사실 발걸음을 옮기기도 힘들지만,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것은 한 보폭씩 앞장서야 하는 내 목발이다. 휘어지고 부러지고 긁히기 일쑤이다. 한국에는 아직 좋은 목발이 따로 없기 때문에, 늘 동네 의료기 상사에서 한 조에 만 오천 원 남짓한 알루미늄 재질 느낌의 목발을 이용하다가 망가지면 버리고 다시 구입하기를 반복한다. 지금 원고를 작성하고 있는 책상 옆에 나란히 세워진 목발도 긁히고 찌그러지고 고무 패킹은 닳아 얼마 남지 않아 추운 겨울을 보내기엔 너무도 여리고 가여운 존재이다. 그러나 이전의 목발들과 다른 점은 겨드랑이를 가져다 기대는 목발의 위 지점에 압박붕대가 둘러져있다는 점이다.
목발에 붕대를 감기 시작한 것은 내 아내인 가연이의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되었다. 매일 몇 천보씩 걷다보니, 어깨 밑 부분부터 겨드랑이까지 새까맣게 멍이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딱딱한 목발의 어깨 쿠션으로는 도무지 그 고통을 완화할 수 없었다. 여름이 두려웠다. 목발을 짚기 시작한 후로 민소매티는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고, 얇은 흰 소매 반팔을 입을 때면 쿠션이 없어 또 금세 어깨가 아플까봐 조심스러웠다. 목발과 함께 걸어야 할 내가 목발을 두려워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분명 해결책이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목발에 대해 인터넷으로 찾아보더니 난데없이 약국에서 붕대를 사왔다. 그러고는 붕대를 칭칭 감아주며 말했다. “이렇게 하면 목발이 더 깨끗할 거야. 그리고 쿠션 역할도 조금은 되지 않을까?” 목발에 붕대를 감아주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환자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내 의지와 달리 붕대 감긴 목발을 짚게 되면 더욱 불편해보일 거라는 불만도 섞여있었다. 몸이 불편한 자가 몸이 불편한 것에 대해 드러내고 인정하는 것이 숨길 일이겠느냐만 말이다. 철없는 내 모습에 비해 그저 내일도 오늘처럼 무사히 걸어달라고 목발에 붕대를 감아주는 가연이의 모습은 부쩍 어른스러웠다.
목발에 붕대를 다 감고 늘 그렇듯 다음날 다시 험하게 목발을 짚으며 걷는 내 일상 속에서 붕대는 오래 견디지 못했다. 금방 낡고 해지면, 또 붕대를 다 풀고 새로 붕대를 사서 감고. 그녀는 지난 몇 달간 이 일을 반복했다. 밤마다 목발 험하게 쓰지 말라는 꾸중을 들으며, 다시 머리맡에 놓인 목발에 붕대를 감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본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나도 아내를 지켜주겠노라고. 장애인의 몸으로 사랑을 고백하기까지 쉽지 않았다. 왜소한 체격과 약한 체력으로 포기해야할 것이 많았다. 그래도 겨우 눈물을 참으면서 ‘다른 이들이 주는 것 당신께 못 전해드려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당신께 드리리.’ 아내와의 결혼을 앞두고 나 홀로 잠들지 못하고 다짐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전히 붕대가 칭칭 감긴 목발을 짚고 취업 원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몇몇 회사에 찾아다닐 때마다 지난 밤 그녀가 묶어준 붕대의 부드러움과 기대에 차려고 하는 압박을 함께 느낀다. 빳빳하게 다리미질한 정장 차림의 면접복에 비해 목발에 닳고 낡아 후줄근해진 붕대를 숨기려야 숨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나의 부끄러움이나 초라함보다는 고생해서 붕대를 묶었을 아내에게 먼저 미안함을 느낀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약국 앞에서 붕대와 테이프를 사서 집에 들어가 목발에 붕대를 감을 때면 마음이 복잡하다. 닳아버린 붕대는 버리면 그만이지만, 때로 쓸모없다고 느껴지는 내 신체의 멍들을 보면서 영영 붕대를 감으며 이 고된 현실을 살아갈 수 있을까, 아내는 언제까지 내 붕대를 칭칭 감을까, 나는 언제까지 칭칭 감긴 붕대를 겨드랑이에 끼운 채로 활동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제까지 아프지 않고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는 태어난 이상 살아가는 것이다. 기쁜 순간도, 즐거운 순간도 다 지나가고 흘러간다. 잠깐의 행복을 좇기 위해 나는 불편한 다리로 목발을 짚고 또 걷는다. 붕대를 감았다 풀었다 반복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좌절감을 느끼거나 절망감에 사무치지는 않는다. 멍이 든 피부 자국은 언젠가 다시 물렁거리고 꿈틀거리다 새 살이 돋아날 것이고, 해지고 찢어진 목발 위 붕대는 또 새 것으로 교체될 것이다. 그동안 나는 사랑하는 가족과 이 반복되는 시간을 늘 함께 할 것이다. 느린 걸음걸이도, 후줄근한 붕대도 계속 함께 갈 것이다. 잠깐의 행복을 다시 곧 마주할 때까지.
*글= 변재원 작가
변재원 작가는 1993년 10월 30일생으로 생후 10개월에 불의의 의료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했고 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주제의 칼럼들을 기고하고 있다. 마주하기 힘든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고, 사회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책임있는 삶을 사는 것이 그의 꿈.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존레논과 아웅산 수지 여사이다. |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변재원 작가의 개인 사정으로 인해 칼럼 연재를 마칩니다. 2014년 11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2년 동안 좋은 글을 써주셨던 변재원 작가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