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메인연] 이해인 수녀님

 

 “한 톨의 시가 세상을 / 다 구원하진 못해도 / 사나운 눈길을 순하게 만드는 / 작은 기도는 될 수 있겠지 / 힘들 때 잠시 웃음을 찾는 / 작은 위로는 될 수 있겠지”

글로 세상에 희망을 싹 틔우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에는 사람을 향한 애정이 고스란히 녹아납니다. 암 투병 후 그 애정은 더욱 커졌습니다. 자신의 병을 ‘세상에 더 아픈 이들을 치유해주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푸르메재단과 2011년 북 콘서트, 2012년 희망 나눔 콘서트를 열고 시낭송을 통해 장애어린이들을 위로했던 이해인 수녀님. 책과 음반의 판매 수익금 일부를 장애어린이 재활치료를 위해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오는 9월에는 국내 첫 통합형 어린이재활병원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서 개최되는 ‘푸르메를 사랑한 작가 초대전’에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장애어린이들에게 늘 힘이 되어 주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지난 6월 부산 광안리 성 베네딕도 수녀원 ‘해인글방’을 찾았습니다. 만나자마자 꽃 한 송이와 광안리 바닷가에서 직접 주웠다는 조가비, 책 한 권을 건네며 활짝 웃어 보이는 그녀에게서 아픈 기색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아프고 나니 감사의 마음이 더 깊어졌어요.” 시련을 축복의 기회로 삼은 그녀의 모든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Q.<민들레의 영토>가 출간된 지 40주년 됐어요. 1976년에 초판이 나오고 이후에 50쇄가 찍혔으니까 참 많이 읽힌 거죠?

A. <민들레의 영토>가 출간됐을 때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그 당시는 투쟁도 많이 하고 그런 시기라 잔잔한 시가 위로가 됐던 게 아닌가 생각해요. 그런데 그때 저는 제 책이 그만 팔리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했어요. 믿거나 말거나. (웃음) 유명세를 타다보니 수도생활을 하는데 곤란하고 미안한 일들이 생기더라고요. 수도자들이 왜 익명으로 책을 내는지 이해가 갔죠.

Q. 수녀원이 참 예뻐요. 빌딩숲 사이에 울창한 나무, 만발한 꽃들로 둘러싸인 곳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A. 보수한 곳이 몇 군데 있긴 하지만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요. 그런데 예전이 더 예뻤던 것 같긴 해요. 지금은 수녀원 주변에 높은 건물과 도로가 생겼잖아요. 그런데 과거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때는 시야가 확 트여서 광안리 바닷가도 더 잘 보였어요.

Q. 계속 이곳 부산 수녀원에 머무르셨나요?

A. 1964년에 입회해서 벌써 52년 됐어요. 지금 여기 본당에는 수녀 80명, 예비수녀 40명이 있는데 서열로 따지면 원로죠. (웃음) 서강대 대학원 시절 빼놓고는 계속 여기 머물렀어요. 그런데 제가 활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서울에 있는 줄 아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부산 시민들도 가끔 저를 보고 놀라곤 해요.

Q. 수녀님을 보기 위해서 직접 찾아오는 분들도 많을 거 같아요.

A. 네. 부산에 관광 왔다가 오시기도 하고, 지나가다 오시기도 하고 그래요. 너무 많은 분들이 찾아오다 보니까 1997년에 아예 ‘해인글방’을 열었어요. 이후 ‘해인글방’을 집필실이자 사무실로 쓰고 있어요. 사실 저도 사람을 만나는 일이 힘들 때도 있어요. 그런데 그분들에게는 좋은 추억이 되니까 항상 성심성의껏 응대하려고 해요.

Q.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시는지 궁금해요.

A. ‘해인글방’은 복덕방 같은 곳이기도 해요. (웃음) 다양한 사연을 가진 분들이 들러서 이런 저런 고민을 털어놓아요. 어느 날은 어떤 분이 세상을 떠난 동생의 가방에 제 시집이 있었다며 찾아왔어요.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갔는데 몇 년이 지나 우연히 만났어요. 상담박사가 되어 있더라고요. 그리고 제게 혜민 스님의 주소를 묻는 분도 계셨어요. 그래서 알려드렸는데 이후 제게도 계속 편지를 보내오세요. 미혼모가 찾아와 미혼모 센터를 연결해준 적도 있죠. 참 다양한 사례가 많아요.

