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만나는 창, 그림
[열정무대] 팝아티스트 정도운
자폐성장애로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던 여섯 살 소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내면의 이야기를 스케치북에 담아내며,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15년 뒤, 어엿한 팝아티스트로 성장했습니다.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청년 작가 정도운 씨입니다.
나의 언어 ; 뮤지션 + 노랫말
장애예술인들의 공간 잠실창작스튜디오. 정도운 씨의 작업실이 있는 곳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머니 고유경 씨가 반갑게 맞이해줍니다. 정도운 씨는 인기척도 느끼지 못할 만큼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뷰는 잠시 뒤로 미뤄두고, 작업실을 먼저 둘러봤습니다.
밝고 경쾌한 색으로 채워진 인물 드로잉. 자세히 들여다보니 유명 힙합 뮤지션 ‘에픽하이’입니다. 다른 작품에도 여러 뮤지션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 이유를 어머니 고유경 씨가 귀띔해줍니다. “도운이가 음악을 좋아해요. 도운이 동생이 ‘에픽하이’ 노래를 날마다 틀어놨는데, 도운이가 노래를 찾아 듣고 앨범을 사더니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이후 다른 가수들에게도 관심을 갖더라고요”
에픽하이, 아크릴물감·펜·콜라주, 41x32cm, 2015
언어표현이 서툰 정도운 씨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뮤지션과 노랫말을 통해 전합니다. 한동안은 ‘죽음’을 주제로 다양한 작업을 했습니다. 정도운 씨가 직접 소개해주겠다며 작품 앞에 섰습니다. “죽음을 노래한 힙합 뮤지션 ‘에픽하이’, ‘다이나믹듀오’, ‘언터쳐블’입니다. 그리고 가사를 적었습니다.” 이어 다른 작품도 보여줍니다. “세상을 떠난 신해철을 그렸습니다.” 정도운 씨는 자신의 방식으로 故 신해철을 추모했습니다.
rainbow grimreaper, 마카·콜라주, 50x36cm, 2016
나의 작업 ; 재미있는 놀이
다시 한 번 작업실을 둘러보니, 캘리그래피(calligraphy) 작품도 여럿 눈에 띕니다. “2015년 5월 음반을 발매한 가수, 제가 뽑은 최고의 가수, 결혼을 하지 않은 연예인의 이름이에요.” 놀라울 정도로 기발한 작품 속 인물들의 연결고리. 모든 아이디어의 원천은 인터넷 검색입니다. 항상 좋아하는 음악과 뮤지션에 대해 찾아보고, 충분한 정보가 축적되면 자신만의 방법으로 분류해 스케치북에 쏟아냅니다.
관심사를 작품에 담는 만큼, 늘 콧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작업하는 정도운 씨. 슬럼프도 있었습니다. 어머니 고유경 씨는 정도운 씨의 고등학교 시절을 가장 힘든 시간으로 기억했습니다. “도운이가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곧잘 그렸어요. 그래서 미술 특성화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어 하더라고요.” 특수학급이 없는 곳에서 입시 위주의 빡빡한 수업 일정을 소화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잘 견뎌냈습니다. 창작활동에 대한 열의가 있어 가능했습니다. 지금도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에 매진합니다. 그룹전을 통해 작품을 선보여 오다 지난해에는 첫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중얼중얼 래퍼파티>. 좋아하는 뮤지션을 그려 선보였습니다. 이후 인디밴드의 요청으로 앨범 재킷을 디자인했고, 대한작업치료사협회 로고 제작부터 발달장애인 공동체 기금 마련을 위한 콘서트 포스터 작업까지 다양한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발달장애인 공동체 기금 마련을 위한 포스터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정도운 씨
나의 꿈 ; 뮤지션과의 컬래버레이션
최근에는 재미있는 방식으로 대중들과 만났습니다. 홍대클럽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연 것. 주제는 <정도운이 만난 사람, 정도운이 만날 사람>. 그동안 만난 뮤지션과 앞으로 만나고 싶은 뮤지션을 작품 소재로 삼았습니다. 전시 기간 동안에는 관객들과 함께 인디밴드의 공연을 즐기고,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특별한 시도에 정도운 씨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했습니다. “좋아하는 뮤지션들과 같이 재미있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정도운 씨가 수줍게 대답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고유경 씨는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도운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해 하고, 한 사회인으로서 작게나마 역할을 해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좋아요.” 정도운 씨가 더 많은 뮤지션들과의 관계를 통해 세상을 향해 한걸음 더 걸어 나올 수 있길 응원합니다.
*글,사진= 김금주 간사(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