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첫 늦여름의 단상
지난 호에서 프랑스로 간다는 소식을 전했듯, 나는 지금 프랑스에 있다. 칼럼을 작성하고 있는 오늘은 프랑스로 온지 꼬박 한 달째이다. 정확히 언제 한국으로 다시 귀국할지 정하지 않았기에, 짐은 한껏 챙겨야만 했다. 하지만 내 마음껏 챙긴다 한들 그 짐을 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짐을 한껏 챙겨놓고 다시 비우기를 반, 또 마저 남은 반 중 일부를 여자친구에게 덜어주는 일이 반이었다. 스스로가 장애인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내 신체의 한계를 잘 알지만서도, 이렇게 모두가 힘을 나눠야 할 일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낄 때면 마지막 남은 남성성을 상실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고는 한다.
인천에서 출발해 우리가 사는 지역 남프랑스의 페르피냥까지 오는데 약 20시간이 넘게 걸렸다. 어느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긴 이동을 한 것은 내 생애 처음이었다. 인터넷으로 미리 봐둔 집에 들러 월세 계약을 마치고, 그 자리에 누워 온종일 못 잔 잠을 잤다. 그러고는 일어나 다음 주에 있을 학교 입학 준비를 하였다. 외국인 학생들인 우리가 무엇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한 각종 보험에 새로 가입하는 일이었으며, 또 외국인으로서 정식적인 체류 증명절차를 밟는 일이었다.
한국은 은행에 가면 바로 통장을 만들고 보험에도 가입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반드시 ‘랑데뷰’라고 불리는 사전 예약을 해야지만 은행을 이용할 수 있다. 그저 한국에서처럼 은행에 바로 가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한국의 은행은 약 다섯 명 가까이 되는 수납창구의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대출, 펀드, 상담 등에 따라 해당 부서로 연결시켜주는 시스템이라면, 이곳은 은행 안내 데스크 직원 한 명에 사무실 안에 있는 세 명 정도가 전부이다. 즉 수납창구와 같은 것이 전혀 없다. 한 마디로 금융 산업에서의 인터넷뱅킹 등 자동화가 상당 부분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남은 최소한의 인력만으로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게 겨우겨우 예약을 하고, 직원을 만나 통장과 보험에 가입하면 또 그것이 적용되어 통장, 카드, 보험안내서가 배송 오기까지 3주일이 걸린다. 그 자료들이 우편 배송 과정 중에 사고가 나면, 다시 재발급 받기까지 또 수주일이 걸린다. 한국처럼 행정처리가 신속하고 서비스를 정확하게 해주는 국가는 전 세계에 몇 없다는 것은 정말 사실이다.
이처럼 느린 행정을 지닌 거북이 국가에 장점이 있다면 단언컨대 장애인 복지이다. 프랑스 거리를 돌아다니면 정말 많은 장애인을 볼 수 있다. 10만 명도 채 살지 않는 소도시인 우리 마을조차 1,000만 인구가 사는 한국의 수도 서울보다 더 많은 장애인이 있는 것만 같다. 그것은 실제로 장애인들이 더 많아서 많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껏 장애인들이 외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기에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모든 버스는 저상버스로 설치되어 있어 언제든지 휠체어 승객들이 탈 수 있도록 되어 있고, 버스 내에 별도의 장애인 및 노약자석이 따로 있어 자리에 앉기도 수월하다. 또 설령 만석 버스에 타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몸이 불편한 이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놀라운 것은 버스만이 아니다. 화장실도 그렇다. 사실 한국의 장애인들이 가장 많은 고초를 겪는 것이 이 화장실인데, 휠체어가 들어가기에 화장실 규격이 너무 작거나 겨우 장애인화장실을 찾아보려 하면 큰 건물에 결국 하나 정도 있는 것이 전부이다. 이곳의 화장실은 반드시 화장실마다 장애인용 한 칸, 비장애인용 한 칸씩 설치되어 있다. 즉, 화장실이 두 칸이라면 그 중에 한 칸은 장애인 전용으로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평수 대비 한국의 화장실이 약 5개의 좌변기가 놓여있다면, 프랑스에는 공간 확보 때문에 장애인용과 비장애인용 한 칸씩 2개 정도의 좌변기가 놓여있다.