Q. ‘해인글방’ 곳곳에 편지들이 많아요.

A. 다 저한테 온 편지들이에요. 교도소에서 온 것도 있고, 캐나다에서 온 것도 있어요. 참, 제 책을 읽고 쓴 독후감들도 있어요. 저는 다 읽어 보고 답장을 하려고 노력해요.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주고받은 서신들은 이름별로 정리해 ‘해인글방’ 창고에 보관해뒀어요. 제 비밀창고에요. (웃음) 피천득 작가, 법정스님, 박완서 작가 등 지인들과 주고받은 것들도 있어요.

Q. 서가에 성서부터 문학,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빼곡한데 박완서 선생님의 책이 눈에 띄어요. 박완서 선생님의 책에 수녀님으로부터 위안을 받은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잖아요.

A. 박완서 선생님은 저보다 14년 위세요. 그래도 가깝게 지냈어요. 1985년 4월 여성동아 당선자 모임에서 만나 친분을 쌓았죠. 1988년에 박완서 선생님이 남편과 아들을 잃고 힘들어 하실 때 제가 수도자다 보니 의지하고 싶으셨던 게 아닌가 생각해요. 제가 위로 받기도 했어요. 박완서 선생님이 담낭암 진단을 받기 전 암 투병 중인 저를 찾아 위로해 주기도 했어요.

Q. 벽에 걸린 법정스님의 글씨도 인상 깊어요.

A. <민들레의 영토>가 나왔을 때 법정 스님한테 보내드렸는데, 법정스님이 저에게 답장을 보내면서 인연이 시작됐어요. 이후 글을 주고받으면서 수십 년 동안 인연을 쌓았어요.

Q. 얼마 전 컴백한 가수 박인희 선생님과도 인연이 깊다고 들었어요.

A. 풍문여고 동기동창이에요. 1, 2학년 때 같은 반이었어요. 일기를 교환하기도 했죠. 그 친구가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로는 만나지 못했어요. 어릴 때 그 친구는 얌전했어요. 제가 활발한 편이었죠. (웃음)

Q. 혹시 교직은 생각해본 적 없으세요?

A. 2000년대 초에 신라대학교에서 교양강의를 했었는데 힘들어서 그만뒀어요. 학생들에게 나쁜 점수 주기 싫었어요. 전철 타고 다니면서 애들 초콜릿 나눠주고 시 읽힌 적은 많아요.

Q. 암 투병 중이신데 건강은 어떠세요?

A. 죽었다는 소문도 많더라고요. 며칠 전에도 한 언론사에서 확인 전화가 왔더라고요. 그런데 보시는 것처럼 건강히 잘 있어요. 약 타러 가는 것도 소풍가듯 가요. 아프기 전보다 에너지가 더 넘쳐요. 투사같이 터프해졌어요. 별명이 여장부에요.(웃음) 잠재해있는 내면의 모습이라 생각해요. 항암치료를 안 받겠다던 환자가 저를 보고 항암치료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많은 암환자들이 저를 보고 위안이 됐으면 좋겠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A. 암인데도 의연한 제 모습에 제가 놀라웠어요. 주위에서 남몰래 울라고 할 정도로 눈물이 나지 않았어요. 나를 위해서는 눈물이 잘 나지 않더라고요. 세상에 안쓰러운 사람들 많아요. 내가 아픈 게 ‘겸손해져서 세상에 더 아픈 사람들을 치유해주라는 뜻’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저의 소임이라 생각해요.

이해인 수녀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그녀의 시를 읽은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항상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는 그녀에게 오늘도 위로의 선물을 받습니다. 그녀의 치유의 힘이 힘들고 지친 세상 모든 이들에게 닿길 바라봅니다.

*글, 사진= 김금주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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