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마을 푸르메센터의 아침을 여는 참 일꾼

[네버엔딩 인터뷰] 두 번째 인터뷰... 종로장애인복지관 김이선 씨



“에이~ 그냥 다른 사람하세요. 제가 말을 못해서 인터뷰 못해요.”


네버엔딩 인터뷰의 두 번째 주자로 선정되었음을 알리자 김이선 선생님이 손사래를 친다. 웹진을 통해 송재용 본부장의 추천을 보지 않았냐고 묻자 오히려 “컴맹이라서 그런 거 몰랐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온종일 청소 카트를 밀며 푸르메센터의 환경미화를 담당하는 그녀에게 약간의 여유도 없어 보였다. 며칠을 기다려 딱 30분만 인터뷰해 달라고 부탁 끝에 겨우 그녀를 테이블에 앉힐 수 있었다. 소심해 보였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여고생보다 더 활발하게 대답하는 그녀와의 즐거운 대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Q1. 김이선 선생님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1. 네, 안녕하세요~ 저는 푸르메센터에서 환경미화를 담당하고 있는 김이선이라고 합니다.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네요. 저는 서울 종암동에 살고 있습니다. 고향은 경상북도 의성입니다. 저만 바라보는 남편과 요리사가 직업인 아들과 재미있게 살고 있습니다. 딸은 얼마 전 결혼하여 출가했습니다.


Q2. 젊어 보이시는데 벌써 딸을 시집보내셨습니까?

A2. 아...하하하, 제가 결혼을 일찍 했습니다. 저를 닮아서 그런지 딸도 일찍 결혼한 편입니다.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잘 사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Q3. 본격적으로 질문을 드릴께요. 언제부터 푸르메센터에서 근무하시게 되었나요?

A3. 남편이 의류쪽 사업을 크게 했었습니다. 남편 일을 돕다가 15년 전쯤 사업이 잘 안되고 수술을 할 정도로 몸도 많이 아팠습니다. 갑자기 집에서 쉬게 되니 온몸이 쑤시고 무기력했습니다. 일을 안 하면 집밖에도 안 나가는 성격이라 그런지 대인기피증까지 생겼습니다. 신학기에는 아이들 학교도 찾아가야 하는데 갈 수가 없을 정도로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일을 해야겠다고 맘을 먹고 반대하는 남편을 설득해서 일을 찾다가 식당일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잠깐씩 도와주다가 일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약 2년 전에는 고려대학교 기숙사에서 환경미화 업무를 1년간 했었습니다. 기숙사 계약이 끝나고 쉬고 있는데 푸르메재단 채용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이상하게 끌렸습니다. 가족들에게 말했더니 멀다고 반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냈고 딸의 도움으로 지원을 하고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면접날 심장마비 걸리는 줄 알았어요. 제가 친해지면 말을 잘하지만 처음에는 말을 잘 못하거든요. 저와 같이 푸르메센터 환경미화직에 4명쯤 지원을 했었는데 제가 가장 말도 못하고 이력서도 엉성했을 겁니다. 아마 말을 가장 잘 듣게 생겨서 뽑지 않으셨나 생각됩니다. (하하하) 그날 면접을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벌컹벌컹 뜁니다. 운이 좋아서 작년 여름부터 일하게 되었습니다.


Q4. 제가 일찍 오는 편인데 항상 일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출근은 몇 시에 하시나요?

A4. 4시 50분경에 일어나서 6시까지 푸르메센터로 출근합니다. 3층에서 간단히 운동을 하고 7시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4시경 퇴근하는데 집에 가면 피곤해서 TV 드라마도 못보고 잠이 듭니다.


Q5. 청소뿐 아니라 식당에서도 일하시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특히 장애어린이들 식사를 도와주시는 것을 가끔 보게 되는데 이유가 궁금합니다.

A5. 배식을 도와주는 것은 자율로 하고 있습니다. 누가 시켰다면 안 했을 거에요. (하하하) 장애어린이들이 식사를 하는 것을 보는데 생선 같은 것은 못 먹고 그냥 남기는 게 안타까워서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푸르메센터에서 일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일하러 오는 게 아니라 놀러 온다고 생각해요. 저를 필요로 하는 일도 많고 놀이터에 온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요. 딸도 제 이야기를 듣고 그런 직장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너무 부러워합니다.


Q6. 장애어린이와 친하게 지내시는 것 같은데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A6.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도 장애인분들을 많이 접해본 게 아니라서 처음에는 불편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푸르메센터에서 일하다 보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다르지 않고 절대 다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계속 보니 저도 모르게 이름을 알게 되고 애정이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휴일에 집에 있으면 아이들 얼굴이 생각날 정도로 친해졌습니다. 아이들 모두 소중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다른 이용자분들도 친해져서 저만 보면 귤, 떡, 사탕 등을 챙겨주세요. 매일 주머니가 넉넉해서 감사하고 오히려 제가 사랑을 더 받는 것 같아 죄송할 때가 많습니다.


Q7. ‘근무하면서 이것만은 꼭 지킨다.’라는 것이 있습니까? 또한 다른 분들에게 바라는 점은?

A7. 푸르메센터의 환경미화를 담당하고 있으니 당연히 다른 어떤 시설보다 깨끗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부분도 있을 겁니다. 살짝 말씀해 주시면 바로 개선하겠습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점은 가끔 4층 남자 화장실에서 담배 냄새가 나던데, 화장실 안에서는 꼭 금연을 부탁드립니다.



Q8. 푸르메센터에서 일하면서 좋은 점은?

A8.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일찍부터 친정집에서 어머니 역할을 했습니다. 아빠, 오빠 둘, 남동생까지 남자들 틈에서 어머니 역할이 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맘대로 공부를 못하게 되니 집만 나가고 싶었어요. 어릴 적 꿈은 선생님입니다. 가정환경 때문에 이루지 못해 아쉽지만 푸르메센터에 일하면서 아이들을 매일 만나니 꿈을 조금은 이룬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매일 만나는 일이 좋습니다. 푸르메센터에서 앞으로 10년만 더 일하고 싶습니다. 너무 욕심인가요..? (하하하)


Q9.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음 인터뷰 주자를 선정해 주세요.

A9. 네버엔딩 인터뷰가 2층에서 시작했고 제가 3층이니 다음 주자는 4층으로 올려야겠죠..(하하하) 제가 인터뷰 누구할지 고민하자 3층 가족들이 추천하신 분이 있습니다. 푸르메재단의 통통하신 팀장님입니다. 언제나 서글서글한 웃음에 말씀을 참 잘하시는 것 같은데요.. 바로 푸르메재단 기획사업팀 한상규 팀장이 어떤 분이실지, 무척 궁금합니다.


*글, 사진= 한광수 팀장 (홍보사업팀)


기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