또 종종 화장실이 없는 작은 규모의 대학 강의동이 있는데, 놀라운 것은 화장실이 없어도 장애인 화장실만은 꼭 있다. 비장애 학생들은 다른 강의동까지 이동하여 용무를 해결하기에 비교적 수월하지만 장애학생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장실 한 칸 없는 건물조차 별도의 장애인 화장실만큼은 설치되어 있다.
목발을 짚는 나도 한국보다 생활이 훨씬 편해졌는데,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은 삶의 질적인 차이를 정말 크게 느낄 것 같다. 한국과는 달리 휠체어가 못가는 곳이 없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벤치에 앉아있어도 지나다니는 휠체어나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케인지팡이를 꼭 보게 된다. 그만큼 그들이 어느 곳에서나 자유로이 활보한다는 뜻이다.
프랑스의 장애인들은 장애 정도에 따라 생활비를 지급받는다. 또 함께 동거하거나 결혼한 배우자가 있다면 금액을 별도로 산정하여 연금을 지급하는데, 100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을 받는다. 또 장애인이 살기 위한 적합한 집을 알아봐주는 별도의 부서가 따로 있으며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에 장애 정도에 맞게 부분 리모델링을 해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차량 지원 등도 당연한 것이다. 물론 외국인 신분으로 입국한 내가 프랑스 장애인과 같은 혜택을 받을 수는 없어 아쉽지만, 외국인인 나 또한 장애인 등록을 할 수 있어 기쁘다. 연금 등은 받을 수 없어도 장애인 등록을 마치고 나면 주변의 도움을 받기에는 더욱 수월해질 것이다.
한국은 외국인 거주자의 장애인 등록에 대해서 아직 논의가 활발하지 않은 실정이다. 장애인들이 장애인으로서의 삶을 보장받고 지키는 것은 그 사람이 외국인이냐 아니냐보다 더욱 우선해야 할 인권의 문제이다. 이러한 외국인 장애인의 신분보장 문제를 한국에서도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모든 것이 낭만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장애인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낭만적인 삶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장애인들이 보장받지 못하는 상당한 것들을 이들은 이미 당연히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학에서 어학연수로 매주 화요일마다 ‘프랑스의 이해’라는 수업을 듣는다. 그 시간마다 매일 같이 듣는 얘기는 1789년 프랑스 혁명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매주 수업 받는다.
과거 제국주의 열강이었던 프랑스가 자국의 국민들만을 대상으로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가르치는 것에 피해갈 수 없는 비난의 지점이 있을지 모른다. 자유와 박애가 있는지, 아직 오랜 시간 머무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프랑스는 인권에 있어서만큼은 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고속버스를 타는 장애인에게 최루액을 쏘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화장을 이용하기 위해 멀리멀리 빙 돌아가야 할 이유도 없다. 장애인으로서 모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고, 모든 생리현상에 대해 기초적으로 지켜져야 할 것들이 잘 갖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우선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시선을 받거나 차별을 받은 적은 아직 없다. 오히려 주변의 많은 분들이 무척 친절하기에, 나 또한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마음을 열고 프랑스를 안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우려들을 잠시 접고, 먼저 프랑스를 안아야 한다. 그래야만 더 잘 알 수 있다. 사회가 장애인에게 열려있는 만큼 장애인 역시 사회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장애인들은 아직 사회로부터 기초적인 환경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이 환대받을 수 있도록, 기초적인 권리가 보장받을 수 있도록, 더 나아가 고등교육까지 장애인 본인이 꿈꾸고 추구하는 바가 있다면 실행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지난 한 달간 프랑스 현지의 많은 장애 대학생들이 정부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니는 것을 보며, 고등교육 진학률 10퍼센트 정도에도 이르지 못하는 한국 장애인들의 생각이 많이 난다. 알아야만 강해지는 사회에서 알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우리의 서글픈 현실이 말이다.
*글= 변재원 작가
변재원 작가는 1993년 10월 30일생으로 생후 10개월에 불의의 의료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있으며, 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주제의 칼럼들을 기고하고 있다. 마주하기 힘든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고, 사회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책임있는 삶을 사는 것이 그의 꿈.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존레논과 아웅산 수지 여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