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라 할아버지의 진심
[구텐백의 길] 70년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고통을 껴안았던 청계천 빈민의 성자. 50여 차례 한국을 방문하며 찍어 두었던 서울 사진 800여 점을 조건 없이 기증한 기록의 대가.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일본인. 예수는 다름아닌 가난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낮은 곳을 향하던 목사. 노무라 모토유키. 우리는 그를 노무라 할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푸르메재단과의 오랜 인연
노무라 할아버지와 푸르메재단 백경학 상임이사 ‘구텐백’의 인연은 특별합니다. 국적과 연령을 초월한 오래된 인연입니다.
할아버지는 2009년 아동문학가 임정진 선생님의 소개로 재활치료가 필요한 장애어린이를 치료하고 지원하는 푸르메재단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텐백은 처음 재단을 방문했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낡고 큼지막한 카메라를 목에 맨 채 장애어린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던 할아버지의 모습. 매년 한국에 올 때마다 그 어머니의 손에 자신의 여비를 쥐어주곤 합니다.
할아버지는 매년 재단을 방문합니다. 그의 관심의 촉이 늘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향해 있었기 때문에 장애어린이를 위하는 마음 또한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휴가를 내면서까지 봉사를 잊지 않는 아들 마코토 씨와 며느리 미나 씨와 함께 말입니다. 그는 잊을 만하면 생활비를 아껴서 모은 돈이 든 봉투와 저금통을 전달합니다. 아들 부부는 장애어린이를 위한 칫솔을 자비로 제작해 보내주기도 합니다.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보고 자란 아들이 며느리와 함께 푸르메재단과 더불어 봉사의 삶을 살길 바란다는 그의 꿈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할아버지는 1968년 한국 땅을 처음 밟았는데 당시 청계천의 참혹한 참상을 목격하고 이곳을 돕기로 결심했습니다. 머리에 큼지막한 혹을 달고 있는 아이의 수술비를 자비를 털어 지원했고,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병원에 데려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또 거둬가지 않는 자살한 사람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러 주기도 했습니다. 고통으로 얼룩진 빈민촌의 아이들과 주민들을 만나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후 50여 차례 일본과 서독, 미국, 호주 등을 오가며 모은 어린이구호기금과 탁아소 건립비 등을 전달했습니다.
그 당시 일본인이 한국을 방문하면 바보 취급을 받았지만 그는 이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쟁으로 페허가 되어 버린 열악한 곳에서 가난으로 힘겨워하는 한국인의 불행은 일본의 침략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인으로서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의 참회의 여정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어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을 찾아 플룻을 연주하면서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인 ‘명예시민’
‘한국인보다 한국인을 더 사랑한 일본인’ 노무라 모토유키 할아버지가 서울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았습니다. 서울을 사랑하고 서울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서울시의 ‘명예시민’이 된 것입니다.
10월 28일, 13개국 15명의 외국인에게 명예시민증이 수여된 ‘2013 명예시민의 날 기념식’에서 노무라 할아버지는 부인 요리코 할머니와 아들 마코토 씨와 함께 자리를 빛냈습니다.
노무라 할아버지는 수상 소감에서 “일본이 한국민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속죄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청계천 지원 사업으로 인해 서울명예시민까지 돼서 너무 영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조선인들에게 가해지는 많은 차별과 어려움을 부당하게 느꼈습니다. 그 생각은 삶에서 중요한 질문이 되어 인생의 항로를 바꾸게 되었고 청계천 빈민 구제활동을 이끌게 된 것입니다. 오랜 세월 가난한 이들과 함께 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숙연해졌습니다.
노무라 할아버지는 “한국과의 인연은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게 해주었다. 지난 50년 동안 서울을 지켜보면서 서울이 과거에 비해 사회 분위기가 자유로워졌고 사람들의 표정도 활기차졌다. 서울시 명예시민으로서 더욱더 한국을 아끼고 사랑할 것이다.”라고 다짐합니다.
할아버지는 70년대 초 현대화의 그늘에 있던 청계천과 평화시장 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800여장의 소중한 사진을 서울시에 기증했었습니다. ‘명예시민의 날’을 맞아 서울시 신청사 1층에서 11월 10일까지 도시빈민들의 삶과 애환과 70년대 다양한 서울의 모습을 담은 그의 기증품 40여 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눈물이 가리키는 것
시상식 날 아침 부인 요리코 할머니와 아들 마코토 씨와 함께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을 참배한 노무라 할아버지는 “꽃다운 나이에 청춘을 짓밟힌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일본인을 대신해 용서를 빈다”며 다시 한번 눈물을 흘렸습니다.
노무라 할아버지는 유머를 잃지 않는 건강한 웃음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소외된 이들을 진심을 다해 사랑하며 아낌없이 나누는 분입니다. 무엇보다 그는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를 사진으로 담아내는 기록자입니다.
그가 찍은 또렷하고 선명한 컬러사진들을 보면 마치 뿌옇게 흐려진 안경알을 닦아내는 기분입니다. 사진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고도성장으로 인해 청계천의 과거 모습이 사라졌다고 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다 사라진 건 아니라고. 그리고 그때처럼 철길 근처 굴 밑에서 살진 않더라도 후미진 곳에서 여전히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 ‘진실’을 잊지 말라는 단호하면서도 따뜻한 그의 시선이 도장처럼 가슴에 찍힙니다.
*글= 정담빈 간사 (홍보사업팀)
*사진= 한광수 팀장 (홍보사업팀), 정담빈 간사 (홍보사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