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씨이야기] 가을에 쓰는 우리들의 드라마

가을이다. 출근길에 느끼는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피부로 느껴질 만큼 계절은 이미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섰다. 국도변을 달리다 마주하게 되는 청명한 하늘 아래 일렁이는 코스모스가 가을의 풍요로움을 말해준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고생한 농부들이 열매를 걷어 들이는 계절. 비록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우리들의 몸과 마음 또한 바쁘다. 지금까지 나는 어떻게 달려왔고 앞으로 남은 2013년의 마무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 때문일 것이다. 가을은 그렇게 누구나 바쁜 계절이다.



이처럼 분주한 마음을 잠시 쉬어가게 하는 건 TV 드라마 보기이다. 특히 가족들을 TV앞으로 모이게 하는 월화드라마 한 편이 눈길을 끈다. 꾸준한 상승세의 시청률 덕분인지 본방을 놓치면 재방송이라도 챙겨보게 되는 은근한 중독성이 있는 프로그램이다.


제목은 ‘굿 닥터’라는 연속극으로 대학병원 소아외과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처음엔 그간 인기를 끌었던 다른 메디컬 드라마와 비슷하겠거니 싶었다.


출퇴근길에 띄엄띄엄 보게 된 ‘굿 닥터’는 어느 순간 다음 회가 기다려지는 드라마가 되었다. 어린 시절 자폐 3급과 서번트 증후군을 앓았던 천재적인 의사에 대한 관심은 접어두자.


극중 인물들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치유와 화해라는 결말을 향해 한걸음씩 옮기는 장면에서 오는 감동이 솔솔하다. 또한 ‘굿 닥터’의 묘미는 배우들의 연기를 돋보이게 하는 대사, 우리들의 일상을 돌아보게 하는 의미심장한 말들에 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모든 드라마는 그 드라마가 연출된 시대를 반영한다. 인물의 성격이나 환경은 물론이거니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한복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드라마가 주는 매력이다. 몇 주 전에 방송되었던 극중 선후배 의사 사이에 오간 대화 한 토막을 소개한다.


“진짜 자존심 상하거나 창피한 게 뭔 줄 알아? 능력이 좀 모자란 거? 돈을 좀 못 버는 거? 아니야. 한번 두려워한 걸 영원히 무서워하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게 용기라고.”

“용기.. 그거 아닙니까?”

“아니...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게 아니라 두려워도 계속 하는 게 용기야.”

가정폭력으로 큰 트라우마를 가지고 자란 후배가 말기 암환자가 되어 나타난 아버지와의 만남을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선배가 던진 한마디이다. 짧은 대사였지만 나에게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다른 사람이 그렇다 하면 의심없이 받아들이던 습관을 반성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이 글을 통해 드라마를 홍보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우리 모습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매체가 드라마라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드라마를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자고 말하고 싶다.



세상은 존중하고 인정하기 보다는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편들기가 일상화된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미덕으로 여기는 세상이 된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든다.


내 스스로가 소신을 지키려는 노력으로 살았다는 점에 위안을 삼는다. 단절된 소통을 훈훈한 가슴으로 이어가며 어깨동무하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 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들이면 무슨 일이든 가능하다고 믿는다.


푸르메재단에서 하고 있는 일들도 그 작은 노력이고 우리 사회에게 하나의 그림을 보여주는 과정이라 믿는다. 드라마 ‘굿 닥터’ 역시 그 과정을 하나하나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는 무엇인지 우리에게 묻는다. 편견을 뒤집는 대사들로.

이 가을에, 우리는 장애어린이들을 위한 병원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기금 마련을 위해 애쓰고, 어떤 사람은 병원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 수고를 세상에 소개하기 위해 남다른 정성을 쏟는다.


이 가을이 지나고 나면 우리가 그려온 그림은 더욱 선명하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더 많은 어린이들이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고 당당하게 미래의 주인공이 되는 멋진 드라마 한 편이 완성되는 꿈. 이런 우리들의 노력을 이해라도 해주는 듯 ‘굿 닥터’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왔다.


“아이들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아이들을 위한 수술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따사로운 햇살과 선선한 바람, 그리고 맑고 높은 하늘이 아름다운 가을이다. 이 가을에 다시 우리들의 드라마를 그려간다. 더욱 더 풍성한 열매로 함박웃음으로 함께 할 날을 기다리며. 올 가을은 그래서 더욱 상쾌하다.

*글= 심순옥 팀장 (경영지원팀)

*사진= KBS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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