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생활도 장애인의 선택으로 ‘맞춤형’

[독일 장애인 시설을 둘러보다] 3편 도미니쿠스 링아이젠 베르크 브라이트브룬




▲ 아머 호수(Ammer See)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자리에 위치한

도미니쿠스 링아이젠 브라이트브룬 (사진출처 : Goolge 지도)


도미니쿠스 링아이젠 베르크 브라이트브룬(Dominikus-Ringeisen-Werk Breitbrunn)은 뮌헨 중심에서 약 40km 떨어진 작고 조용한 시골 브라이트브룬에 자리한 성인장애인생활시설이다. 많은 독일인들의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는 아머 호수(Ammer See)를 끼고 있어 전망이 매우 좋다.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이렇게 전망 좋은 휴양지에 장애인생활시설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도미니쿠스 링아이젠 베르크 총책임자인 레지나 헤르만(Regina Hermans)


숙소에서 40여 분을 차로 달려 도미니쿠스 링아이젠 베르크에 도착하자 반가운 분을 만날 수 있었다. 도미니쿠스 링아이젠 베르크 울스버그(Ursberg) 지역 총책임자인 레지나 헤르만(Regina Hermans)씨였다. 전 날 방문했던 도미니쿠스 링아이젠 베르크 마이작(Dominikus-Ringeisen-Werk Maisach)도 레지나 씨가 관리하는 시설이다. 어제에 이어 만나게 된 우리는 서로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레지나 씨는 도미니쿠스 링아이젠 베르크가 어떻게 생겨났고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독일 장애인 정책의 방향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한 신부의 작은 생각이 지역사회를 바꾸다


▲ 도미니쿠스 링아이젠

신부 (1835~1904)


도미니쿠스는 1884년 도미니쿠스 링아이젠(Dominikus Ringeisen) 신부가 독일 바이에른주 울스버그에 있는 허름한 수도원을 구입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최초의 교육기관을 설립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에 울스버그는 장애인들이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마을로 성장하게 되었고, 지역에 있는 귀족과 지역주민들의 기부로 장애인시설이 하나둘씩 설립되었다. 장애인공동체마을을 비롯해서 특수학교, 재활치료시설, 장애인생활시설, 직업재활시설, 공동생활가정 등 약 30여 개의 장애인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바이에른주의 대표적인 장애인전문 가톨릭재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현재는 수녀회에서 운영을 맡고 있다.


▲ 울스버그의 장애인공동체마을 전경 (사진출처 : Goolge 지도)


우리가 방문한 도미니쿠스 링아이젠 베르크 브라이트브룬은 브라이트브룬에 살며 장애 자녀를 둔 한 유지가 아이를 계속해서 돌봐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사유지를 수녀회에 기증하면서 탄생한 곳이다. 생존해 있는 동안 다른 지역에서 큰 농장을 운영하면서 브라이트브룬 시설을 재정적으로 계속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참여를 소중히 생각하다


▲ 브라이트브룬 지역에 전 재산을 기부한 부부


성인장애인생활시설인 도미니쿠스 링아이젠 베르크 브라이트브룬에는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를 가진 장애인 109명이 생활하고 있다. 최근에는 교통사고 등으로 뇌손상을 입은 중증장애인들도 이용하고 있다.


이 중 39명은 외부활동(직업활동)을 하는 사람과는 달리 낮에만 이용하고 저녁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특히, 뮌헨 시내에 있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공동생활가정에서 거주하면서 직업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장애정도와 유형 그리고 직업 등에 따라 8개 그룹으로 나뉜 성인장애인들은 각각의 파트에 맞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장애인을 위한 배려를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 장애인들이 자기 물건을 찾거나 놓아둘 때 이해하기 쉽게 사진을 붙여놓았다.


장애인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비록 속도가 느리더라도 작업을 분할하고 서로 협동해서 일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는 브라이트브룬 시설만의 원칙이 느껴졌다.




▲ 하나의 장식품이 완성되기까지 어떤 작업 과정을 거치는지 한 눈에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샘플




▲ 물고기 장식 완성품


마침 물고기 장식품을 만드는 작업을 살펴보게 되었다. 나무를 묶는 사람, 실을 꼬는 사람, 실을 나무에 엮는 사람 등 5개의 작업으로 분할해서 장애인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하고 있었다. 중증장애인들이 오랫동안 집중해서 한 가지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물고기 장식뿐만 아니라 열쇠고리나 불을 집힐 수 있는 불쏘시개 등도 만들고 있었는데 이 모든 작업을 최대한 세분화하고 단순화해서 진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모든 장애인들이 함께 작업에 동참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완성된 장식품은 도미니쿠스에서 주최하는 바자회 등을 통해 판매되고 있으며, 수익금은 시설운영 등에 사용된다고 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직원, 1대1로 함께하다


장애인 109명 중에 비장애인 직원이 97명이었다. 거의 1대1로 케어서비스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주정부와 지방정부에서 직원들의 인건비를 지원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주간 이용자와 직장생활을 하는 장애인을 제외해도 86명 정도인데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시설을 운영할 때 인건비가 가장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레지나 씨. 또 장애인의 특성에 맞는 배려와 야간근무 등을 고려하면 비장애인 직원들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인건비는 국가에서 부담하고 장애인들의 체류 비용 또한 국가와 연금보험에서 부담한다.”라면서 장애인을 한 명씩 지원하는 원칙을 지켜나가고 있다.


