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씨이야기] 무작정 따라 걷기

버킷 리스트(bucket list)까지는 아니지만 예전부터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직장에서 집까지 무작정 따라 걷기. 날 풀리면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이제야 실행에 옮깁니다.


사전 작업으로 초록색 검색 사이트의 도보로 길 찾기에서 경로를 확인합니다. 경로가 복잡하거나 생소하지는 않지만 방향감각과 길눈이 심각하게 어두운 저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입니다.


 출발은 재단에서부터 도착은 녹번역입니다. ‘추천’, ‘큰길 우선’, ‘계단 우선’의 선택사항 중 추천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길 찾기. 총거리 5.44㎞, 소요시간 1시간 22분.


주요 경로는 ① 자하문터널, ② 상명대학교(세검정삼거리), ③ 서울여자간호대학, ④ 실락어린이공원, ⑤ 산골고개, ⑥ 녹번역입니다.


퇴근 후 오후 6시 40분에 출발합니다. 주제가 있는 무작정 따라 걷기. 이번 주제는 맛있을 것 같은 커피가게 바깥 구경하기입니다. 사실 커피 맛은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커피 향은 좋아 합니다.


 신교소방서에서 세검정까지

신교소방서를 바로 지나 청운초등학교를 지나 주한브르나이대사관도 지나 자하문터널에 도착합니다. 퇴근시간인데도 터널 안이 무척 한적합니다. 터널 끝이 보입니다. 그리고 높은 계단도 보입니다. 계단을 올라 걷습니다. 서울미술관이 보입니다. 그리고 AW컨벤션센터를 지납니다. 안쪽에는 중식당으로 유명한 하림각이 있습니다.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한 번도 가서 먹어 본 적은 없습니다.



▲ 서울미술관 (왼쪽 출처: blog.naver.com/gghk2003/60176043559)

AW컨벤션센터 (오른쪽 출처: blog.naver.com/jinni4658/20122059223)


좀 더 걸으니 상명대학교가 보입니다. 상명대학교는 1996년에 여자대학교에서 남녀공학대학교로 바뀌었습니다. 그 해 대입을 앞둔 남자 고등학생들에게 높은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아느냐 하면 사실 저도 그 중에 하나였습니다.


원서 접수날, 선배가 되었을 수도 있을 누군가가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끊여준 커피 맛이 가끔 생각납니다. 그렇지만 그 학교를 입학하거나 졸업하지는 않았습니다.


상명대학교 앞, 세검정은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4호로 홍제천 일대의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지은 정자라고 합니다. 세검정이라는 이름은 칼을 씻고 평화를 기원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이 일대가 서울의 북방 관문으로써 중요성이 커지면서 무신들의 휴식처로 자주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 세검정 (출처: blog.naver.com/ramsid2/60165342746)


이제 세검정 삼거리에서 서울여자간호대, 홍은 사거리 방면으로 좌회전을 합니다. 이 곳이 1/3 지점쯤 되는 것 같습니다. 건너편에는 홍지문(弘智門)이 보입니다. 홍지문은 1719년(숙종 45)에 쌓은 것으로 한양의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여 세운 성입니다. 성의 명칭은 연산군 때 세검정 동편 봉우리에 탕춘대를 쌓고 연회를 베풀었던 것에서 유래했는데, 홍지문은 한북문(漢北門)으로도 불렀다고 합니다.



▲ 홍지문 및 탕춘대성 (출처: blog.naver.com/uifood/120159869625)


그리고 홍제천도 보입니다. 북한산(北漢山)의 문수봉, 보현봉, 형제봉에서 발원해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대문구, 마포구 3개 구, 15개 동에 걸쳐 흐르다가 한강의 하류로 흘러드는 지방 2급 하천입니다. 조선시대에 이 하천 연안에 중국의 사신이나 관리가 묵어가던 홍제원(弘濟院)이 있었던 까닭으로 '홍제원천'이라고도 하며, 하천 본류에 모래가 많이 쌓여 물이 늘 모래 밑으로 스며들어 흘렀던 까닭에 일명 ‘모래내’ 또는 ‘사천(沙川)’으로도 불렸다고 합니다.


종로구를 벗어나 서대문으로

조금 더 걸으니 ‘인왕산 등산로’가 보이고, 건너편으로 ‘여기서부터는 서대문입니다’라는 입간판이 보입니다. 이제 종로구를 벗어납니다.


서대문구은 익숙한 곳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부터 결혼 전까지 약 14년을 산 곳입니다. 위로는 내부순환도로가 눈에 들어옵니다. 1998년쯤 완공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예전 서대문구에 살 때는 가까운 지하철역을 이용할 때는 주로 홍제역까지 버스로 이동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홍은 사거리를 지나야 했는데 이 구간을 지날 때만 15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전체 이동시간의 절반이었습니다. 홍은 고가와 내부순환도로가 만나고, 유진상가가 접해있는 홍은 사거리를 지나기 위해서 50,400분(15분×20일×12월×14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은 홍은 고가도 없어지고 버스중앙차로도 생겨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을 것 같습니다.


