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띠나게 한바탕 놀고 싶다면 이들처럼
[열정무대] 사물놀이 땀띠
어둑어둑해질 무렵의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무대. 장구, 북, 꽹과리, 징을 든 연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공연이 시작되자 관객들은 신명나는 소리와 흥겨운 가락에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전통 국악기에 젬베, 대나무 등 조금은 생소한 악기까지 곁들여지니 사물놀이가 더욱 업그레이드 된 기분입니다. 완벽한 호흡으로 관객을 매료시키는 모습에서 ‘장애인’이라는 수식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땀띠 나게 열심히 하자’는 의미의 이름과 어울리는 사람들
이 날 공연장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이들은 사물놀이단 ‘땀띠’. 팀 이름은 ‘땀띠나게 열심히 연습하자’는 의미로 붙여졌다고 합니다. 꽹과리를 맡고 있는 이석현 씨(뇌병변장애), 북을 연주하는 고태욱 씨(자폐성장애), 징을 연주하는 조형곤 씨(다운증후군), 장구를 담당하는 박준호 씨(자폐성장애)와 신경환 씨(자폐성장애)가 함께합니다. 2003년에 처음 만나 지금은 20살을 훌쩍 넘긴 성인으로 자랐습니다.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단원들이 한 팀이 된 배경이 궁금했습니다. 한 장애인복지관의 김수진 음악치료사의 제안이 창단의 씨앗이 되었다고 합니다. 음악치료를 목적으로 모인 사물놀이 수업에서 단원들이 두각을 나타내자 아예 팀을 만들어 활동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음악으로 10년간 도전하자 땀띠는 프로로 훌쩍 성장했습니다.
요즘 들어 무대에 설 기회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10월 한 달 동안 잡힌 공연만 여러 개. 완벽한 모습으로 무대에 서기 위해 땀에 흠뻑 젖은 채 연습하는 모습을 보니 ‘땀띠’라는 팀 이름이 잘 어울린다는 걸 확인합니다.
완성을 향해 오늘도 “가자!”
땀띠는 기존 사물놀이의 연주 방식에서 벗어나 늘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통 사물놀이에서 여러 악기를 접목한 퓨전 국악을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만큼 단원들이 다룰 수 있는 악기의 가짓수도 점차 늘어나면서 연주의 영역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 한 단원이 “음, 이제 맞는 것 같아.”라며 서로 쥐고 있는 악기의 음을 맞추자 연주가 시작되었다. 리듬에 맞춰 대나무 타악기를 연주하는 박준호, 신경환, 조형곤 씨와 리코더를 불고 있는 고태욱 씨의 모습(위-왼쪽에서 시계방향). 이석현 씨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연습을 못 나왔다.
<휘모리>는 이석현 씨가 젬베와 공명악기를, 고태욱 씨가 소프라노리코더를, 신경환 씨가 앨토리코더와 공명악기를, 박준호 씨가 클레이드럼과 심벌을, 조형곤 씨가 윈드벨과 쉐이커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해 경쾌한 음색이 돋보이는 곡입니다. <신화>는 구음을 하나의 악기로 곁들여 흙을 구워 만든 죽훈과 피아노 연주가 독특한 곡이고, <공간>은 중국의 호러쓰와 토이, 인도의 쓰루띠박스 등 여러 나라의 악기로 연출하는 화음이 특징입니다. 단원들은 온 몸을 분주히 움직이며 자신의 역할을 소화해냅니다.
월드뮤직그룹 ‘공명’의 소속으로서 작년부터 땀띠를 지도하고 있는 송경근 선생님은 “서로 호흡이 척척 맞아서 점차 완성해가는 단계에 있어요. 지루할 수도 있는 과정인데도 잘해주고 있어요.”라며 흐뭇해했습니다. 새로운 시도는 도전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앨범 발매와 전 공연 매진 ‘땀띠 날다’
2012년에 첫 앨범을 발매한 땀띠. 앨범에는 송경근 선생님이 소속된 월드뮤직그룹 ‘공명’이 직접 만들어준 창작곡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고태욱 씨는 “새로운 곡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좋았어요.”라고 첫 앨범의 소감을 밝혔습니다. 함께 땀을 흘리며 노력한 결실이라는 생각에 앨범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지난 8월, 땀띠는 창단 11주년 기념공연을 펼쳤습니다. 곡 전체를 완전히 소화할 수 있을 때까지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되풀이해서 들으며 연습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았는지 일주일간의 공연 전회가 매진되었습니다. 비장애인 연주자에게도 버거운 한 시간 반 동안의 공연에서 기량을 맘껏 발휘해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합니다.
꿈? 사물놀이로 더 좋은 공연을 하는 것!
수년간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무엇이었을까? 신경환 씨는 일본 게다이아트스페셜에서 관현악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박준호 씨는 얼마 전에 참가한 경복궁 걷기대회 공연을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조형곤 씨는 대학로 장애인문화예술축제 공연을 이야기하며 11월 제주도 공연도 기대된다고 덧붙였습니다. 함께 섰던 무대를 떠올리는 단원들의 두 눈이 반짝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땀띠 옆을 든든히 지켜주는 매니저인 어머니들은 어느새 청년이 되어버린 아이들에게 바랍니다. 하고 싶은 음악을 계속 해 음악성을 인정받기를, 그래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요. 단원들에게 꿈을 묻자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사물놀이를 앞으로도 열심히 해서 더 좋은 공연을 하고 싶어요.”
한 곡을 연습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연주의 완성을 향해 노력한다는 땀띠. 그래서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조금은 더디더라도 멈추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석현 씨는 앨범을 통해 “이젠 사람들이 묻는다. 땀띠는 어디까지 갈 수 있겠느냐고. 하지만 우린 답한다. 성장에 끝이 어디 있겠느냐고.”라고 밝혔습니다. 이들에게서 ‘이 정도면 됐다.’라는 말을 듣게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대신 ‘오늘도 한바탕 놀아볼까.’라며 신명나는 장단으로 계속해서 우리를 이끌 것입니다.
*글, 사진= 정담빈 간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