이쯤해서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다. 탈시설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탈시설화는 중요하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본인 의사에 따라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활동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증장애인들 중 일부는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다. 24시간 동안 케어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탈시설화를 하는 게 바람직하진 않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는 생활시설과 공동생활가정을 병행해서 운영하고 있다.”


레지나 씨의 의견은 장애인 탈시설화를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시각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비장애인 직원이 무려 97명에 달하지만 위급한 상황을 대비해 복도마다 설치된 비상벨시각화 장치


복도에는 시각화가 가능한 비상벨이 설치되어 있었다. 1인 1실로 구성되어 있는 장애인들의 방 내부까지 모두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위급한 상황이 되면 비상벨을 누르면 된다. 비상벨을 잘 누를 수 있도록 철저한 교육이 뒷받침된다. 복도를 지나는 비장애인 직원이 눈으로 확인을 하고 바로 찾아 갈 수 있도록 도입된 시스템인 것이다. 물론 시설의 모든 시스템은 행정사무실에서 한 눈에 다 볼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다.




▲ 중증장애인을 위한 목욕보조기기


목욕보조기기는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 직원과 자원봉사자를 위해 설치되었다. 직원과 자원봉사자가 장애인을 손쉽게 목욕할 수 있도록 돕는다. 힘든 서비스로 이직을 하거나 자원봉사를 단절시키는 것보다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1인 1실 자기만의 방이 있어 사생활이 우선되는 곳


장애인은 중증이건 경증이건 간에 사생활이 보장되어야 하므로 자기만의 방을 갖고 있었다. 1인 1실에 장애인 본인이 원하는 형태로 꾸며놓고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말그대로 원룸이었다. 한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은 자기 방에 아기자기한 생활소품들을 직접 구매해서 들였다고 한다.


“장애인의 인권이 소중하기 때문에 1인 1실을 갖춰서 장애인의 사생활을 최대한 존중하고 보장하는 시설로 갖추고 싶다.”라고 레지나 씨가 설명했다.


수요자 중심의 재활서비스를 실천하고 있는 독일


또 하나 놀라웠던 것은 단 1명을 위해 비싼 의료기기를 생활시설에 갖춰놓고 재활치료를 한다는 점이었다. 재활의학과 의사가 재활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리면 단 1명에게만 필요하더라도 의료기기를 보험에서 지원해줘야 할 뿐만 아니라 모든 비용은 보험에서 처리한다.


우리나라는 생활시설에서 치료기기나 도구를 직접 구입해서 치료를 해야 한다. 독일과 한국의 의료 서비스에 큰 차이가 있음을 실감한다. 주목하고 싶은 또 한 가지는 어디에서 치료를 받든지 재활의학과 의사의 진단만 있으면 어떠한 장소에서 재활치료를 받더라도 보험처리가 된다고 점이다. 치료 시에 필요한 재활치료기기 또는 보조기기는 보험회사에서 대여를 해주거나 대여할 경우 비용을 보험사에서 부담하는 방식이다.




▲ 생활시설에 거주하는 단 1명의 장애인을 위해 마련된 재활치료기기


이번 방문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서비스가 작은 배려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느꼈다. 또 장애인 스스로의 의견이 반영된 사업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국가의 정책적인 기조가 반드시 우선되어야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장애어린이 가족들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걱정한다. 학교를 졸업해 복지관의 직업재활시설이나 주간보호시설을 이용하다가 40세 이상이 되면 집에서 있어야 하는 한국. 반면에 독일에서는 장애인이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국가가 책임지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물론 가족이 알아야 할 정보와 의료적, 사회교육적 서비스 그리고 성인이 된 장애인에 대한 대안을 포함해 가족이 부담해야 할 경제적인 부담을 해소하기 위한 우리사회의 준비는 아직 부족하다.


독일 연수 동안에 통역과 안내를 담당한 분의 자녀도 장애가 있다고 했다. 통역을 도와준 그 분의 아내는 장애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이 별로 할 게 없다고 말했다. 아이에게는 학교와 병원, 재활치료기관에서 서비스를 지원해 정기적으로 관리해 주고 있고, 가족에게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계속 알려준다. 정책적인 서비스가 어떤 것이 있는지까지도 세부적이고 주기적으로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모든 과정은 장애어린이 부모와 함께 의논하고 계획을 세워서 진행한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정책과 서비스가 우선될 때 장애어린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국가와 국민이 서로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분의 이야기에 푸르메재단이 마포에 짓고 있는 어린이재활병원을 그려본다. 어린이재활병원의 역할이 단순히 의료적 재활에만 중심을 두지 않았으면 한다. 성장기에 이뤄질 수 있는 다양한 접근의 치료와 교육 등의 서비스가 장애어린이의 성인기를 준비하는 하나의 과정이 되도록 가족과 지역사회, 전문가와 함께 고민해 나가야겠다.


*글, 사진= 고재춘 실장 (푸르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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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  www.dominikus-ringeisen-werk.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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