새검정 유원아파트를 지나 반대편으로 길을 건너 걷습니다. 길옆에 조그만 일방통행 길을 지납니다. 그리고 서울여자간호대학교 방면으로 우회전합니다. 서울간호전문대학교 정문을 지나 휴대폰할인마트 홍제점 앞에서 좌회전합니다. 현대식의 아담한 홍은동성당을 지나 홍은벽산아파트 정문을 지납니다. 여기서부터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사실 계속해서 걸어도 홍은 사거리가 나오지만 출력해 간 지도상의 경로는 홍은벽산아파트 후문을 경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경로가 흐트러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돌아갈까 하다가 가던 길을 그대로 갑니다. 차도에서 한 블록 안쪽으로 조그만 골목길을 걷습니다.


커피향에 머무는 발걸음


제가 좋아하는 간단한 음식과 음료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합니다. 오천냥마차(밖에 내걸린 메뉴판에 안주 가격은 만원 내외), 춘천닭갈비집, 부드러운 치킨집, 다시와 식당, 정읍 홍어집, 실내포장마차. 동네 장사지만 제법 사람들이 붐빕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는 이런 가게가 많지 않아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아, 잠시 주제를 잊고 걷기만 했지만 원래 주제로 삼았던 괜찮은 커피가게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지금껏 걸으면서 서너 개의 커피가게를 지났지만 제 눈을 사로잡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게는 이름부터 묘한 향기를 풍깁니다. 앞을 지나려는데 가게 이름을 확인시켜주려는 듯 김 여사로 보이는 분이 나옵니다. 암튼 나중에 이곳에는 한번 다시 들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커피볶는 김여사 (출처: blog.naver.com/dustn19904/80201787922)


오래된 정취가 살아있는 산골고개

이제 종착역에 거의 다다릅니다. 홍은 사거리에서 우회전 합니다. 예식장의 존재를 전혀 확인할 수 없는 (구)미미예식장 정류장을 지납니다. 보도를 걷는 오른편은 홍은주택12구역 재개발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이어서 산골고개 정상에 오릅니다.


길이 좋아 지금은 편히 걷지만 옛 조선시대였다면 아마 산을 두세 번은 오르고 내리지 않았을까 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서대문구’라는 입간판이 보입니다. 제가 드디어 종로구, 서대문구, 은평구 3개구를 넘나들었습니다.


산골고개는 예로부터 이곳에서 산골이 출토되어 산골고개 또는 녹번고개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산골은 푸른빛의 광물질로 골절되었을 때 먹으면 잘 붙는다고 전해집니다. 전에는 외지고 으슥한 깊은 산 속 고개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산골이라는 광물이 있고 현재도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녹번(碌磻)이라는 지명은 녹번이고개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이곳에서 홍제동으로 가려면 이 고개를 넘게 되는데, 이 고개에서 약용으로 쓰이는 자연동(自然銅)인 ‘산골(山骨)’이 나오므로 녹반현(綠礬峴)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녹반현은 변음되어 녹번이고개로 칭하게 되었는데 이 고개가 워낙 높고 험한데다가 숲이 우거져서 혼자 넘어 다니기를 꺼렸다고 합니다.



▲ 산골고개 표석 (출처: chosunbiz.com)


이제 녹번역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은평소방서가 보입니다. 은평소방서 옆으로 얼마 전 문을 연 착한 상품과 착한 소비의 만남, 사회적기업 복합매장 은평점(Store 36.5)이 보입니다.


은평점을 출발해 소방서에 도착했습니다. 핸드폰 시계를 확인하니 8시가 조금 못된 시간입니다. 소요시간과 거의 일치했습니다. 쌀쌀한 바람이 부는 날씨였지만 등짝은 척척합니다.


무작정 따라 걷기는 계속 됩니다

운동 부족을 다리의 뻐근함과 가쁜 숨의 헐떡거림으로 느끼며 오늘의 무작정 따라 걷기의 여정을 마칩니다. 은평구에 거주하는 푸르메 직원이 몇몇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몇몇은 제법 여러 차례 걷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무작정 따라 걷기 초보는 다음에는 다른 코스로 다른 주제를 가지고 무작정 따라 걸어 볼까 합니다.


- 11월 어느 날 무작정 따라 걷기 초보 올림



사진은 길을 걸으며 찍으려고 했지만 2011년 태생에 이제는 구식이 되어버린 핸드폰의 성능의 한계와 배터리의 한계로 몇 컷 찍다 못 찍게 되어 초록색 검색 사이트의 힘을 빌렸음을 고백합니다.



*글= 기영남 팀장 (나눔사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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