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로 돌아가겠다는 꿈이 현실로
[독일 장애인 시설을 둘러보다] 8편 베루프스 게노센샤프트 운팔클리닉 무르나우
베루프스 게노센샤프트 운팔클리닉 무르나우(BGU Murnau, Berufsgenossenschaftilche Unfallklinik Murnau) 산재재활병원을 찾았다. 뮌헨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약 73Km 떨어진 무르나우에 위치한 곳이다. 남쪽으로 만년설이 뒤덮힌 알프스 산맥의 웅대한 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마치 우리나라의 휴양지 콘도로 여행을 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좋은 위치에 재활병원이 있다는 점이 내심 부러웠다.
무르나우 산재재활병원은 약 60년 전 2차 세계대전 이후 상의군경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으로 건립되었다. 현재는 산재 사고와 뇌손상, 신경정신과 영역에 집중하고 수술 후 재활치료까지 병행할 수 있도록 한다. 전체 600병상 가운데 400병상은 사고로 입원한 환자를 위해 마련됐다.
관계자에 따르면 1년에 1만 7천여 건의 수술을 하고 연간 50만 명의 환자를 치료하는 독일남부에서 최고의 산재 재활병원이라고 한다. 특히 무르나우 지역 인구 1만 2천 명 중에서 약 1천 8백명이 근무하고 있어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환자 중심의 의료적 서비스
몇 가지 중요한 의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점이 특징이다. 첫 번째는 병원을 중심으로 반경 150km내의 응급환자 이송과 진료, 수술까지 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응급의학과이다. 헬기장, 구급차, 응급실, 중환자실까지의 동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어 헬기장에서 환자가 내리면 바로 응급실로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또 불시에 발생할 수 있는 응급환자를 위해 수술실 12개 중에서 2개는 항상 비워둔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에는 약 120여 명의 간호사가 50여 명의 환자를 치료하고 보살피고 있었다.
두 번째는 환자를 위해 최신 장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눈에 띈 장비 중 하나는 ‘HBO’라는 전문치료장비였다. 수술 후 마취에서 회복된 환자부터 절단 수술을 받은 환자, 척추손상, 과다출혈, 전신화상을 입은 환자를 격리해서 치료할 수 있다. 장비가격만 1500만 유로(한화로 약 208억 원)로 가격만큼이나 효과 또한 매우 우수하다고 한다.
세 번째는 재활치료가 전문적이고 통합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재활치료 치료사만 약 140여 명. 물리치료와 작업치료, 마사지, 스포츠 활동 등 다양한 영역을 담당한다. 특히 환자가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회사와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복귀했을 때 어떤 재활치료가 필요한지를 고민하고 일상활동을 감안해 치료의 목표를 세운다.
환자들이 원하는 재활치료, 의사들이 찾아 제공한다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하지 않는 치료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진흙팩, 에어로빅, 요가, 아로마테라피, 하이드로젠마사지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독일의 다른 병원에서는 보지 못한 한방클리닉까지 있었다. 한방클리닉 자격을 이수한 전문 의사가 치료를 담당한다. 모든 서비스가 환자의 요구에 의해서 마련되고 치료비는 보험에서 지원해주니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다.
무르나우 산재재활병원에서 이뤄지는 모든 의학적인 접근은 의사들이 담당한다. 보험을 처리하고 금액을 책정하는 등의 과정을 의사와 보험사가 협의해서 진행한다. 재활치료라 정의된 영역뿐만 아니라 보험이 적용되는 범위가 매우 제한적인 우리나라의 병원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 여기서는 모두 이뤄지고 있었다.
전문화된 원스톱(One-stop) 서비스
재활치료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24시간 대기하는 전문의료진이 맡는다. 치료사는 매일 오전 환자별 재활치료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 따라 영역별로 투입되어 치료를 진행한다. 모든 과정은 전산시스템에 의해 관리되고 운영된다.
재활병동 내에는 보조기구 제작회사가 입점해 있어 환자들이 손쉽게 보조기기 제품에 대한 정보를 얻고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심지어 BMW 차량을 비치해서 환자가 운전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고 재활의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 독일의 보행환경과 지면환경을 그대로 구현해 재활에 큰 도움을 준다.
작업치료실에서는 환자가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일상생활과 아주 밀접한 환경을 갖춰놓고 직업재활과 치료가 진행된다. 지붕의 기와 설치를 연습할 수 있는 공간, 목공을 하고 벽돌과 타일 등을 붙일 수 있는 환경, 우편물을 분류하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환경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물리치료는 신체구조에 따라 전문화된 재활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손 치료(Hand Therapy)와 발 치료(Foot Therapy)로 구분해 운영된다. 특히, 손은 사람의 신체기능 중 일상생활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는 만큼 전문재활치료사와 치료시설을 따로 둔다. 스포츠 운동실에는 스포츠 전문가가 환자별로 맞춰 기계를 조율해 운동치료를 진행한다.
