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씨이야기] 그래비티(Gravity)

제가 사는 파주에는 별이 많습니다. 퇴근길에 하늘을 보면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습니다. 서울에 비해 공기가 맑고 도시화가 덜 된 탓에 얻는 보너스입니다. 별들을 볼 때마다 하루 3시간 출퇴근에 투자해야하는 고생에 대한 훌륭한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밭을 태우는 냄새까지 전해지는 날에는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며 평온함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가끔 깜깜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면 우주라는 상상할 수 없이 거대한 공간에 대해 경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땅만 바라보면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게 우주는 소리없이 가르침을 주는 것 같습니다.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태양계는 얼마나 먼지 같이 작은 곳이며 또 지구는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을 만큼 미세한 곳에 불과합니다. 그 안에 70억 인구 중 한 명으로 살고 있는 내 자신은 우주의 계산법으로는 존재를 부정해도 될 만큼 미비한 존재입니다.


 


 영화 한 편을 보았습니다. 그래비티(Gravity). 우리말로 해석해면 ‘중력’이라는 뜻입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에어리언 같은 괴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혜성이 충돌하는 장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재미와 공포가 상당합니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이라곤 고작 주인공 2명이 전부이지만 우주라는 배경이 주는 감동이 대단합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영화를 어떻게 전개시킬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우주라는 끝없는 공간에 달랑 사람 2명이라... 감독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라고 우려가 앞섰습니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오히려 “그런 걱정해서 고맙구나” 라고 비웃듯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구로부터 600Km 떨어진 우주.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는 임무를 가지고 세 명의 대원이 우주복을 입은 채 작업에 몰입하고 있습니다. 그 앞에 펼쳐진 지구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밤 시간대의 대륙은 도시의 불빛으로 아름답고 낮 시간대의 바다는 파란 빛깔을 뽐내며 축복받은 행성임을 말해줍니다. 마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서 경이롭습니다. 지구의 반대편은 깜깜한 우주입니다. 태양이 없다면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어둠. 소리도 산소도 없고 영하 120도의 기온, 그것은 공포입니다. 지구에서의 추억을 화제로 삼으며 농담을 하던 대원들에게 주의 지령이 날아옵니다. 러시아 위성이 파괴되어 파편이 곧 날아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허둥지둥 모선으로 복귀하려고 하지만 주인공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는 우주로 떠내려가게 되고 우주 미아가 될 위기에 처합니다.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기분. 그것은 인간이 지구에서나 느낄 수 있는 고통입니다. 360도 몸이 회전하며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우주를 떠도는 주인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지구에서 느끼는 공포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더욱이 산소의 게이지가 점점 떨어져 10%도 남지 않았다면... 인간에게 우주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공간이지 영화는 계속 보여줍니다. 중력 없이 둥둥 떠다니는 인간은 먼지보다 나약해 보입니다.



스톤 박사는 우여곡절 끝에 우주정거장에 도착하고 지구로 귀환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남겨진 우주선은 고장입니다. 주인공이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을 때 언어를 알 수 없는 지구인의 음성을 듣습니다. 개가 짖고 아기가 우는, 알 수 없는 주파수를 통해 희미하게 전달된 소리를 벗 삼아 지구에서의 추억을 떠올립니다. 이제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 낙담했던 주인공이 아름다운 지구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힘을 냅니다.


정호승 선생님이 쓴 산문집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를 읽으면 첫 칼럼에 ‘가끔 우주의 크기를 생각해보세요’라는 글이 나옵니다. 요약하자면 우주의 거대함 앞에 인간은 나약하고 미비한 존재이니 사소한 일들에 낙담이나 좌절하지 말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자는 내용입니다. 우주의 크기를 체험한 우주인들이 지구로 돌아와서는 환경주의자나 생태주의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위대함 앞에 인간의 인생은 얼마나 사소하고 위태로운 존재인지 알게 되니 자연히 그렇게 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사람이 몇 명쯤 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대화를 나눈 정도의 사람이 많아야 만 명을 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미워하고 불신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개인 모두가 분명 소중한 존재이지만 한편으로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일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우주를 품을 수 있는 마음이 있다고 하는데 너무 현실만 바라보며 중력에만 의지하다보면 잃는 것이 너무 많을 것 같습니다.


출퇴근길 별들을 보며, 그래비티라는 영화를 보며, 또 정호승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느낀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백 년도 못살면서 천 년의 근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가을. 그래서 영화 그래비티를 추천합니다.


*글= 한광수 팀장 (홍보사업팀)


*사진 출처= 영화 그래비티 공식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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