환자가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최선을 다하는 곳
무르나우 산재재활병원은 산업재해와 관련된 재활을 전문으로 한다는 것을 통계수치로 보여준다. 병원을 통해 이전 직장으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분야에 취업하는 등 일터로 복귀하는 비율이 약 60%~70%에 이른다. 환자는 수술과 입원 그리고 재활치료까지 약 1년 이상의 꾸준한 의료서비스를 받으며 사회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을 아우르다
무르나우 산재재활병원은 트라우마센터(Murnau Trauma Center)를 운영한다. 협진을 통해 외상 후 스트레스에 대한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고 회복을 돕고 있다. 게다가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도 정신과적 치료서비스가 이뤄진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세월호 참사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고 당사자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 가족에 대해서 함께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는 요구에 따라 안산에 트라우마센터가 생기기도 했다.
문제는 임시방편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언론에서는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등의 큰 사고가 있을 터질 때마다 피해자에게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설치됐다가 사라지는 한시적인 서비스에 그치기 일쑤고 그조차도 사고 당사자에 대해서만 치료가 진행됐다. 정신과적 치료는 고통을 함께하는 가족에게까지 제공되어야만 당사자에 대한 치료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한다. 병원에서 상시적으로 운영하는 게 필요하다.
장애인의 성공적인 재활을 위해서는 신체적 재활뿐만 아니라 정신과적 재활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 무르나우 산재재활병원에서처럼 환자 옆을 지키는 가족에게도 정신과적 치료를 지원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병원이 많아지길 바래본다.
<독일 연수를 마치며>
독일이 장애인 복지 천국인 이유
일주일 동안의 독일 연수 동안 다양한 장애인 기관을 방문했다. 어린이재활병원과 일반재활병원 그리고 산재병원, 장애인직업재활시설과 생활시설, 직업전문학교, 바이에른 주정부 사회복지국까지. 지리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고 치료와 교육, 직업재활에 이르는 다양한 서비스를 조기에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정책적 환경을 두루 살펴봤다. 왜 ‘장애인 복지 천국’이라고 하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생애주기별 맞춤식 복지를 펼치는 독일
독일에서는 아이에게서 장애가 발견되면 재활의학과 의사는 물론이고 사회복지사와 각 영역의 치료사가 함께 논의한다. 부모는 자녀의 성장에 필요한 치료, 교육, 직업재활에 이르기까지 전문가와 정기적으로 목표를 설정해나간다. 우리나라는 최근에서야 장애아가족지원센터와 관련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 거점기관들을 설립하는 등 걸음마 수준이다.
병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은 집 근처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보험회사에서 고가의 의료재활기기를 구입해 장애인이 생활하는 곳에 제공하기 때문이다. 필요한 서비스를 장애인과 가족이 일일이 찾아 헤매야 하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환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장애인직업재활시설에서는 발달장애인을 보호의 개념보다는 직업인으로서 생활할 수 있도록 장애정도에 따라 지원한다. 장애인이 생산한 상품은 일반 시장에서 품질로 경쟁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다.
중도장애인에 대한 재활치료는 더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예방적인 성격이 강하다. 연금보험회사는 독일의 전 지역에 재활병원을 건립해 양질의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판단에서다. 산재전문병원은 환자가 일터로 복귀하는 목표를 최우선으로 삼고 직업재활 중심으로 치료와 서비스를 한다.
부모에게 장애자녀를 키우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경제적 부담을 지우지 않는 독일. 양육에 대한 부담을 전가할 때 가족 전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지원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이유이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장애인과 가족이 만족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출 수 있을까?
장애인 복지의 세계적인 흐름을 고민하고 앞장서야
장애인공동체 마을인 프란치스쿠스베르크 쉔브룬에서는 UN장애인권리협약을 실천하기 위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통합될 수 있도록 비장애인도 입주해 생활한다. 장애인은 일자리를 제공받아 생활할 수 있다.
바이에른 주정부의 사회복지국에서는 UN장애인권리협약 비준을 기점으로 ‘사회통합 실태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독일사회에 맞는 사회통합정책을 수립해나간다는 계획이다. 가장 취약한 부분이 장애인식개선이라고 한다. 주정부에서는 사회통합을 위해서 제일 먼저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 장애인식개선이라는 생각으로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UN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한 나라이다. 오는 9월 UN장애인권리협약 이행 심의를 앞두고 있다. 이를 위해 2011년 국가보고서가 제출된 상태이다. 하지만 장애계에서는 정부가 장애인의 실질적인 필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착잡한 마음이 드는 한편 지금 서있는 자리에서 무엇을 바꿔나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글, 사진= 고재춘 실장 (푸르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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